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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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사교인이.탈.리.아 역사/16c - 19c 2020. 8. 10. 08:41
궁정인 카스틸리오네가 서술한 을 보면 그들은 궁정을 위해서,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오히려 그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를 훈련하였다. 그는 당시의 교양이 필연적으로 요구하던 사회적인 이상형이었다. 그가 궁정을 위한 존재라기보다는 궁정이 그에게 필요하였다. 모든 것을 고려해보면 그런 인간은 어떤 궁정에서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 자신이 완전한 영주의 재능과 태도를 가지기 때문이고, 외적인 일에서나 정신적인 일에서 그의 조용한 탁월함은 너무나도 독립적인 천성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궁정인을 움직이는 내적 추진력은 영주에 대한 봉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완성이다. 이것을 분명하게 알기 위해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궁정인은 전쟁이 일어나면, 쓸모는 있지만 위험하고 희생과 결합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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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 살롱의 문학 형식들이.탈.리.아 역사/16c - 19c 2020. 8. 9. 13:30
적어도 16세기 초에 사교는 법칙에 맞게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것은 암묵적인 합의, 때로는 큰소리로 고백되고 규정된 합의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 합의는 물론 합목적성과 단정한 태도를 지향하는 것으로서 단순한 에티켓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지속적인 단체의 특성을 띤 거칠고 무뚝뚝한 생활권에서는 법규들과 형식적인 입회식이 있었다. 예를 들면 바사리가 전해주는 피렌체 예술가 단체들이 그렇다. 그런 모임은 당시 가장 중요한 희극들의 공연을 가능하게 했다. 그에 반해서 순간적인 가벼운 모임은 그 모임에서 가장 유명한 숙녀가 말하는 규정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곤 하였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도입부는 온 세상이 다 아는 것이다. 그리고 팜피네아가 이 모임을 지배하는 것을 유쾌한 허구라고 여긴다. 이 경우는 물론 허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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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퇴하는 상징 체계이.탈.리.아 역사/중세역사 medioevo 2020. 6. 3. 18:40
그 시대의 종교적 감동은 앞에서 보았듯이 풍부하고 채색된 표현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었다. 정신은 신비에 하나의 감지할 수 있는 형식을 부여함으로써 신비를 포착한다고 믿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물질적인 표징들하에 경배하고자 하는 욕구는 끊임없이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냈다. 14세기에는 예수를 향한 넘치는 사랑의 눈에 보이는 대상들, 즉 십자가와 어린 양만으로는 부족하게 된다. 그리하여 예수 이름에 대한 경배가 더하여지며, 그것은 십자가에 대한 경배를 압도할 정도로 성행한다. 그리스도를 눈에 보이는 형상하에 경배하려는 갈망은 곧 성체 현시대라는 합법적인 충족을 발견했다. 그것은 신성한 면병에 대한 숭배를 열어놓았다. 그러나 그것은 곧 신의 사랑을 상징하는 방사상 빛살무늬의 태양형태를 취했다.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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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의 기초로서의 말 : 국어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6. 2. 16:40
예술 작품으로서의 사교, 국민 생활의 의식적인 최고의 산물로서의 사교는 언어를 그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삼고 있다. 이상적인 언어 중세 전성기에 유럽 여러 나라의 귀족 계급은 교제를 위해서나 문학을 위해서 하나의 '궁정언어'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였다. 아주 일찍부터 방언들이 광범위하게 갈라져 있었던 이탈리아에서도 13세기에는 이른바 단 하나의 '궁정어curiale'가 있었다. 그것은 궁정과 시인들에게 공통된 언어였다. 결정적인 사실은 사람들이 그것을 의식적 열정을 가지고 모든 교양 계층의 언어로, 문장 언어로 만들려고 했다는 점이다. 1300년 이전에 이미 만들어진 의 머리말은 이런 의도를 공공연히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언어는 분명하게 문학과 분리되어서 다루어지고 있다. 최고의 표현은 짧은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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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외면적 세련화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5. 28. 16:59
출생의 차이가 이익을 주는 일이 줄어들수록 개인은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부각시킬 필요가 더욱 커졌다. 그럴수록 사교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제한되거나 고귀하게 될 수 밖에 없다. 개인의 태도나 높은 사교 형식은 자유롭고도 의식적인 예술이 된다. 의상과 유행 사람들의 외면적인 모습과 주변, 그리고 일상 생활의 풍습이 이탈리아 바깥의 민족들보다 더 완벽해지고, 더 아름다워지고, 더 세련되어져 갔다.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소유했던 집들은 미술사가 다룰 분야이다. 여기서는 이런 집들이 쾌적함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조화롭고 합리적인 사실이라는 측면에서 북유럽 권력자들의 성과 도시궁전을 얼마나 능가하는 것이었던가 하는 것만을 지적하면 될 것 같다. 옷차림은 너무나도 많이 바뀌어서 다른 나라의 유행과 일관된 비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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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생활의 유형들이.탈.리.아 역사/중세역사 medioevo 2020. 5. 26. 18:19
매우 외면화된 종교의 인습 속에서 민중은 아주 힘찬, 불안과 엑스타시를 줄 정도로 힘찬, 그러나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는 후에 프로테스탄티즘이 제기하게 될 문제나 정신적인 감동들은 아무것도 제기하지 않는 그런 신앙을 갖고 있었다. 일상적인 삶의 불경한 순박성과 미온성은 간간이 경련적으로 민중을 사로잡곤 하는 격정적인 신앙의 깊은 감동들에 의해 끊기곤 하였다. 만약 우리가 이 대중을 단순히 경건한 자들과 세속적인 자들로 나누려든다면, 우리는 약하고 혹은 강한 종교적 긴장들의 대립을 잘 이해할 수 없다. 라틴 민족들은 아마도 북유럽사람들보다 더 쉽게 세속적인 삶과 높은 종교적 교양의 복된 순간들 사이의 모순을 잘 참고 견딘다. 이 시대의 종교 생활이 보이는 모순 중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사제 계급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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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평준화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5. 19. 14:32
피렌체에서 기사의 작위 그러나 피렌체 사람들 사이에서 특별한 종류의 신분 상승 욕구는 예술과 교양에 대한 숭배와 극히 웃기는 방식으로 서로 어긋난다. 맨 먼저 유행하게 된 것은 기사 작위를 얻으려는 노력이었다. 이런 작위가 이미 그 옛날 영광의 그림자조차도 잃어버리고난 다음에 말이다. 프랑코 사케티는 14세기 말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몇 년 전에는 빵 굽는 사람, 양털 긁어 모으는 사람, 고리대금업자, 환전상, 사기꾼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수공업자들이 기사가 되는 꼴을 누구나 볼 수 있었다. 도대체 관리가 지방 도시에 기사로 등장하려고 그런 작위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작위는 보통의 직업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오 불행한 작위여, 어쩌다가 그렇게까지 추락했는가! 그들은 기사의 의무를 늘어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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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계층 간의 평등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5. 17. 19:45
완전히 발전된 하나의 전체를 이룬 문화 시대는 국가적 공동 생활, 종교, 예술, 학문 등으로만 표현되지 않고 사교 생활에도 뚜렷한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중세는 나라에 따라 별로 다르지 않은 궁정과 귀족들의 풍속과 예의, 그리고 중세 특유의 중간 계층을 만들어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풍속은 가장 중요한 점들에서 이와 대립되고 있다. 우선 그 기반이 다르다. 고급 사교계에서 신분상의 차별이 없어지고 현대적인 의미의 교양 계층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떤 출신인가 하는 것은 상속받은 재산과 보장된 여가 시간 같은 것과 관련될 경우에만 영향력을 가졌다. 이것은 물론 절대적인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중세의 계급 범주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었고, 비록 이탈리아 바깥의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