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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네상스의 종교와 정신
    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10. 15. 10:42

     

    르네상스 인간의 종교심에 대한 결정적인 열쇠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다른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그들의 정신적인 태도 전체로부터, 종교에 대한 그들의 태도와 신의 이념에 대한 태도를 밝혀내야만 한다. 

    종교적 관용

    당시 이탈리아의 교양 계층인 이들 현대인들의 종교심은 중세 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타고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강한 개인주의는 그들로 하여금 종교에서도 다른 문제들처럼 완전히 '주관적'인 태도를 지니게 만들었다. 그들은 또한, 외적인 세계와 정신적인 세계의 발견이 가져다준 매혹이 너무나 커서 '세속적'으로 되었다. 그에 반해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종교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남아 있었고, 삶에서 이기심과 감각적 쾌락이 예배, 참회와 직접 번갈아가며 나타났다. 이기심과 감각적 쾌락은 이탈리아에서처럼 정신적인 경쟁자[명예심]는 없으나 비할 바 없이 하찮은 수준이었다. 

    그밖에도 이탈리아 사람들은 옛날부터 비잔틴 및 회교도들과 빈번하고 가까운 접촉을 했던 덕분에 중립적인 '관용'의 정신이 형성되었다. 특권적인 서양 기독교의 종족주의 개념은 이런 관용의 정신 앞에서 어느 정도 빛이 바랬다. 고전적인 고대가 그 풍부한 인물들과 제도들과 함께 삶의 이상으로 등장하자 - 그것은 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한 추억이었기 때문이다 - 고대의 사변과 회의는 때때로 이탈리아 사람들의 정신을 완전히 사로잡곤 하였다.

     

     

    Islamicate pointed arches and Byzantine mosaics ,  Palatine Chapel ,  Sicily

     

     

    그리고 더 나아가 이탈리아 사람들이 자유와 필연성의 문제에 대한 사색에 제한 없이 헌신한 최초의 현대적인 유럽인들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이런 사색을 권한 없는 전제정치 상황 아래서, 때로는 악이 화려하고도 지속적으로 승리하는 것을 목격하는 정치 상황 아래서 했기 때문에, 그들의 신에 대한 의식은 흔들릴 수 있었고 그들의 세계관은 때로는 숙명론적이었다. 정열적인 성격 탓으로 무지 상태에서 멈추려고 하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들은 고대, 동양, 중세의 미신들에서 보충 지식을 얻기를 좋아하였다. 그들은 점성술사와 마법사가 되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강한 르네상스 사람들은 종교적인 맥락에서 젊은이의 특성을 보였다. 그들은 선과 악을 날카롭게 구분하였으나 죄라는 것을 몰랐다. 내면의 조화가 깨지는 것을 자신의 조형적인 힘을 빌어 복구시키려고 하였으나, 그 때문에 후회하는 것을 몰랐다. 구원에의 욕구는 빛이 바랬다. 동시에 명예욕과 시대의 정신적인 노력 앞에서, 정신은 저승에 대한 생각을 까맣게 잊거나 아니면 교리적인 형태가 아니라 시적인 형태로만 받아들였다. 

    모두를 지배하는 상상력에 의해서 이 모든 것이 다시 중재되고 부분적으로 혼란스러워졌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이 시대의 정신적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적어도 현대의 이교라는 불확실한 탄식보다는 진실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그리고 더 자세히 탐구해보면 이 껍데기 아래 진정한 종교심의 강력한 충동이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점에 대해서 더욱 상세한 언급이 필요하지만 여기서는 가장 본질적인 요점들로만 제한하기로 한다. 

    종교가 개별적인 주체의 문제가 되고, 개인의 특별한 관점의 문제로 되는 것은, 교회 이론이 타락하고 전제적으로 된 점을 생각해볼 때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유럽의 정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대단히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북유럽의 신비주의적이고 금욕적인 종파들은 새로운 감정 세계와 사고방식에 맞추어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냈다. 반면에 이탈리아에서는 각 개인이 각자의 길을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바다에서 길을 잃고 종교적 무관심 상태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럴수록 우리는 자신의 개인적인 종교를 이루어내고 거기 집착하였던 사람들을 높이 사게 된다. 그들이 교회에 전혀 공감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러나 각 개인이 아주 위대한 정신적 작업, 결국 도이치 종교개혁의 것이 되고 만 위대한 정신적 작업을 각자의 내면에서 이룩했어야 한다는 요구는 부당한 것이다. 더 나은 사람들의 경우에 이런 개인적인 종교가 보통 어떻게 끝이 났는가를 우리는 이 책의 마지막에 보게 될 것이다. 

    르네상스를 중세와 날카롭게 대립하는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세속성은, 자연과 인성에 관련된 새로운 관점, 사상, 의도들이 대량으로 넘쳐나면서 생겨났다. 그 자체로 살펴보면 이 세속성은 오늘날의 입장, 이른바 교양적 관심이 보여주는 것보다 종교에 대해서 훨씬 덜 적대적이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이런 교양적 관심이란, 당시 수많은 위대한 새로움이 인류를 이끌어간 전인적인 자극에 대해서는 빈약한 그림만을 보여줄 뿐이다. 이 세속성은 문학과 예술을 통해서 고귀하게 된 진지한 세속성이다. 그것은 현대 정신의 고귀한 필연성이다. 현대 정신은 세속성을 완전히 털어낼 수가 없다. 그것은 인간과 사물을 탐구하려는 항거할 수 없는 충동을 느끼며 이것을 자신의 숙명으로 여긴다.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어떤 길들을 통해서 이런 탐구가 그를 다시 신에게로 이끌어갈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개인의 종교심과 연결될 것인지 하는 것은, 일반적인 법칙에 따라 처리되는 질문들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경험과 자유로운 탐구가 없었던 중세는, 그 어떤 교리적인 답변을 가지고도 이 중요한 문제에 끼어들 수 없다. 

    관용과 공평함은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 탐구와 결합되었다. 그럼으로써 우선 회교 사상과 만나게 된다. 특히 몽골 침략 이전의 이슬람 민족들의 수준 높은 문화를 인식하고 경탄한 일은, 십자군 전쟁 이래로 분명 이탈리아 사람들만의 일이었다. 거기다가 절반쯤은 회교적인 이탈리아 영주들의 통치방식, 카톨릭 교회에 대한 조용한 거부감과 멸시, 지중해 동쪽과 남쪽에 있는 항구들을 향한 지속적인 여행과 무역 등이 덧붙여졌다. 13세기에 벌써 이탈리아 사람들 사이에서, 회교도들이 흔히 술탄의 성품과 결부시키는 고귀한 품성, 품위, 자부심 등 회교의 이상을 인정한 것이 입증되고 있다. 그것은 은근히 이집트의 아이유브맘루크 왕조의 술탄들을 뜻하는 것이었다. 한 사람만 거론하자면 살라딘을 꼽을 수 있다. 오스만투르크 사람들의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행태는 비밀이 아니었는데도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이탈리아 사람들은 절반만 두려움을 느꼈을 뿐이고 국민 전체가 그들과도 화해가 가능하다는 생각에 익숙하였다. 

     

    Selahaddin Eyyu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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