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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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율리우스 II세이.탈.리.아 역사/이탈리아가낳은인물 titani 2020. 11. 15. 18:46
교황 율리우스 2세(이탈리아어: Papa Giulio II)는 제216대 교황(재위: 1503년 - 1513년)으로, 본명은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Giuliano della Rovere(1443~1513)이다. 가난한 집안 출신인 교황 식스투스 4세(재위기간: 1471년 - 1484년)는 자신의 출신 가문인 델라 로베레 가문의 부흥과 번영을 위해 초기부터 친족들을 중용했다. 그는 교황으로 선출되자마자 조카 6명을 추기경으로 임명했는데, 덕분에 추기경이 된 줄리아노는 교황인 삼촌을 배경으로 교회 안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갖게 된다. 1480년 30대의 줄리아노는 신성 로마 제국과 프랑스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교황 특사로 파견되어 4년간 프랑에 체류하였다. 식스투스 4세의 선종 이후에도 후임 교황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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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불멸에 대한 의문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11. 11. 11:52
높은 발전을 이룬 사람들 사이에서 불신앙이 이토록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면 이것은 세계를 발견하고 그것을 말과 그림으로 재생한다는 지상의 위대한 과제가, 고도의 정신력과 영혼의 모든 힘을 요구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런 르네상스의 필연적인 세속성에 관해서는 앞에서 이미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나아가 이런 탐구와 예술을 통해서 다시 똑같은 필연성을 가지고 일반적인 회의와 의문의 정신이 생겨 나왔다. 그런 정신이 문학에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예를 들어 성서 이야기에 대한 비판이 극히 개별적인 시작들만 보였다고 해서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다만 그것은 위에서 말한 대로 모든 분야에서 묘사하고 그릴 필요성에 밀려서, 다시 말해 긍정적인 예술 충동에 밀려서 잘 들리지 않은 것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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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신앙심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11. 10. 09:15
기독교에 등을 돌림 불멸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것은 앞에서 말한 미신과 고대의 사고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 이 문제는 현대 정신의 발전과 훨씬 더 광범위하고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당시 미움을 받던 교회에서 내적으로 아무런 덕도 입고 싶지 않다는 소망이 불멸에 대한 모든 의심의 원천이었다. 교회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에피쿠로스파라고 부르는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죽음의 순간에 다시 마음이 돌아와 종부 성사를 받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동안 특히 가장 활동적인 시기에 내적으로 교회의 덕을 입고 싶지 않다는 소망을 품고 살았다. 많은 사람들의 경우, 이런 마음이 전체적인 불신앙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명백하고, 나아가 역사적으로는 모든 방식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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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성 사제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11. 9. 07:57
더욱, 오래된, 거의 죽어버린 마법 한 조각을 관찰해보자. 가장 어두운 중세, 그리고 어쩌면 고대로부터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어떤 건축물, 조각상 등과 연관 짓는 기억을 간직해왔다. 고대인들은 축성祝聖 사제, 혹은 텔레스타이Telestae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들은 각 도시들의 화려한 기공식에 참석하였고, 특별한 기념비들을 통해서 혹은 특별한 물건Telesmata들을 남몰래 파묻어서 도시의 번영을 마법으로 보장해 주었다는 것이다. 로마 시대로부터 민간으로 전해진 어떤 것이 아직도 살아 있다면 바로 이런 종류의 것이었다. 물론 축성 사제는 수백 년이 흐르면서 마법사로 바뀌었다. 고대에 이들의 행위가 가졌던 종교적 의미를 사람들이 더는 이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폴리에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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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의 대결미.켈.란.젤.로/생 애 vita 2020. 11. 8. 06:07
1504년, 피렌체 정부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 공동 작업을 위촉했다. 이것은 사실상 두 천재에게 경쟁을 시킨 셈이 된다. 두 사람의 관계는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예술과 고독이라는 공통점이 서로를 가깝게 할 것 같은데 오히려 타인들보다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두 사람 중에서도 레오나르도가 더욱 고독하였다. 그는 이미 52세이며, 미켈란젤로보다 20세나 연상이었다. 30세에 피렌체를 떠나 있었던 그는 섬세하고 다소 소심한 성격이라 모든 일에 매우 민감했다. 회의적인 그의 지성은 어떤 일에나 쉽게 열광하는 이 지방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위대한 딜레탕트,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절대적으로 고독한 인간은 조국이나 종교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의 보호자였던 로도비코 일 모로의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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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박해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11. 7. 09:15
인노켄티우스 8세의 악명 높은 교서(1484)와 더불어 마녀와 마녀 박해는 거대하고 끔찍한 체계가 되었다. 덧붙여 말하자면 나는 이 문제에 관해 오랫동안 관찰해오면서 원래의 객관적 사실이라든가 이교 신앙의 잔재라는 식의 생각을 완전히 버리게 되었다. 탁발 수도승들의 상상력이 마녀사냥이라는 망상의 유일한 원천을 확인해보고 싶은 사람은 자크 뒤 클레르크의 회고록에서 1459년 아라스에서 있었던 이른바 보두아파의 재판을 연구해보라. 백 년간이나 계속 심문을 해서야 비로소 사람들의 상상력을 움직여서 마녀라는 이 끔찍한 존재를 자명한 것으로, 아예 새로 만들어 낼 수가 있었다. 마녀 심문의 주요 대표자들은 도이칠란트의 도미니크 회원이었다. 도이칠란트는 이 재앙으로 가장 많은 고통을 겪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도이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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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베누토 첼리니이.탈.리.아 역사/이탈리아가낳은인물 titani 2020. 11. 3. 08:10
벤베누토 첼리니(1500-1571)는 미켈란젤로 다음가는 르네상스의 가장 훌륭한 조각가이다. 미켈란젤로의 장례식이 교향 피렌체에서 치러질 때, 장례위원 중 첼리니는 조각계를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 선출될 만큼 자타가 인정하는 예술가였다. 그러나 오늘날 첼리니의 명성은 금세공이나 메달 제작자나 조각가로서보다는 그가 불행했던 말년에 쓴 자서전 때문에 드높다. 첼리니의 자서전은 모든 것을, 자신의 명예에 치명적인 사실들까지 속임없이 솔직 대담하게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심지어 그의 적과 경쟁자를 살인한 사실과 여인들과의 민망한 이야기들도 숨김없이 기록하고 있다. 첼리니의 자서전을 처음 독일어로 번역한 괴테는 여인들과의 정사장면을 아예 그의 번역본에서 빼버렸다. 물론 괴테는 당시 유럽의 도덕관에도 영향을 받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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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11. 3. 07:21
인기 있고 원시적인 형태로, 아마 로마 시대 이후로 끊임없이 계속되어온 것은 마녀의 존재였다. 마녀는 예언만 행할 경우 거의 완전히 죄없는 존재일 수도 있다. 다만 단순한 예언에서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도록 돕는 단계로의 이행 과정은 전혀 눈에 띄지 않지만, 그것은 결정적인 추락의 단계가 될 수 있다. 실제 마녀가 일으키는 마법은 주로 남자와 여자 사이에 사랑과 미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믿어졌다. 그러나 또한 아주 파괴적인 악행도 마녀의 탓으로 돌렸다. 어린아이들을 병들게 하는 것 등이었다. 부모의 부주의와 무지 탓임이 분명한데도 마녀를 탓했다. 마녀가 단순한 주문, 의식, 이해할 수 없는 공식 따위로 대체 어디까지 그런 작용을 했으며, 아니면 의도적으로 악령을 불러서 어디까지 작용을 했는가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