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정 살롱의 문학 형식들이.탈.리.아 역사/16c - 19c 2020. 8. 9. 13:30
적어도 16세기 초에 사교는 법칙에 맞게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것은 암묵적인 합의, 때로는 큰소리로 고백되고 규정된 합의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 합의는 물론 합목적성과 단정한 태도를 지향하는 것으로서 단순한 에티켓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지속적인 단체의 특성을 띤 거칠고 무뚝뚝한 생활권에서는 법규들과 형식적인 입회식이 있었다. 예를 들면 바사리가 전해주는 피렌체 예술가 단체들이 그렇다. 그런 모임은 당시 가장 중요한 희극들의 공연을 가능하게 했다. 그에 반해서 순간적인 가벼운 모임은 그 모임에서 가장 유명한 숙녀가 말하는 규정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곤 하였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도입부는 온 세상이 다 아는 것이다. 그리고 팜피네아가 이 모임을 지배하는 것을 유쾌한 허구라고 여긴다. 이 경우는 물론 허구지만, 실제로는 자주 일어나는 일을 바탕으로 한것이다. 거의 2백년 뒤에 나타난 피렌주올라는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의 단편소설을 시작하는데, 여기서는 훨씬 현실에 가깝다. 그는 등장 인물들이 함께 시골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모임의 여왕이 취임 연설을 하게 만들고 있다. 우선 맨 먼저 언덕으로 산책을 하면서 철학적인 아침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류트 연주와 노래를 곁들인 식사, 이어서 서늘한 방에서 지난 밤에 내준 주제에 맞게 새로 지은 시 낭송, 샘가로 저녁 산책을 나가 그곳에 자리를 잡고 각자가 이야기를 하나씩 한다. 그리고 저녁 식사와 유쾌한 담화, "우리 여자들이 듣기에도 괜찮고, 남자들이 술에 취한 척해 보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이야기들"
반델로는 개개의 단편들을 위한 도입부 혹은 헌사에서 자신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러 모임들을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전제하고서 이런 종류의 도입 연설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는 다른 방식으로 이들 모임들이 얼마나 부유하고 다양하고 쾌적한 것인지를 짐작하도록 만들고 있다. 많은 독자들은 그토록 부도덕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모임이라면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모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오히려 다음과 같은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에도 불구하고 외적인 형식이나 상궤에서 벗어나지 않고 때때로 극히 진지한 토론과 충고를 할 수 있다면 이 모임이 얼마나 확고한 기반 위에 자리잡고 있겠는가라는. 교제의 더 높은 형식에 대한 요구가 그 무엇보다도 컸던 것이다. 카스틸리오네가 우르비노의 귀도발도의 궁정에서 한 것처럼, 또는 피에트로 벰보가 아솔로 성에서 가장 고귀한 감정들과 삶의 목적에 관해서 토론을 이끌고 있는 경우처럼 지나치게 이상화된 모임을 척도로 삼을 필요는 없다. 반델로의 모임은 그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외설스러움까지도 함께 고상하고 가벼운 예절에 대해서, 도회지 식의 친절함에 대해서, 그리고 진정한 자유로움에 대해서, 또한 이 모임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정신과 섬세한 시적 딜레탕티즘 등에 대해서 최고의 척도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모임의 가치에 대한 중요한 암시는 바로, 이런 모임의 중심점을 이루는 귀부인들이 그 명성을 조금도 해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서 유명해지고 높은 존경을 받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반델로의 후원자들 중에는 에스테 가문 태생인 이사벨라 곤자가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행실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멋대로 사는 젊은 시녀들로 인해 나쁜 구설수에 올랐다. 줄리아 곤자가 콜론나, 이폴리타 스포르차, 비앙카 랑고나, 체칠리아 갈레라나, 카밀라 스카람파 등은 전혀 비난을 받지 않았거나 아니면 그녀들의 사회적 명성 이외에 다른 태도에 대해서는 주목을 받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비토리아 콜론나는 완전히 성녀였다.
도시에서, 별장에서, 그리고 온천장에서 이런 모임들이 아무런 근심없이 시간을 보낸 보고들 중에서 여기 특별히 서술할 만한 것은 없다. 어쟀든 나머지 유럽의 사교계보다 탁월한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델로의 말을 들어보라. 그러고 나서 반델로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이탈리아에서 전해지기 이전에 프랑스에서 이런 종류의 사교 모임이 가능했을까를 자문해보라. 물론 당시 정신의 영역에서 가장 위대한 것들은 이런 살롱의 도움 없이, 그리고 살롱에 대한 고려 없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예술과 문학 운동을 위한 살롱의 가치를 너무 작게 평가한다면 부당한 일이다. 그것이 당시 어떤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던 것을 만들어내도록 도와주었다는 의미만 해도 그렇다. 즉 만들어진 것들에 대한 평가와 동참 말이다. 이런 업적을 빼고라도 이런 종류의 모임은 그 자체로 저 특수한 문화가 필연적으로 피워낸 꽃이었다. 그 꽃은 당시 이탈리아의 것이었지만 그 이후로 전유럽의 것이 되었다.
로렌조 일 마니피코의 살롱
피렌체에서 사교 생활은 문학과 정치에 의해 강하게 규정되었다. 로렌조 일 마니피코는 사람들이 흔히 믿듯이 영주로서의 지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특별한 천성으로 자기 주변을 완전히 지배했던 인물이다. 그는 서로 지극히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그가 자기 집안의 위대한 가정교사 폴리찌아노를 보호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학자 시인의 오만한 태도는 메디치 가문이 준비하고 있던 영주로서의 등급과 예민한 아내에 대한 배려 등이 요구하는 필연적인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그 대신에 폴리찌아노는 메디치 가문의 명성의 전달자이며 살아있는 상징이었다.
로렌조는 진짜 메디치 가문의 방식대로, 자신의 사교의 즐거움을 손수 찬양하고 기념비적으로 묘사하기를 좋아하였다. 즉흥적으로 지은 <매사냥>이란 훌륭한 글에서 그는 자기 친구들을 놈담조로 묘사하였고, <향연>에서는 심지어 극단적인 소극 형식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이 두 경우에서 모두 우리는 극단적으로 진지한 그들의 교제 능력을 오히려 더욱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사실 <향연>이란 제목은 정확하지 않다. 원래는 <포도 수확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로렌조가 가장 유쾌한 방식으로 단테의 지옥편을 패러디한 것으로, 대개는 파엔짜 거리에서 약간 술에 취한 채 시골길을 걸어오는 자신의 좋은 친구들을 하나씩 만나는 내용이다. 가장 아름다운 해학은 8번 3행시에 나오는 피오바노 아를로토의 모습이다. 그는 자신의 잃어버린 갈증을 찾아 나서는데 이 목적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것을 매달고 간다. 바싹 마른 고기, 청어 한 마리, 둥근 치즈, 작은 소시지, 소금에 절인 정어리 네 마리,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땀 속에서 요리되고 있다." 친구들과의 교제에 관해서는 로렌조의 편지들과 그의 지적이고 철학적인 담화들에 대한 보고들이 풍부한 정보를 전해준다. 나중에 피렌체에 만들어진 다른 사교 모임들은 일부는 이론적인 정치 클럽들이었다. 그들은 시적, 철학적인 측면도 있었다. 예를 들면 로렌조가 죽은 다음 루첼라이의 여러 정원에서 모인 플라톤 아카데미 같은 것이 그것이다.
영주들의 궁정에서 사교 모임은 물론 영주의 개성에 달려 있었다. 16세기 초 이후로 그런 모임은 몇 개밖에 남지 않았고, 그나마 이런 맥락에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로마에서 그런 특별한 종류의 사교 모임은 레오 10세의 궁정이 유일한 것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그것은 세계사에 두 번 다시 없었던 일이다.
출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이.탈.리.아 역사 > 16c - 19c'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니에리즘의 예술관 (0) 2020.08.23 마니에리즘 II (0) 2020.08.22 마니에리즘의 개념 (0) 2020.08.14 여성의 지위 (0) 2020.08.11 완전한 사교인 (0) 2020.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