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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행렬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8. 21. 08:14
종교적인 축제행렬
종교적인 축제 행렬은 온갖 종류의 부가물들을 통해서 화려해졌을 뿐 아니라 종교적인 인물로 분장한 사람들의 행렬로 대체될 수도 있었다. 신비극을 공연하려 도시의 중심 도로를 통과해서 걸어가는 배우들의 행렬이 그것을 위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종교적인 축제 행렬은 이와는 무관하게 형성되었을지도 모른다. 단테는 그의 작품에 베아트리체의 '행렬trionfo'을 묘사하고 있다.
그녀는 계시록에 나오는 24명의 장로들, 신비스러운 네 동물, 기독교도의 미덕 셋, 기본적인 미덕 넷, 성 누가, 성 바울, 그리고 다른 사도들과 함게 행렬을 이루어가는데, 그 광경의 묘사는 이런 행렬이 일찍부터 있었다고 믿게 만든다. 주로 베아트리체가 타고 가는 마차가 이런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상상 속의 기적의 숲에서라면 마차 같은 것은 필요없거나 어쨌든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단테는 마차를 승리의 기본적인 상징으로 보았던 것일까? 그래서 고대 로마 황제들의 개선 행진에서 빌려온 이런 방식의 축제 행렬을 자극하는 것은 바로 그의 작품이 아니었을까? 사정이야 어떻든 문학과 신학은 기꺼이 이 상징을 받아들였다. 사보나롤라는 <십자가의 승리>라는 작품에서 승리의 마차를 탄 그리스도로 분장하였다. 그리스도 위에는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빛나는 천체가 있고, 그의 왼쪽에는 십자가, 오른쪽에는 신, 구약성서, 아래쪽에는 성모가 있다. 마차 앞에는 교부들, 예언자, 사도, 설교자들이 가고 있으며 마차 양쪽으로는 순교자들과 책을 펼쳐 든 학자들이 가고 있으며 마차 양쪽으로는 순교자들과 책을 펼쳐 든 학자들이 있다. 마차 뒤로는 온갖 종족의 기독교 개종자들이 따르고 있다.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셀 수 없이 많은 적들, 황제, 권력자, 철학자, 이단자들이 보이는데, 그들은 모두 패배하여 우상을 파괴하고 책들을 불태웠다. (목판화로 잘 알려진 티치아노의 거대한 그림 하나가 이와 상당히 비슷한 풍경을 보여준다)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사벨리코의 13개 비가들 중에서 9번과 10번 비가는 성모 마리아의 개선 행진을 포함하고 있다. 알레고리들이 잔뜩 들어 있으며, 15세기 사실주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환상적이지 않고 사실적인 공간을 보여준다는 특성을 통해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세속적인 축제 행렬
물론 이런 종교적인 행렬보다 세속적인 축제 행렬이 로마 황제들의 개선 행진의 모범을 직접적으로 흉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고대의 부조들과 문인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의 역사관에 대해서는 앞에서 서술하였다.
우선 여기저기서 승리한 정복자들의 진짜 행렬이 있었다. 사람들은 당사자의 취향을 거스르면서까지 가능하면 로마의 모범에 따라 개선행진을 하려고 했다. 프란치스코 스포르짜는 밀라노로 행진해 들어가면서(1450) 이미 준비된 개선마차를 보고 그런 것은 왕들의 미신이라면서 거절하였다. 알폰소 대왕은 나폴리로 행진할 때 적어도 월계관만은 자제하였다. 나폴레옹은 잘 알려져 있듯이 노트르담에서 대관식을 할 때 그것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 밖에 알폰소의 행렬은 성벽의 갈라진 틈을 통해 들어가서 도시를 통과하여 대성당에 이르는 동안 고대 취향, 알레고리 요소, 순전히 해학적인 요소들이 기묘하게 뒤섞였다. 왕은 네마리의 하얀 말들이 끄는 마차 위의 옥좌에 앉았는데, 마차는 대단히 높고 온통 금색으로 칠해졌다. 20명의 명문가 사람들이 금으로 만든 천개를 받치는 막대기를 들었다. 왕은 그 천개의 그림자 속으로 마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이다. 그곳에 정착한 피렌체 사람들이 맡은 행렬 부분은, 맨 먼저 기술 좋게 창을 흔드는 우아한 젊은 기사들, 그리고 행운의 여신이 탄 마차, 말에 탄 일곱가지 미덕들로 이루어졌다. 행운의 여신은 당시 화가들도 때때로 이용하던 알레고리의 논리에 따라 앞에만 머리카락이 있고, 뒤는 대머리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차의 층계참에 앉아서 행운이 쉽게 사라지는 것을 상징하는 수호신은, 그런 이유에서 발을 물대야 속에 담그고 있었다. 이어서 피렌체 사람들로 이루어진 행렬의 일부는 여러 민족들의 의상을 입은 말 탄 사람들로, 일부는 외국의 영주의 권력자로 분장하였다. 높은 마차 위에는 세계를 나타내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천구 위쪽에 월계관을 쓴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앉아 있었다. 그는 왕에게 이탈리아어 운율을 써서 지금까지의 알레고리들을 설명하고 나서 행렬의 자기자리로 돌아갔다. 자주색과 주홍색 옷을 입은 60명의 피렌체 사람들이 축제에 익숙한 고향을 화려하게 자랑하면서 맨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그들 뒤에는 카탈루나 사람들이 맨발로 걸어왔다. 그들은 앞뒤로 줄에 묶은 말의 형상들을 거느리고, 터키 사람들 패거리를 향해 싸우는 시늉을 하면서 다가왔다. 마치 피렌체 사람들의 영광을 비웃으려는 것처럼 그 뒤를 이어서 높은 탑이 실려 왔는데, 탑의 문은 칼을 든 천사가 지키고 있었다. 위에는 다시 네 가지 미덕이 앉아서, 각각 특별하게 왕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 행렬의 나머지는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축하할 개선 행진이 없을 경우에는 문학이 자기 자신과 영주들에게 그것을 보상해주었다.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는 모든 종류의 명성의 대표자들을 자기들의 수행원 삼아 알레고리 주변에 불러 세웠다. 이전 시대의 온갖 유명인사들이 영주의 시종이 된 것이다. 여성 시인인 구비오의 클레오페 가브리엘라는 이런 의미에서 페라라의 보르소를 찬양하여 노래하였다. 그녀는 그에게 일곱 여왕을 (자유 학문을 뜻한다) 수행원으로 내준다. 그는 그녀들과 함께 마차에 오른다. 그리고 수많은 영웅들도 거느리는데, 그들은 구별하기 쉽도록 이마에 이름을 써붙였다. 이어서 온갖 유명한 시인들이 뒤를 따른다. 신들도 함께 마차를 타고 간다. 이 무렵은 신화와 알레고리들이 끝없이 이용되던 시기였다. 보르소 시대에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예술작품인 스키파노야 궁전에 있는 프레스코화들은 이런 내용의 그림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내용을 표현한 그림들은 드물지 않았고, 그것들은 또한 실제로 거행된 가장행렬을 기억하며 그려진 것들이다.
권력자들은 축하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마차를 타고 행진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볼로냐 영주의 맏아들인 안니발레 벤티볼리오는 평범한 무기 경기의 심판관이 되어서도 "거대한 로마의 개선 행진 방식으로 " 궁전까지 마차를 타고 갔다. 라파엘로는 바티칸 대법원실에 그림을 그려야 했을 때 이런 사고 체계를 이미 가지도록 완전히 습득한 상태였다. 그가 이것을 위해 마지막으로 새로운 헌신을 했던 것은 여전히 영원한 경탄의 대상이 된다.
정복자들의 진짜 개선 행진은 극히 예외적으로만 있었을 뿐이다. 축제 행렬은 그것이 어떤 사건을 경축하기 위해서이든, 아니면 축제 자체를 위해서 열린 것이든 상관없이 '트리온포(개선행진)'라는 이름을 얻었고, 어느 정도 그런 성격을 지녔다. 장례식이 이 계열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놀라울 정도다.
맨 처음에 사람들은 사육제와는 다른 기회에 특정한 고대 로마 장군들의 승리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피렌체에서는 (로렌조 일 마니피코 치하) 파울루스 에밀리우스의 승리와(레오 10세가 방문했을 때) 카밀루스의 승리를 재현하였는데, 두 번 다 화가 프란체스코 그라나치가 지휘를 맡았다. 로마에서, 장비를 완전히 갖춘 이런 종류의 첫번째 축제는 파울루스 2세 치하에서 거행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클레오파트라에게 승리한 다음의 개선행진이었다. 여기서는 명랑하고 신화적인 가면들 이외에 온갖 다른 소도구들도 등장하였다. 사슬에 묶인 왕들, 시민들과 원로원의 결정들을 기록한 비단으로 만든 문서판, 고대 로마의 조경관, 재무관, 집정관들과 나란히 고대 의상을 입은 원로원의원, 노래하는 가면들이 가득 찬 마차 네 대, 그리고 물론 트로피를 실은 마차 등이었다. 다른 행진들은 대체로 옛날 로마의 세계 지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터키의 위험에 맞서서 사람들은 포로가 된 터키 사람들을 낙타에 태워 행진시켰다. 뒷날 1500년 사육제에서 체사레 보르지아는 그의 과격한 성품대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개선 행진을 11대의 화려한 마차로 공연하였다. 물론 이것은 의식에 참석하기 위해 찾아온 순례자들의 노여움을 샀다.
1513년 레오 10세가 교황에 선출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피렌체에서 경쟁적인 두 사교 모임이 주최한 축제 행렬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대단히 아름답고 취향이 풍부한 것이었다. 하나는 인간 삶의 세 단계를 표현하였고, 다른 하나는 세계의 시간을 표현하였다. 로마 역사에서 뽑은 다섯 가지 장면들, 그리고 사투르누스의 황금시대와 그것이 되돌아온 것을 묘사하는 두 가지의 알레고리 등으로 구성된 것이 세계의 시간이었다. 위대한 피렌체 예술가들이 능력을 발휘하여 만든 마차들의 환상적인 장식은 대단한 인상을 만들어내서 사람들은 이런 구경거리를 정기적 으로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때까지 식민지 도시들은 해마다 숭배의 날에 상징적인 공물을 단순히 전달하곤 했다. 하지만 이후부터 상인조합은 10대의 마차를 만들어서 공물을 실어올 쁜만 아니라 그것을 상징으로 나타내게 되었다. 안드레아 델 사르토가 이 중 몇 대를 꾸몄는데, 장식이 가장 훌륭했다. 그런 공물과 트로피를 실은 마차들은 돈은 많이 들이지 않은 것이라도 축제의 일부가 되었다. 시에나 사람들은 1477년에 페란테와 식스투스 4세 사이의 동맹을 발표하였다. 그들은 '평화의 여신으로 분장한 사람이 갑옷과 다른 무기들 위에 서 있는' 마차 한 대를 보냄으로써 이 동맹에 합류하였다.
출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미지 출처> 야후 이탈리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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