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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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에리즘의 예술이론이.탈.리.아 역사/16c - 19c 2020. 9. 11. 12:24
예술이론에서도 일반적인 정신적 위기에 상응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르네상스의 자연주의, 철학적 용어를 빌리면 르네상스의 '소박한 독단주의' 와는 반대로 마니에리즘은 최초로 예술과 관련된 인식론적 문제, 즉 예술과 자연의 일치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르네상스에서 자연은 예술적 형식의 근원이었고, 예술가들은 자연에 산재해 있는 미의 요소들을 수집・정리하는 '종합'의 행위를 통해 형식을 획득하였다. 그러니까 예술의 패턴은 비록 주관에 의해 조직되지만, 그 원형은 이미 객관 속에 있었다. 매너리즘은 이러한 예술의 모사설을 파기한다. 새로운 이론에 의하면 예술이 '자연을 따라서' 형식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자체가 '자연과 함께' 창조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로마조와 페데리코 주카리는 모두 예술의 근원은 자발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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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9. 8. 08:58
결혼생활과 사랑 그러나 상상력이 지배자의 모습을 하고 도덕성에 영향을 미친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허락되지 않은 남녀 간의 교제에 대해서였다. 잘 알려져 있듯이 중세 시대는 통상적인 매춘을 전혀 꺼리지 않았다. 매독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당시 온갖 종류의 매춘에 대한 비교 통계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이탈리아에서 특징으로 보이는 것은 결혼과 그 권리가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더 크게 자리 잡고, 어쨌든 더욱 의식화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조심스럽게 제외되어있던 높은 신분의 처녀들에 대해서는 관찰이 되지 않는다 모든 정열은 결혼한 여인들을 향한 것이었다. 결혼이 명백하게 감소하지 않았다는 것, 가족 생활이 광범위하게 손상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사람들은 자주 멋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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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과 예술이.탈.리.아 역사/16c - 19c 2020. 9. 6. 23:49
트렌토 종교회의는 예술에서의 형식주의와 감각주의를 모든 면에서 혐오하였다. 이 종교회의의 정신에 입각해서 질리오는 화가들이 소재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다만 그들의 뛰어난 기예의 숙련만을 과시하려 한다고 불평을 하고 있다. 기예적인 숙련에 대한 이와 같은 반발과 직접적인 감정 내용에 대한 요구는 종교회의에 의한 교회음악 정화운동, 특히 음악적 형식을 가사의 내용에 종속시키고 지오반니 피에를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를 절대적인 모범으로 인정한 사실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트렌토 종교회의는 그 도덕적인 엄격주의와 반형식주의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운동과는 달리 예술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다. 에라스무스의 저 유명한 "루터주의가 지배하는 곳에 문예는 소멸한다"라는 구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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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토 종교회의와 예술이.탈.리.아 역사/16c - 19c 2020. 9. 4. 23:19
트렌토 종교회의는 정치적 현실주의의 최대 수련장이 되었다. 이 회의는 교회제도와 신앙의 기본 원칙을 현대 생활의 여러 조건과 요구에 적응시키는데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조치들을 냉철하고도 실무적인 태도로 채택하였다. 이 회의의 정신적 지도자들은 정통적인 신앙과 이단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을 긋고자 하였다. 카톨릭교회로부터의 이탈을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면, 적어도 이러한 폐해가 계속적으로 확대되는 것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지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들은 당시의 주어진 상황에서는 대립관계를 얼버무리기보다 그것을 강조하는 편이 더 현명하고, 신도들에 대한 요구조건을 완화시키는 것보다 그것을 가중시키는 편이 더 바람직한 일임을 깨달았다. 이러한 견해의 승리는 통일된 서양 기독교 세계의 종언을 의미했다. 그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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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주의 정치의 이념이.탈.리.아 역사/16c - 19c 2020. 9. 3. 08:24
1541년 레겐스부르크 회의에서 콘타리니의 종교화해 협상이 결렬됨으로써 카톨릭 개혁운동의 '인문주의적' 제1기는 종말을 고한다. 개명되고 인간적이며 관용적이던 사톨레토, 콘타리니, 폴레 들의 시대도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모든 분야에서 현실주의의 원리가 승리를 구가했다. 이상주의자들은 현실을 정복할 능력이 없음이 입증되었다. 교황 바오로 3세(재위 1534~1549)는 이미 관용적인 르네상스에서 비관용적인 반종교개혁운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대표한다. 1542년에는 종교재판제도가, 1543년에는 출판 검열제도가 실시되었고 1545년에는 트렌토 종교회의가 열렸다. 레겐스부르크에서의 실패는 카톨릭교회로 하여금 전투적인 태도를 취하게 했고 권위와 권력에 의해서 카톨릭의 재건을 기도하도록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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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이.탈.리.아 역사/16c - 19c 2020. 9. 2. 22:19
비토리아 콜론나와 그녀의 친구들은 인문주의적 교양을 갖추고 특히 종교적 문제에 관심을 가진 모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미켈란젤로 역시 1538년 이후로 그녀의 친구가 되었다. 포르투갈 출신의 화가 프란체스코 데 홀란다는 한 친구에게서 이들 친우들의 종교적 열정에 대해 전해 듣고 그의 [회화에 관한 대화]에서 이를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그는 몬테 카발로에 있는 산 실베스트로 성당에서 당시 유명했던 한 신학자가 사도 바울의 편지에 관해 이야기하던 집회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아마 콜론나를 중심으로 이러한 모임에서 그의 정신적 부활과 후기 작품에서 보이는 정신주의적 양식을 낳은 결정적인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그가 겪은 이러한 종교적 발전은 르네상스에서 반종교개혁운동으로 이행하는 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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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상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9. 1. 19:26
명예심 우선 악인을 강력하게 제지하는 도덕적인 힘을 거론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해보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명예심'을 그런 힘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현대인이 자신의 잘못으로 혹은 잘못이 없이 다른 모든 것, 곧 믿음, 소망,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남는 것으로서, 양심과 이기심이 기묘하게 혼합된 것을 말한다. 이 명예심은 많은 이기심과 큰 죄악들과도 잘 어울리고, 엄청난 기만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개인의 품성 안에 남아 있는 모든 고귀한 것과 결합될 수도 있고, 또한 이 원천에서 새로운 힘들이 만들어져 나올 수도 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의미에서 그것은 오늘날 개인주의적으로 발전한 유럽인들에게서 행동의 결정적인 기준이 되었다. 도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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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8. 30. 17:17
신, 미덕, 불멸성 등 최고의 가치들에 대한 각 국민의 태도는 어느 정도까지는 탐구할 수 있지만 엄격하고 정확하게 서로를 비교하기는 매우 힘들다. 이 영역에 관한 진술이 분명하면 할수록 그것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일을 경계해야 하며, 그런 일반화를 경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도덕성에 대한 판단이 그렇다. 각 국민들 사이의 개별적인 대립과 뉘앙스들을 입증할 수는 있지만 전체에 대한 절대적 총계를 내는 것은 우리 인간의 통찰력의 한계를 넘는 일이다. 국민의 성격, 죄의식, 양심 등을 계산하는 것은 영원히 비밀로 남아 있다. 결핍된 것이 또 다른 측면에서는 국민적인 특성으로, 미덕으로 보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여러 국민에 대하여 일반적인 검열을 행하고, 그것도 가장 격렬하게 그런 일을 하는 작가들은 그들이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