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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8. 30. 17:17
신, 미덕, 불멸성 등 최고의 가치들에 대한 각 국민의 태도는 어느 정도까지는 탐구할 수 있지만 엄격하고 정확하게 서로를 비교하기는 매우 힘들다. 이 영역에 관한 진술이 분명하면 할수록 그것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일을 경계해야 하며, 그런 일반화를 경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도덕성에 대한 판단이 그렇다. 각 국민들 사이의 개별적인 대립과 뉘앙스들을 입증할 수는 있지만 전체에 대한 절대적 총계를 내는 것은 우리 인간의 통찰력의 한계를 넘는 일이다. 국민의 성격, 죄의식, 양심 등을 계산하는 것은 영원히 비밀로 남아 있다. 결핍된 것이 또 다른 측면에서는 국민적인 특성으로, 미덕으로 보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여러 국민에 대하여 일반적인 검열을 행하고, 그것도 가장 격렬하게 그런 일을 하는 작가들은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놓아두기로 하자. 서양의 국민들은 서로에게 못되게 굴 수는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서로를 심판할 수는 없다. 문화, 업적, 체험 등을 통해서 근대 세계의 삶과 합쳐진 하나의 위대한 국민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을 비난하든 용서하든 그것을 무시할 수 있다. 이 국민은 이론가들이 찬성하든 말든 계속 살아간다.
따라서 다음에 말하는 것은 판단이 아니라 일련의 부수적인 주석이다. 그것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대해 여러 해 동안 연구하면서 저절로 생겨난 것들이다. 이 주석들은 대개는 상류층의 생활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그럴수록 더욱 제한적으로만 타당하다. 이들 상류층 사람들에 대해서는 좋든 나쁘든 간에 유럽의 다른 국민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정보가 남아 있다. 명성이나 치욕은 이탈리아에서 다른 어느 지역보다 더욱 큰소리로 울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덕성을 전체적으로 평가하는 일이 조금이라도 더 발전된 것은 아니다.
그 누구의 눈길인들 여러 국민들의 성격과 운명이 형성되는 저 깊은 곳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까? 얼핏 보기에 근원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정신적인 재능들도 상대적으로 늦게, 그러니까 최근에서야 형성되고 있는 저 깊은 곳을? 예를 들어 이탈리아 사람들은 13세기 이전에도 벌써 전인全人의 가벼운 생동감과 확고함을 가졌을까? 그 이후로 그들의 특성이 되고 있는, 모든 대상을 유희하듯이 말과 형식으로 형상화하는 능력 말이다. 그런 것들을 모른다면 우리는 어떻게 정신과 도덕성이 끊임없이 서로 넘나드는 저 끝없이 풍부하고 섬세한 핏줄의 연결상을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우리 각자의 개인적인 책임이 있고, 그 목소리가 양심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래도 각 국민들을 일반화하는 진술은 그대로 남겨두기로 하자. 겉보기에 가장 병든 국민이 실은 건강한 상태에 있을 수 있고, 겉보기에 건강하게 보인 국민이 이미 많이 경과된 죽음의 씨앗을 속에 지니고 있을 수도 있다. 위험이 나타나야만 죽음의 씨앗은 겉으로 드러나게 된다.
도덕성의 결핍을 지탄함
16세기 초 르네상스 문화가 절정에 도달하고, 동시에 이탈리아 국민의 정치적 불행이 피할 수 없는 것으로 결정되었을 때 이런 불행을 도덕성의 결핍과 연결시킨 진지한 사상가가 있었다. 어느 국민에게나 어느 시대에나 시대의 나쁜 점을 탄식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삼는 저 참회 설교자들이 아니라 바로 마키아벨리였다. 그는 가장 중요한 사상 체계 안에서 분명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 우리 이탈리아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비종교적이고 약하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아마 다음과 같이 표현했을 것이다. "우리는 특별히 개인주의적이다. 우리는 종족의 도덕성과 종교의 한계에서 벗어났다. 우리는 외적인 법칙을 존중하지 않는다. 우리의 지배자들은 불법적으로 권력을 잡았고, 그들의 관리와 판관들은 못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 마키아벨리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교회가 그 대표자들을 통해서 가장 나쁜 예를 보여주기 때문"
우리는 여기에 "고대가 불리하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여야 할까? 어쨌든 그런 가정은 조심스로운 제한을 두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인문주의자들의 경우에는 그들의 방탕한 생활을 생각해볼 때 아마 그렇게 말해도 될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의 경우에는 고대를 알게 된 이후로 기독교적인 삶의 이상, 즉 경건함 대신에 역사적 위대함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분명한 오해를 통해서 사람들은 위대한 사람들의 악덕과 잘못들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위대함을 보고, 이런 악덕과 잘못들이 별 상관없는 일이라고 잘못 생각하였다. 아마 이런 오해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생겼을 것이다. 그에 대한 이론적인 진술들을 제시해야 한다면, 다시금 파올로 조비오 같은 인문주의자들에게서 그런 진술을 찾아야 한다. 파올로 조비오는 잔갈레아초 비스콘티가 선서를 위반한 일을 두고, 그것을 통해서 한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예를 들어 용서하였다. 위대한 피렌체의 역사가와 정치가들은 그런 비굴한 인용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들이 판단과 행동에서 고대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은 그들의 국가 체제가 필연적으로 고대와 어느 정도 유사한 사고방식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어쨌든 16세기 초에 이탈리아는 심각한 도덕적 위기에 빠져 있었다. 더 나은 사람들일지라도 거기서 벗어나기를 바라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였다.
출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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