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유신론 Theismus
    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11. 18. 09:59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깊은 본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강력한 종교심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가?

    그것은 이름 붙이기 나름이지만 유신론 혹은 이신론 Deismus이다. 감정을 위해 다른 대체물을 구하거나 찾아내지 않고서 기독교를 벗어버린 사고방식이 이신론을 주도하였다. 유신론은 신적 존재를 향한 더욱 높은 긍정적 신앙심이다. 중세는 이런 신앙심을 알지 못했다. 이것은 기독교를 배제하지 않으며 언제라도 죄, 구원, 불멸성 등 기독교의 가르침과 결합될 수 있지만. 그러나 또한 그것 없이도 사람들 마음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경건성은 때때로 유치한 단순성을 가지고, 절반은 이교적인 울림을 가지고 등장한다. 신은 여기서 모든 소원을 이루어지는 존재로 나타나는 것이다. 알베르티는 결혼식을 한 다음에 아내와 함께 마리아상이 놓인 집 안의 제단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성모가 아니라 신께 기도드렸다. 신께서 자기들에게 재물을 올바로 사용하게 하고, 즐거움과 단결 속에서 오래 살고, 남자 후손을 많이 주실 것을 기도하였다. "나 자신을 위해서는 부유함, 우정, 명예를, 그녀를 위해서는 흠 없는 태도, 정직성 등을 구했으며 그녀가 좋은 주부가 되도록 해주십사 기도드렸다."

    표현까지 강하게 고대의 색채를 띨 경우 때로는 이교의 문제와 유신론적 확신을 구별하기 어렵다.

     

     

     

     

     

    이런 마음가짐은 불행할 경우에 더욱 놀랄 정도의 진실성으로 표현되곤 한다. 피렌주올라는 여러 해 동안 열병을 앓던 말년에 신을 향한 몇 가지 문서들을 남기고 있다. 여기서 그 자신은 분명하게 신앙심 깊은 기독교도라고 여기고 있지만, 순수한 유신론적 의식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죄라고도, 시련이라고도, 다른 세상을 위한 준비라고도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과 신 사이의 문제일 뿐이다. 신은 인간과 그의 절망 사이에 삶을 향한 강력한 사랑을 끼워놓았다. "나는 저주하지만, 오로지 자연을 향해서만 저주를 합니다. 당신의 위대하심이 내게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금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게 죽음을 주십시오. 주여, 간청하오니 지금 죽음을 주십시오!" 

    이런 혹은 비슷한 발언에서 의식되고 훈련된 유신론의 확실한 증거를 찾으려고 해도 물론 소용이 없다. 당사자들 일부는 여전히 자신을 기독교도라고 여기고 여러 가지 이유에서 현존하는 교회의 가르침을 존경하였다. 그러나 생각을 분명하게 할 것을 강요받은 종교개혁의 시대에 이런 사고방식은 뚜렷한 의식이 되었다. 이탈리아 개신교도의 상당수는 삼위일체의 반대자로 알려졌고, 소치누스 일파는 먼 곳으로 도망쳐서 자기들의 원칙에 맞는 교회를 건설하려는 놀랄만한 시도를 하였다. 지금까지 말한 것들로부터 인문주의적 합리주의 말고도 또 다른 정신들이 합리주의 영역에서 활동하였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으리라고 본다. 

    전체적으로 유신론적 사고 방식의 중심점은 피렌체의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특히 로렌조 일 마니피코 자신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사람들의 이론적 작업과 편지들은 그들의 본질을 절반만 알려준다. 로렌조가 젊은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기독교 교리를 말했다는 것이 사실이고, 피코는 사보나롤라 통치 아래로 들어가 수도사의 금욕적인 생활에 합류하기도 하였다. 다만 저 학파의 정신의 최종 결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로렌조의 찬가들에서는 거리낌 없이 유신론이 드러나고 있다. 그것도 세계를 위대한 도덕적 ・ 물리적 우주로 여기려고 하는 관점에서 나온 유신론이다. 중세 사람들은 세계를, 반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날까지 교황과 황제가 지켜야 할 비탄의 골짜기로 보았고, 르네상스의 숙명론자들은 강력한 에너지의 시대와 둔한 체념의 시대, 혹은 미신의 시대를 번갈아가며 보여주었다. 반면에 여기 정선된 정신들의 모임에서는, 눈에 보이는 세계는 신에 의해 사랑으로 만들어졌고, 세계는 신 안에 미리 존재하는 모범을 그대로 반영한 모습이고, 신은 지속적으로 세상을 움직이고 계속 창조하는 분이라는 생각이 나타난다. 개인의 영혼은 처음에는 신의 인식을 통하여 '그분'을 영혼의 좁은 한계 안으로 몰아넣지만, 그러나 그분을 향한 사랑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무한한 영역으로 확장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지상에서의 영혼의 행복이다. 

    여기서 중세의 신비주의가 플라톤 학설 및 독자적인 현대 정신과 공명을 얻게 된다. 어쩌면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인식의 가장 소중한 열매 하나가 여기서 여물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바로 이런 인식으로 해서 현대 세계의 선도자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내용 출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이.탈.리.아 역사 > 르네상스 rinascimento'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혼 불멸에 대한 의문  (0) 2020.11.11
    흔들리는 신앙심  (0) 2020.11.10
    축성 사제  (0) 2020.11.09
    마녀 박해  (0) 2020.11.07
    마녀  (0) 2020.11.03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