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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8. 17. 12:18
사회 생활을 관찰하면서 그것을 축제의 행렬 및 행사들과 연결 짓는 것은 결코 제멋대로 하는 행동이 아니다. 르네상스의 이탈리아가 보여준 예술성 높은 화려함은 이탈리아 사회의 기반을 이루었던, 모든 계층의 공동 생활을 통해서만 달성되기 때문이다. 북유럽에서도 수도원들, 궁정들, 시민 계층이 이탈리아에서처럼 독특한 축제와 공연들을 했지만 그곳에서는 이런 행사들이 양식과 내용에 따라 각기 분리되어 있었던 반면, 이곳 이탈리아에서는 일반적으로 확장된 교양과 예술을 통해서 공동의 높이에 도달하였다. 이런 축제에 도움을 주었던 장식적인 건축술은 미술사에서 독자적인 분야를 이루었다. 장식적인 건축에 대한 서술을 종합해보면, 그것은 우리에게 거의 환상적인 그림으로 보인다. 여기서는 우선 이탈리아 사람들의 삶에서 격앙된 순간으로서의 축제 자체를 관찰하기로 하자. 그 과정에서 이 사람들의 종교적, 도덕적, 시적 이상들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고상한 형식의 이탈리아 축제는 진정 삶이 예술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축제 행사의 두 가지 중요한 형식은 유럽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신비극과 축제 행렬이다. 신비극은 성서 이야기나 설화들을 극으로 만든 것이고, 축제 행렬은 종교적인 계기에 벌이는 화려한 행진이다.
이탈리아에서 신비극 공연은 전체적으로 보아 다른 어느 곳보다 화려하고 수도 많았고, 조형 예술과 시문학의 평행을 이룬 발전을 통해서 수준 높은 취향을 보였다. 그리고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처럼 이런 신비극에서 먼저 익살극이 분리되어 나온 뒤 이어서 세속적인 드라마가 발전되지 않고, 아주 일찍부터 아름답고 풍부한 볼거리를 겨냥한 팬터마임으로 발전하였다. 그것은 노래와 춤을 곁들인 것이었다.
축제 행렬
넓고 포장이 잘 된 이탈리아 거리에서 행해진 축제 행렬들은 '트리온포Trionfo' 곧 축제 의상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마차를 타거나 걸어서 행진하는 형태로 발전하였다. 처음에는 압도적으로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 많았지만 세속적인 의미를 지닌 것도 점점 많아졌다. 성체축일 행렬과 사육제 행렬은 화려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녔는데, 곧 이어서 영주들의 행렬도 여기 합류하게 되었다. 다른 나라의 국민들도 이런 기회에 때로 엄청난 경비를 쓰는 일이 있었지만, 이탈리아에서만은 행렬을 의미심장한 전체로 조직하고 예술적으로 지휘하는 방법이 생겨났다.
이런 일들 중에서 오늘날에도 행해지는 것은 초라한 찌꺼기라고 부를 만하다. 종교적인 행렬과 영주들의 행렬은 극적 요소들과 가장의 요소를 거의 완전히 잃어버렸다. 비웃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옛날에는 교양 계층이 이런 일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헸지만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거기서 즐거움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육제에서도 대규모 가장행렬은 잘 행해지지 않는다. 아직도 남아있는 것, 예를 들면 몇몇 종교 단체들의 행진에 나타나는 가장 행렬이나 심지어는 팔레르모의 화려한 성 로잘리아 축제조차도 교양 계층이 이런 행사에서 얼마나 멀어졌는가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축제 행사의 완전한 절정은 현대적 요소가 결정적으로 승리하는 15세기에 나타난다. 아마 피렌체는 이 분야에서도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을 훨씬 앞서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피렌체에서는 이미 일찍부터 공연을 위해 구역별로 조직이 되었는데, 이런 공연들은 엄청난 비용을 전제로 하였다. 1304년 5월 1일에는 아르노강에 무대와 배를 띄워서 <지옥>을 공연했는데, 구경꾼의 무게에 눌려서 그만 카라야 다리가 무너지고 말았다. 뒷날 피렌체 사람들이 축제 예술가 자격으로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고향에서 이미 일찌감치 축제가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외국과 비교해서 이탈리아 축제의 가장 본질적인 장점들을 알아내려면 우선 개인을 표현하는 데서 발전된 개인이 가지는 의미, 곧 완전한 가면을 생각해내고 그것을 쓰고 그 가면의 역할을 해내는 능력의 중요성을 생각해야 한다. 화가와 조각가들은 장소를 장식하는 일뿐 아니라 인물들의 장비를 위해서도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의상, 화장, 그리고 다른 장비들도 제공하였다. 둘째로는 누구나 이해하는 문학적 기반이다. 신비극에서 문학적 기반은 유럽 전역이 똑같았다. 성서와 설화의 이야기들은 처음부터 누구에게나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머지 모든 점에서는 이탈리아가 유리하였다. 개개의 성스러운 혹은 세속적 , 이상적인 영웅을 낭송하기 위해서 이탈리아는 신분이 어떻든 모든 사람을 매혹시킬 만큼 운율이 잘 맞는 서정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도회지의 관객 대부분은 신화의 인물들을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적어도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알레고리와 역사적인 인물들을 금방 알아냈다. 이 인물들은 널리 알려진 교양 영역에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출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미지 출처> 야후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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