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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불멸에 대한 의문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11. 11. 11:52
높은 발전을 이룬 사람들 사이에서 불신앙이 이토록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면 이것은 세계를 발견하고 그것을 말과 그림으로 재생한다는 지상의 위대한 과제가, 고도의 정신력과 영혼의 모든 힘을 요구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런 르네상스의 필연적인 세속성에 관해서는 앞에서 이미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나아가 이런 탐구와 예술을 통해서 다시 똑같은 필연성을 가지고 일반적인 회의와 의문의 정신이 생겨 나왔다. 그런 정신이 문학에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예를 들어 성서 이야기에 대한 비판이 극히 개별적인 시작들만 보였다고 해서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다만 그것은 위에서 말한 대로 모든 분야에서 묘사하고 그릴 필요성에 밀려서, 다시 말해 긍정적인 예술 충동에 밀려서 잘 들리지 않은 것뿐이다. 그 밖에도 이런 정신이 이론적으로 작업을 시작하려고만 하면 아직 존재하고 있는 교회의 압력도 방해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회의의 정신은 피할 수 없이 그리고 특별히 죽은 다음의 상태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다. 여기서 일일이 거론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자명한 이유들에서 말이다.
여기 덧붙여서 고대는 이 일 전체에 이중적인 방식으로 작용하였다. 첫째로 사람들은 고대인들의 심리를 익히려고 애쓰고 결정적인 지식을 얻기 위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자를 연구했다. 당시의 루키안 대화에서 카론은 메르쿠리우스에게, 자기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에 싣고 강을 건너가는 도중에 직접 그에게 영혼 불멸의 신앙에 대해 물어보았다고 말했다. 이 조심스러운 철학자는 이미 몸은 죽었는데 정신은 계속 살아 있으면서도 영혼불멸에 대하여 명백한 답변을 해서 체면 깎이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수백 년이나 지난 다음 그의 저작들을 해석하는 일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럴수록 사람들은 영혼의 진짜 본성, 그 기원, 육체보다 미리 존재한다는 주장, 모든 인간의 영혼이 하나라는 주장, 영혼의 절대적 영원성, 영혼의 이동 등과 관련해서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른 철학자들의 저술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을 설교단으로 끌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논쟁은 15세기에는 아주 시끄러웠다. 한 편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영혼의 불멸을 가르쳤다고 증명하였다. 다른 편은 영혼의 존재를 믿기 위해서는 영혼이 자기 앞의 의자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완고함을 탄식하였다. 필렐포는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의 장례식 연설에서 불멸에 유리한 쪽으로 고대와 아랍 철학자들의 발언을 다양하게 제시하였다. 그리고 좁다란 2절지 한 장 반에 인쇄된 이 발언 들을 다음과 같은 두 줄의 말로 끝맺었다. "이것 말고도 모든 진리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신・구약 성서가 있습니다." 그사이에 피렌체 플라톤주의자들은 플라톤의 영혼설을 가지고 등장했다. 예를 들면 피코 델라 미란돌라 같은 사람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근본적으로 보충한 영혼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반대자들의 의견이 교양 계층의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16세기 초에 교회가 그에 대해 느낀 분노가 너무 커서 레오 10세는 1513년에 라테란 공의회에서 영혼의 불멸과 영혼의 개체성을 옹호하는 교령을 내려야 할 정도였다. 영혼의 개체성은 모든 인간의 영혼은 하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반대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몇 년 뒤에 폼포나초의 책이 나왔다. 이 책에는 불멸성에 대한 철학적 입증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들어 있다. 그러자 반대 저술들과 변론서들이 계속되다가 가톨릭 측의 반응에 마주치고서야 잠잠해졌다. 영혼이 신 안에 미리 존재한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근거한 것으로 오랫동안 아주 널리 퍼진 개념이었고 시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다. 죽은 다음에 영혼이 어떤 형태로 지속되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고대가 이 문제에 대해서 작용한 두 번째 방식은 주로 키케로의 <공화국> 제 6권에 나오는 저 특이한 단상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것은 '스키피오의 꿈'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단상이다. 마크로비우스의 주석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키케로 작품의 후반부가 그렇듯이 그냥 지나쳐갔을 부분이다. 그러나 이제 수많은 필사본들이 나오고 인쇄술이 보급되자 곧바로 인쇄본이 만들어지고 여러 번이나 새로 주석이 붙여졌다. 그것은 공간들의 조화로 가득 찬, 위대한 사람들을 위한 빛나는 저승의 묘사였다. 점차 고대 작가들의 다른 진술 들과 여기 덧붙여져서 이 이교의 하늘은, 역사적 위대함과 명성의 이상이 기독교적 삶의 이상들을 구석으로 몰아넣은 것과 똑같은 정도로 기독교의 하늘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죽은 다음에 개성이 전체적으로 없어진다는 가르침의 경우처럼 사람들의 감정은 모욕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페트라르카는 전혀 성서를 언급하지 않은 채, 이 '스키피오의 꿈'과, 키케로의 다른 저술들에 나오는 발언들과, 플라톤의 <파이돈>에 희망을 걸었다. 다른 곳에서 그는 이렇게 묻는다. "어째서 나는 카톨릭 교도로서 내가 명백하게 이교도에게서 찾아낸 희망을 공유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 얼마 뒤에 콜루치오 살루타티는 <헤라클레스의 노동>을 썼다. 그 책은 마지막에 지상의 엄청난 노고를 이겨낸 정력적인 사람들은 그 권리에 따라 마땅히 별들 위에 거처를 잡는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단테가, 분명히 천국에 넣어주고 싶은 위대한 이방인들도 지옥의 입구에 있는 연옥보다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한다고 굳게 고집하였다면, 이제 시문학은 저승에 대한 새롭고 자유로운 이념을 향해 손을 뻗쳤다. 코시모는 베르나르도 풀치가 그의 죽음에 바친 시에 따르면 하늘에서 키케로의 영접을 받는다. 키케로도 또한 파비우스 형제들, 쿠리우스, 파브리치우스와 다른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조국의 아버지'로 불렸다. 코시모는 그들과 더불어 흠 없는 영혼들만이 노래하는 합창대의 자랑거리가 된다.
그러나 옛날 작가들에게는 또 다른, 마음에 덜 드는 저승의 이미지가 있었다. 곧 호메로스와 다른 시인들의 그림자 왕국이다. 그들은 이 개념을 달콤하게 만들거나 인간화시키지 않았다. 조비아노 폰타노는 어딘가에서 산나짜로의 입을 통해서, 어느 날 이른 아침 절반쯤 잠든 상태에서 보았던 환상을 말하고 있다. 죽은 친구 페란두스 야누아리우스와 전에 자주 영혼의 불멸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는데, 그가 자기 앞에 나타났다. 그래서 그는 친구에게 영원과 지옥 형벌의 두려움이 진짜인가 물었다. 그림자는 오디세우스가 물었을 때 아킬레우스가 한 것처럼 한참 동안 침묵하고 난 다음에 대답하였다. "자네에게 확인해줄 수 있는 것은, 우리들 육체에서 분리된 존재는 육체 속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아주 강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야." 그리고 그는 인사하고 사라졌다.
죽은 뒤의 상태에 대한 이런 견해들이 가장 본질적인 기독교 도그마의 해체를, 일부는 전제로하고 일부는 야기한다는 사실을 못 알아볼 수는 없다. 죄와 구원의 개념들은 거의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 분명하다. 앞에서 이미 설명한 참회 설교자들과 참회 열기의 작용 때문에 헛갈려서는 안 된다. 개인주의적으로 발전된 계층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거기 동참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들이 거기 참여한 주요 원인은 감동의 필요성, 격렬한 감정의 해소, 나라의 큰 재앙에 대한 두려움, 하늘을 향하여 도움을 구하는 외침 등이었다. 양심을 일깨우는 일이 반드시 죄의식과 구원 욕구의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었다. 겉으로 아주 격렬하게 보이는 참회도 꼭 기독교적인 의미에서의 후회를 전제로 한 것도 아니었다. 강력하게 발전된 르네상스 사람들이 우리에게 자기들의 원칙은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해준다면. 이것은 물론 도덕적으로 무관한 일들, 영리하지 못하고 합목적적이지 않은 것들 만을 가리킨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후회를 하찮게 여기는 마음은 도덕적인 영역으로도 확장된다. 일반적이고 개인적인 힘의 의식이 바로 그런 마음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더 높은 저승 세계와 끊임없이 관계를 가지는 수동적이고 명상적인 기독교 정신은 이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했다. 마키아벨리는 더욱 확대된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런 기독교 정신은 국가와 국가의 자유를 옹호하는 데 쓸모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용 출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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