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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들리는 신앙심
    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11. 10. 09:15

     

    기독교에 등을 돌림

    불멸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것은 앞에서 말한 미신과 고대의 사고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 이 문제는 현대 정신의 발전과 훨씬 더 광범위하고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당시 미움을 받던 교회에서 내적으로 아무런 덕도 입고 싶지 않다는 소망이 불멸에 대한 모든 의심의 원천이었다. 교회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에피쿠로스파라고 부르는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죽음의 순간에 다시 마음이 돌아와 종부 성사를 받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동안 특히 가장 활동적인 시기에 내적으로 교회의 덕을 입고 싶지 않다는 소망을 품고 살았다. 많은 사람들의 경우, 이런 마음이 전체적인 불신앙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명백하고, 나아가 역사적으로는 모든 방식으로 입증되고 있다. 신앙심이 지붕 높이를 넘어서지 못한다고 아리오스토가 말한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탈리아, 특히 피렌체에서는 교회에 대해서 직접적인 적대감을 표시하지만 않으면 공공연한 불신자로 사는 것이 가능하였다. 예를 들면 어떤 정치범의 죽음을 도와줘야 할 고해 신부는 우선 그가 신자인가를 물었다. "왜냐하면 그가 믿음이 전혀 없다는 거짓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루카 델라 로비아가 저술한 <피에로 파올로 보스콜리의 죽음>

     

     

    죽음의 순간의 후회

    여기서 이야기되는 가련한 죄인은 앞에서 이미 언급된 피에트로 파올로 보스콜리로서 1513년에 막 권리를 회복한 메디치 가문에 대한 모반에 동참한 인물이다. 그는 당시의 종교적인 혼란을 아주 잘 반영하고 있다. 그는 사보나롤라파의 신앙심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고대의 자유라는 이상과 이교에 매료되었다. 그러다가 감옥에서 사보나롤라 파가 다시 그를 받아들여서 그를 위해 자기들 식으로 종교적인 최후를 준비해주었다. 이 사건을 목격한 경건한 증인이자 그것을 기록한 사람은 예술가 집안 출신으로, 학식 있는 문헌학자인 루카 델라 로비아 였다. 보스콜리는 탄식한다. "아, 내 머리에서 브루투스를 좀 쫓아내 주시오. 기독교도로서 내 길을 갈 수 있게 말이오!" 로비아가 말했다. "그건 어렵지 않아요. 저 로마 사람의 행위는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이상화되어서 우리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자 보스콜리는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것을 탄식한다. 한 달만 더 훌륭한 수도사들과 살 수 있다면 완전히 종교적인 마음이 될 텐데! 계속해서 이들 사보나롤라 추종자들이 성서를 잘 모른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보스콜리는 겨우 주기도문과 아베마리아를 외울 수 있었다. 그는 이제 로비아에게, 친구들에게 성서를 공부하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살아서 배운 것만을 죽을 때에 지니기 때문이다. 이어서 로비아는 그에게 요한복음을 들려주고 설명해준다. 이상한 일이지만 이 사람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신성은 극히 자명하였지만, 그의 인성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는 그리스도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마치 그리스도가 숲에서 나와 자기를 향해 걸어오는 것처럼" 분명하게 이해하고 싶어 한다. 그러자 그의 친구는 그에게 겸손하라고 말한다. 그런 일은 사탄이 보낸 의심이라고 말이다. 그는 임프루네타로 순례를 하겠다는 젊은 날의 맹세를 지키지 못한 것을 생각해냈다. 친구는 그를 위해 자기가 대신 순례를 하겠노라고 약속한다. 그사이에 그가 부탁한 대로 그의 고해를 받기 위해 사보나롤라의 수도원에서 수도사가 온다. 그리고 그에게 우선 폭군 살해에 대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견해를 해석해서 들려준다. 그리고 그에게 힘을 가지고 죽음을 견디라고 말한다. 보스콜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신부님, 그런 일로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위해서는 철학자로 충분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죽도록 도와주십시오." 영성체, 작별, 처형 등 나머지 일은 대단히 감동적인 방식으로 서술된다. 특히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보스콜리가 머리를 사형대에 올려놓고서 형리에게 한순간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한 일이다. "그는 그동안 내내 (사형선고를 받은 이후로) 신과의 가까운 합일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소원만큼 그 일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 그는 이 순간에 있는 힘을 다하여 자신을 신께 완전히 바치려고 생각하였다." 분명 사보나롤라파의 표현방식이 - 절반밖에 이해되지 않은 상황에서 -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종류의 고백들이 더 있다면 당시의 정신적인 모습에 대해서 많은 중요한 점들이 더욱 풍부하게 드러날 것이다. 어떤 논문이나 문학 작품도 전해주지 못하는 것들을 말이다. 그렇다면 타고난 종교적 충동이 얼마나 강했는지, 종교에 대한 각 개인의 관계가 얼마나 주관적이고 얼마나 흔들리는 것이었는지, 그리고 어떤 종류의 강력한 적대자들이 종교심에 마주서 있었는지 우리는 더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일에 쓸모없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사람들이 내적으로 발효되던 이 시기를 관찰하지 않는다면 서양 정신의 역사는 불완전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한편 이 관찰은 이런 사상의 발전에 동참하지 않는 다른 나라의 국민들을 관찰하는 일을 다행스럽게도 면제해줄 수가 있다. 그러나 다시 불멸에 관한 문제로 돌아가기로 하자. 

     

     

     

    내용 출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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