이.탈.리.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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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을 믿음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10. 27. 21:23
누군가가 공식적으로 라틴어 비문을 세워 자신의 행운을 찬양한 것을 보면 거의 전율이 일어날 정도이다. 볼로냐의 통치자인 조반니 2세 벤티볼리오는 자기 궁 옆에 새로 세운 탑의 돌에 자신의 공덕과 자신의 행운은 자기가 바라는 모든 것을 넉넉하게 주었노라고 새기도록 했다. 그가 쫓겨나기 겨우 몇 년 전의 일이었다. 고대인들은 이런 맥락에서는 하다못해 신들의 질투라도 두려워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포르투나 앞에서 큰소리로 자신을 찬양하는 일은 아마도 용병대장들이나 했던 일이었다. 다시 발견된 고대가 종교에 미친 가장 강력한 영향은 어떤 철학적 체계나 고대인들의 가르침 또는 의견에서 온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지배 하는 판단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고대인과, 부분적으로 그 제도를 중세의 그것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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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주의와 비판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10. 25. 12:29
인문주의는 전체적으로 세속적이었고, 15세기에 연구가 확대되면서 더욱더 세속적으로 되어갔다. 앞에서 이미 개인주의의 선구자들로 소개했던 인문주의자들은 보통 아주 특이한 요구들을 가진 그들의 종교심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종교와 무관한 것으로 보일 정도의 생각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기독교에 무관심하였고, 교회에 대해서 가차 없는 발언들을 해서 무신론자라는 평판을 얻었다. 사색으로 뒷받침된 신념의 무신론을 내세운 사람은 물론 없었고,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어떤 주도적인 사상을 구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일종의 피상적인 합리주의였을 것이다. 그들이 열을 올리던 고대인들의 서로 모순되는 수많은 이념들, 그리고 교회와 그 가르침에 대한 경멸에서 얻은 일시적인 합리주의 말이다. 옛날 제자였던 교황 식스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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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유 의지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10. 23. 09:04
단테가 에피쿠로스파 혹은 그가 에피쿠로스 학설이라고 믿은 것에 대해 느꼈던 혐오감은 아주 정직한 것이었다. 저승을 그린 이 시인은 영혼의 불멸을 부정하는 사람을 미워할 수 밖에 없었다. 신에 의해 창조되지도 않았고 인도되지도 않는 세계와, 이 철학 체계가 제시하는 존재의 저급한 목적은 단테의 본질에 가장 대립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신이 세계를 주재한다는 성서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고대인들의 철학적 명제들이 그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아니면 그가 어떤 특별한 섭리를 완전히 포기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자신의 사색의 결과였던 것일까? 시대의 의견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고, 세계를 지배하는 불의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었을까? 그의 하느님은 세세한 세계 지배권을 마적 존재인 포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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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고대 철학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10. 21. 17:06
회교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고대가 다시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물론 종교를 통한 영향은 아니었다. 당시 카톨릭에서 종교는 너무나도 단일하고 분명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대는 철학을 통해서 영향을 주었다. 르네상스 사람들이 비할 바 없는 것으로 존경했던 고대 문학은 신앙심을 누른 철학의 승리로 가득 채워져 있다. 수많은 철학적 체계들과 그 체계의 단편들이 이탈리아 정신으로 밀려들어왔다. 더는 호기심이나 이단으로서가 아니었다. 이 체계들은 서로 구별하거나 화해시키려고 노력할 수 없는, 거의 도그마로서 받아들여졌다. 이 모든 다양한 의견들과 철학적 명제들에는 거의 모두 일종의 신에 대한 의식이 살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종합해보면 그들은 신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기독교 교리에 강력하게 대립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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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공평함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10. 16. 17:07
이런 종교적 공평함Indifferenz의 가장 뚜렷한 표현은, 유명한 세 개의 반지 이야기에 나타난다. 레싱이 그의 주인공 나단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수백 년 전부터 이미 (72번째 혹은 73번째 이야기)에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그리고 보카치오에게서 더욱 솔직한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이 이야기가 지중해의 어느 구석에서, 어떤 언어로 맨 먼저 이야기되었는지는 아마 절대로 밝혀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원래 그것은 디 두 가지의 이탈리아 이야기보다 의미가 더욱 뚜렷했을 것이다. 그 바탕에 숨어있는 비밀스러운 생각, 즉 이신론理神論은 아래에 그 폭넓은 의미가 다루어질 것이다. '세상을 속인 세 사람', 곧 모세, 그리스도, 마호메트에 관한 유명한 명제는 다시 이신론을 거칠고 일그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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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종교와 정신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10. 15. 10:42
르네상스 인간의 종교심에 대한 결정적인 열쇠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다른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그들의 정신적인 태도 전체로부터, 종교에 대한 그들의 태도와 신의 이념에 대한 태도를 밝혀내야만 한다. 종교적 관용 당시 이탈리아의 교양 계층인 이들 현대인들의 종교심은 중세 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타고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강한 개인주의는 그들로 하여금 종교에서도 다른 문제들처럼 완전히 '주관적'인 태도를 지니게 만들었다. 그들은 또한, 외적인 세계와 정신적인 세계의 발견이 가져다준 매혹이 너무나 커서 '세속적'으로 되었다. 그에 반해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종교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남아 있었고, 삶에서 이기심과 감각적 쾌락이 예배, 참회와 직접 번갈아가며 나타났다. 이기심과 감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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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숭배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10. 7. 08:20
어마어마한 교회들이 거의 모두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졌고, 라틴어나 각자의 언어로 된 시문학의 일부가 성모 마리아를 찬양했던 북유럽에서 성모 숭배가 더 강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나올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탈리아에서 일상생활에 깊이 스며들어서 기적을 행하는 마리아상들의 수가 비할 바 없이 많았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도시들은 모두 일련의 마리아상을 가지고 있었다. 아주 오래된, 아니면 아주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는 '성 루카의 그림들'부터 동시대 사람들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성모 마리아의 그림들에게서 사람들은 드물지 않게 그 그림들이 만들어내는 기적을 체험하였다. 예술 작품은 여기서 바티스타 만토바노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무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서는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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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 신앙과 숭배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10. 6. 08:11
이제 성직자와 수도사 계층을 빼고 옛날 신앙[이교신앙]의 강도를 측정하려고 한다면 어떤 측면에서, 그리고 어떤 조명에서 보는가에 따라 그것은 아주 미약하기도 하고 아주 중요하게 보이기도 할 것이다. 성사와 축복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말했다. 이제 일상생활에서의 신앙과 숭배의 위치를 살펴보기로 하자. 여기서는 대중과 그들의 습관, 그리고 이 둘에 대한 권력자들의 배려 등이 상당히 중요하게 부각된다. 참회와 선한 일을 통해 복을 얻는 것, 이 두가지와 연관된 모든 것이 북부 유럽에서와 똑같은 발전과 타락의 양상을 보이며 농부들과 하층 계급 사이에 퍼져 있었다. 그리고 교양 계층도 때로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고 영향을 받았다. 고대 이교도들이 신들을 불러내고 신들에게 선물을 하고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