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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보나롤라
    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10. 1. 21:10

     

    가장 위대한 참회 설교자이며 예언자는 1498년에 이미 피렌체에서 화형을 당했다. 페라라 출신의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여기서는 그에 대해서 몇 마디만 하기로 하자. 

    그가 피렌체를 변화시키고 지배하였던 강력한 도구는 바로 그의 연설이었다. 그에 관해서는 대개는 즉석에서 불충분하게 옮겨 적은 설교들이 아주 제한된 개념만을 전해주고 있다. 그의 외적인 수단들이 그렇게 대단했던 것 같지는 않다. 목소리, 발음, 수사적 표현 등은 오히려 그의 약점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빼어난 문체와 예술적인 설교자를 원하는 사람은 그의 경쟁자였던 수도사 마리아노 다 기나짜노에게 가는 편이 더 나았다. 그러나 사보나롤라의 연설에는 특별한 개인적인 힘이 있었다. 그것은 그 이후로 루터에 이르기까지 두 번 다시 없었던 현상이다. 그 자신은 그것을 깨달음으로 여겨서, 전혀 불손한 태도도 없이, 설교자의 직책을 아주 높은 것으로 여겼다. 성직의 서열에서 설교자를 넘어서면 곧바로 아주 낮은 천사의 서열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완전히 불꽃이 되었던 이 성품은 처음에는 전혀 다른, 오히려 더욱 위대한 기적을 이루었다. 자신의 수도원인 도미니크회의 성 마르코 수도원에 이어서 토스카나의 모든 도미니크 수도회를 자기와 같은 생각으로 만들어 자발적으로 개혁하도록 만든 일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 수도원들이 어땠는지, 그리고 수도사들 사이에서 가장 작은 변화만 이루려고 해도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변화를 보고 두 배나 놀라게 될 것이다. 이 일이 진행되는 동안, 도미니크회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품게 되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놀라움은 더욱 강해진다. 이어서 최상급 가문의 아들들이 예비 수도사 자격으로 성 마르코 수도원에 들어왔다. 

    특정한 지역에서 이런 수도회의 개혁은 국민적인 교회를 위한 첫걸음이엇다. 이것이 더 오래 지속되었더라면 반드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사보나롤라 자신은 물론 교회 전체의 개혁을 원했고 그 때문에 활동의 마지막에도 권한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공의회를 소집하라고 절박한 경고를 보냈다. 다만 그의 수도회와 그의 당파는 이미 토스카나를 위해서 지상의 소금이 되었던 반면 이웃 지역들은 옛날 상태에 머물렀다. 체념과 상상력으로 인해 점차 그에게는 피렌체가 지상에서의 신의 왕국으로 보이게 되었다. 

    예언들이 일부 성취됨으로써 사보나롤라에게는 초인적인 존경이 뒤따랐다. 이런 예언들은, 대단히 활발한 이탈리아의 상상력이 가장 건강하고도 사랑스러운 사람까지도 사로잡는 바로 그 지점이었다. 처음에 감독부에 속한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은 성 베르나르디노가 남겨준 명성의 흔적 속에서, 자기들이 이 위대한 도미니크회 수도사를 경쟁에서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인 도메니코 다 폰조를 대성당으로 보내서 앞으로 닥칠 불행에 대한 사보나롤라의 예언을 더욱 어두운 예언으로 이겨보려고 했다. 그러자 당시 아직 피렌체를 통치하고 있던 피에로 메디치가 두 사람에게 침묵을 명령하였다. 곧 이어서 사보나롤라가 아주 분명한 말로 예언했던 대로 샤를 8세가 이탈리아로 들어오고 메디치 가문 사람들이 쫓겨나자 사람들은 오직 그의 말만을 믿게 되었다. 

    그가 자신의 예언과 환상들에 대해서는 전혀 비판을 하지않고 다른 사람들의 그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엄격한 비판을 했다는 점을 여기서 인정해야 할 것이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장례식 연설에서 그는 죽은 친구를 상당히 가혹하게 대접하였다. 피코가 신에게서 나온 내면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수도회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신께 벌주십사 기도 드렸다고 했다. 그러나 물론 그의 죽음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보시와 기도를 통해서 그의 영혼이 한동안만 지옥불 속에 있도록 애쓰는 중이라 했다. 피코는 죽기 전에 침상에서,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자기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는 환상을 보았는데, 이에 대해 사보나롤라는 자기는 벌써 그것이 악마의 속임수라고 생각했었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성모께서는 두 번째 죽음, 곧 영원한 죽음을 뜻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이런 일과 다른 비슷한 일들이 불손한 일이었다면 어쨌든 이 위대한 영혼은 그에 대해서 가능한 가장 심한 벌을 받은 셈이다. 마지막 시기에 사보나롤라는 자신의 환상들과 예언이 무가치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런데도 내면의 평화가 넉넉해서 그는 성스러운 마음으로 죽음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고도 그의 추종자들은 사보나롤라의 가르침과 예언들을 30년 동안이나 굳게 믿었다. 

     

     

    Savonarola Preaching Against Prodigality  by Ludwig von Langenmantel, 1879

     

     

    그는 자기가 나서지 않으면 적대 세력이 그 일을 맡을까봐 국가 조직을 개편하는 일을 떠맡았다. 1495년 초의 반 민주적인 헌법을 보고 그를 평가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일이다. 그것은 피렌체의 다른 법들보다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었다. 사보나롤라는 어쩌면 식민 도시들에 자유를 되돌려주고도 이 토스카나 국가의 단결을 어떻게 해서든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다만 그에게는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근본적으로 그런 일에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의 진짜 이상은 신정 통치였다. 모두가 영혼의 겸손함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분 앞에 머리를 숙이는 곳, 온갖 정열로 인한 갈등이 아예 싹부터 없어진 그런 국가였다. 그의 모든 생각은 시청 광장의 비문에 새겨진 그대로였다. 그 내용은 이미 1495년 말에 그의 강령이 되었고,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1527년에 다시 새겨졌다. 즉 "왕이고 주님이고, 지배자들에게서 해방시켜주시는 높고 선하고 최고이신 그리스도와 처녀들의 여왕이신 마리아께 바칩니다. 피렌체 정부와 국민"이라는 문구이다. 보통 진지하고 엄격한 수도사가 그렇듯이 지상의 생활과 그 조건에 대해서 그는 아무런 관심 도 없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인간은 영혼의 구원과 직접 관계되는 것에만 관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고대 문학에 대한 그의 생각에서 이런 태도는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설교하기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룩한 일 중에서 유일하게 선한것은 그들이 이단에 대항하여 쓸 수 있는 수많은 주장들을 했다는 점이다. 그들과 다른 철학자들은 지옥에 앉아 있다. 늙은 여자라 하더라도 플라톤보다는 신앙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 그밖에도 쓸모 있게 보이는 많은 책들이 없어진다면 신앙에는 좋은 일이다. 그렇게 많은 책들과 근거들과 논의들이 없었을 때 신앙은 훨씬 더 빨리 성장하였다." 그는 학교에서의 고전 읽기를 호메로스, 베르질리우스, 키케로로 제한하고 나머지는 히에로니무스와 아우구스티누스로 보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오비디우스와 카툴루스뿐 아니라 테렌티우스와 티블루스도 추방되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는 물론 신경질적인 도덕성이 나타나 있다. 어떤 특별한 글에서 그는 일반적으로 학문이 해롭다는 생각을 고백하고 있다. 그의 생각으로는 인류 지식의 전통이 중단되지 않도록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학문을 익혀야 한다. 특히 항상 이단의 궤변과 맞서 싸울 몇 명의 선수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문법, 도덕, 종교 수업 이상을 배워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물론 교양 전체가 다시 수도사들에게 귀속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학식 있고 성스러운 사람들'이 국가와 나라를 통치해야 하는데 이들도 역시 수도사들이다. 물론 저자가 거기까지 생각을 했는지 들어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보다 더 유치한 방식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이 선량한 사람의 머리에는 다시 발견된 고대와 전체적인 관점 및 사고 방식의 엄청난 확장이, 상황에 따라 종교를 위한 영광스러운 불의 시련이 될 수도 있다는 단순한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제거할 수 없는 것을 금지하려고 하였다. 자유와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예를 들면 그는 신앙심이 없는 점성술사를 화형에 처하기 위해 장작더미를 마련하였다. 그는 나중에 그 장작 위에서 자신이 화형 당했다. 

    이 좁은 정신에 깃든 영혼은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던가! 피렌체인들의 교양에 대한 열광을 자신의 관점 앞에 굴복시킨 그는 대체 어떤 불길을 가진 사람이었던가는 저 유명한 희생의 불길들이 보여준다. 그것과 나란히 놓으면 베르나르디노와 다른 설교자들의 모든 사치품 더미를 다 합쳐도 별 것이 아니다. 

    물론 전체적인 경찰력이 사보나롤라 편에 있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 대단하던 이탈리아인의 사생활의 자유를 개입하였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그는 자신의 도덕적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 하인들에게 주인을 감시하는 스파이 노릇을 하라고 요구하였다. 뒷날 제네바에서 무쇠와 같은 칼빈이 바깥으로부터 지속적인 포위 상태를 만들어 내고서도 아주 힘들여서야 성공할 수 있었던 것, 즉 공공 생활과 사생활의 개조는 피렌체에서는 겨우 시도로만 남았고, 그것조차도 적들을 극도로 화나게 만들었다. 그중에는 무엇보다도 사보나롤라가 조직한 소년단에 있었다. 그들은 집으로 쳐들어가서 사치품 더미에 올려놓을 만한 물건들을 강제로 요구하였다. 소년들은 여기저기서 얻어맞고 쫓겨났다. 그래도 자라나는 성스러운 미래 시민이라는 허구를 고집하기 위해 소년들에게 어른들을 보호자로 붙여주었다. 

    그렇게 해서 1497년 사육제 마지막 날에, 그리고 이듬해 같은 날에도 청사 광장에서 엄청난 사치품 화형식이 거행될 수 있었다. 로마 황제들의 시신이 불태워지던 로구스 더미 같은 계단형 피라미드가 솟아났다. 맨 아래쪽에는 가면들, 가짜 수염, 변장용 옷 등이 쌓였다. 다음 층에는 라틴어와 이탈리아어로 된 책들이 쌓였다. 그중에는 풀치의 <모르간테>, 보카치오, 페트라르카 등이 있었고, 일부는 값비싼 양피지 문서들과 세밀화로 꾸며진 필사본들도 있었다. 그다음은 부인들의 장식품과 화장용품들, 향수, 거울, 베일, 가발 등이었다. 더 위에는 류트, 하프, 장기판, 주사위, 카드 등이 있었다. 마지막 두 개의 높은 봉우리는 순전히 그림들로 채워졌다. 특히 아름다운 여인들을 그린 그림들, 그들 중에는 루크레티아, 클레오파트라, 파우스티나 등 고전적인 이름을 달고 있는 것들과 아름다운 벤치나, 레나 모렐라, 비나 데 렌찌 와 마리아 데 렌찌 등의 초상화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 자리에 있던 베네치아의 상인이 피렌체 정부 측에 이 피라미드의 내용물을 얻는 대가로 금화 2만 탈러를 내겠다고 제안하였다. 그가 받은 유일한 답변은 그의 초상화도 그려서 그 위에 던지라는 것이었다. 불을 붙일 때 통치자가 발코니에 모습을 나타냈다. 노래와 나팔소리, 종소리들이 대기를 가득 채웠다. 나중에 성 마르코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서 세 겹의 원을 이루어 춤을 추었다. 맨 안쪽에는 이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천사 소년들과 번갈아 서있고, 다음 줄에는 젊은 성직자와 속인들, 그리고 맨 바깥에는 노인들과 시민들, 사제들이 올리브 가지로 만든 관을 쓴 모습이었다. 

    몇 가지 계기들과 승리에 찬 적대자들의 조소도 사보나롤라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이탈리아의 운명이 슬프게 진행될수록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저 위대한 수도사, 예언자의 모습은 더욱 밝게 빛났다. 그의 예언들은 개별적으로는 믿을 만한 것들이 못되었지만 그가 예언한 전체적인 불행은 너무나도 끔찍하게 실현되었다. 

    참회설교자들의 영향이 아무리 컸다고 해도, 그리고 사보나롤라가 수도사 신분을 위해서 설교자의 직분을 분명히 되찾았다고 하더라도 이 계층 역시 일반적인 불행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탈리아는 개인들에 대해서만 열광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내용 출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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