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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의 자유 의지
    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10. 23. 09:04

     

    단테가 에피쿠로스파 혹은 그가 에피쿠로스 학설이라고 믿은 것에 대해 느꼈던 혐오감은 아주 정직한 것이었다. 저승을 그린 이 시인은 영혼의 불멸을 부정하는 사람을 미워할 수 밖에 없었다. 신에 의해 창조되지도 않았고 인도되지도 않는 세계와, 이 철학 체계가 제시하는 존재의 저급한 목적은 단테의 본질에 가장 대립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신이 세계를 주재한다는 성서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고대인들의 철학적 명제들이 그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아니면 그가 어떤 특별한 섭리를 완전히 포기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자신의 사색의 결과였던 것일까? 시대의 의견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고, 세계를 지배하는 불의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었을까? 그의 하느님은 세세한 세계 지배권을 마적 존재인 포르투나(Fortuna,우연, 행운)에게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포르투나는 다름 아니라 변화, 즉 지구 상의 사물을 마구잡이로 뒤흔드는 일을 맡은 존재로서, 아주 무심한 행복감에 잠겨서 인간의 불행한 탄식을 듣지 못한다. 그에 대해서 단테는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아주 분명하게 못박아놓았다. 즉 그는 자유 의지를 믿었던 것이다. 

     

     

    Divine Comedy Illustrated by Sandro Botticelli

     

     

    자유 의지에 대한 신념은 일찍부터 유럽에 존재하고 있었다. 거의 자명한 일인 것처럼, 어느 시대든 개인이 행한 것에 대해 개인을 책임자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인간 의지의 본성을 위대한 세계 법칙과 조화시켜야 할 처지에 있는 종교철학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여기서는 도덕성의 사정 기관이 평가를 내려야 할, 많고 적음이라는 것이 나타나게 된다. 단테는 당시의 지평을 거짓된 빛으로 밝히고 있던 점성술의 망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있는 힘을 다하여 인간 존재의 기품에 도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인물 마르코 롬바르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별들은 너의들에게 행동을 하도록 최초의 충동을 주지만 너희에게는 선과 악을 가릴 빛이 주어졌다. 자유 의지는 제대로 키우기만 한다면 우선 별들과 싸움을 하고 나서 모든 것을 물리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자유와 대립하는 필연성을 별들이 아닌 다른 힘에서 찾으려고 했다. 어쨌든 이 질문은 그 이후로 피할 수 없는, 공개된 질문이었다. 그것이 학파들의 주제였는가, 아니면 고립된 사상가들의 질문이었는가 하는 문제는 철학사에 맡겨두기로 하자. 하지만 이 질문이 다른 계층의 의식으로까지 넘어갔다는 측면에 대해서는 여기에서도 약간 더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14세기는 주로 키케로의 저술들을 통해서 자극을 받았다. 키케로는 절충주의자 혹은 회의론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어떤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고 여러 학파들의 이론을 설명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는 세네카와, 라틴어로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의 몇 가지 저술들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연구의 결실로 나타난 것은 교회의 가르침과 대립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교리 바깥에서 최고의 가치에 대하여 논의하는 능력이었다. 

    15세기가 되면서 앞에서 보았듯이 고대의 저술이 비상하게 널리 보급되었다. 마지막에는 현존하는 그리스 철학자들의 저술 전체가 적어도 라틴어 번역본으로 사람들 사이에 나타났다. 이 문헌들의 전파를 촉진시킨 사람들 중 몇 사람은 가장 엄격한 신앙심, 곧 금욕을 실천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수도사 암브로시오 카말돌레제 를 여기 꼽을 수는 없다. 그는 오로지 그리스 교부들을 번역하는 일에만 한정하고 있었는데 코시모 메디치의 간청을 받고서야 아주 못마땅해하면서 억지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책을 라틴어로 번역하였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대 사람들인 니콜로 니콜리, 잔노쪼 마네티, 도나토 아치아유올리, 교황 니콜라우스 5세 등은 다방면을 지향하는 인문주의와 힘을 합쳐서 대단히 지적인 성서학과 아주 깊은 신앙심을 만들어냈다. 비토리노 다 펠트레가 보여준 비슷한 방향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설명하였다. <아에네아스 이야기> 13권을 썼던 마페오 베지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그의 어머니 모니카에게 열광하였다. 이 열광은 어느 정도 훌륭한 흔적을 남겼다. 이런 노력들의 열매는 피렌체에서 플라톤 아카데미가 고대의 정신을 기독교 정신과 화해시키는 것을 공식 목적으로 삼았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인문주의 안에서 아주 특이한 오아시스였다. 

     

     

     

    내용 출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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