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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와 고대 철학
    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10. 21. 17:06

     

    회교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고대가 다시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물론 종교를 통한 영향은 아니었다. 당시 카톨릭에서 종교는 너무나도 단일하고 분명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대는 철학을 통해서 영향을 주었다. 르네상스 사람들이 비할 바 없는 것으로 존경했던 고대 문학은 신앙심을 누른 철학의 승리로 가득 채워져 있다. 수많은 철학적 체계들과 그 체계의 단편들이 이탈리아 정신으로 밀려들어왔다. 더는 호기심이나 이단으로서가 아니었다. 이 체계들은 서로 구별하거나 화해시키려고 노력할 수 없는, 거의 도그마로서 받아들여졌다. 이 모든 다양한 의견들과 철학적 명제들에는 거의 모두 일종의 신에 대한 의식이 살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종합해보면 그들은 신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기독교 교리에 강력하게 대립되는 것이다. 이제 진짜 핵심이 되는 질문이 나타난다. 중세의 신학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였으나 충분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제 그 질문은 고대의 지혜에서 해답을 구하게 되었다. 그것은 곧 인간의 자유와 필연성에 대하여 섭리가 어떤 관계를 가지느냐 하는 질문이었다. 14세기 이후로 이 질문의 역사를 얼핏 훑어보려고만 해도 책을 한 권 써야 할 정도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몇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단테와 에피쿠로스

    단테와 그의 시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고대 철학은 맨먼저 기독교와 가장 날카롭게 대비를 이루는 지점에서 이탈리아인의 삶으로 파고든 것 같다. 즉 에피쿠로스파를 말하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에피쿠로스의 저술을 갖지 못했다. 고대 후기에 에피쿠로스의 이론에 대해서 다소 일방적인 개념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루크레티우스와 키케로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에피쿠로스주의의 모습만으로도 신성이 전혀 없는 세계관을 알아볼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이 이 학설을 어디까지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는지, 혹은 수수께끼 같은 그리스 철학자의 이름이 그저 편안한 유행어로 쓰인 것에 지나지 않았는지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도미니크회 종교재판관들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손댈 수 없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데 이 단어를 이용했던 것 같다. 주로 어떤 특정한 이단의 교리나 진술을 발설하지 않은, 그러나 일찌감치 등장하여 교회를 무시한 사람들 말이다. 상당히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미 이런 고발을 하기에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조반니 빌라니는, 1115년과 1117년 피렌체의 화재 사건을 이단에 대한 신의 형벌이라고 "특히 저 우스꽝스럽고 향락적인 에피쿠로스파 사람들 때문에" 내려진 신의 형벌이라고 설명하면서 인습적인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만프레드에 관해서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의 삶은 에피쿠로스파의 그것이었다. 그는 신도 성자도 믿지 않고 오로지 육체의 쾌락만을 믿었다." 

     

     

      Woodcut / Descending into the sixth circle of Hell, the poet encounters heretics, beginning with Epicureans who believed that 'the soul dies with the body', and who are punished after death by being trapped inside flaming tombs

     

     

     

    단테는 <신곡> 지옥편 9번과 10번 노래에서 더욱 분명한 목소리를 낸다. 불길로 뒤덮인 끔찍한 묘지 구역에 절반쯤 열린 관들로부터 가장 깊은 신음소리들이 울려나오고 있는데, 그곳은 13세기에 교회에 의해서 패배를 당하고 추방당한 두 가지 범주의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다. 한 무리는 이단자들로 그들은 특별한 이단의 교리를 일부러 전파해서 교회에 대립하였다. 다른 무리는 에피쿠로스 패거리들로서, '영혼은 육체와 함께 소멸된다'는 말로 요약되는 그들의 생각이 바로 교회에 대해 저지른 죄악이다. 그러나 교회는 이 명제가 기반을 얻기만 한다면, 마니교도와 파테린 교도를 모두 합친 것보다 교회에 더욱 해가 되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보았다. 영혼이 육체와 함께 소멸된다는 생각은, 죽은 다음 개인의 운명을 교회가 결정한다는 가르침에서 완전히 가치를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이런 싸움에서 자주 이용하는 수단을 통해서 가장 재능 있는 사람들을 절망과 불신앙 속으로 밀어 넣었다는 사실을 물론 교회는 인정하지 않았다. 

     

     

     

    내용 출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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