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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레고리
    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8. 18. 11:08

     

    이 말은 더욱 정밀한 규정을 필요로 한다. 중세는 특별할 정도로 모든 것을 알레고리로 만들던 시대였다. 신학과 철학은 각자의 범주(개념)들을 독립된 존재로 취급하였다. 그래서 문학과 미술은 아주 쉽게 각각의 추상 개념에 인격을 부여할 수 있었다. 이점에서 서양의 모든 나라들은 동일한 발판 위에 서 있었다. 이런 사고 체계로부터 모든 나라에서 여러 가지 유형들과 인물들이 만들어져 나왔다. 다만 장비와 부가적인 상징물들이 보통은 이상하고 적절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이것은 이탈리아에서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고, 심지어는 르네상스 기간과 그 이후까지도 상당 부분이 그랬다. 알레고리 인물(추상 개념)의 어떤 술어가 어떤 상징물을 통해서 잘못된 방식으로 번역되면 혼란이 초래되는 것이다. 단테조차도 이런 잘못된 번역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으며 잘 알려진 일이지만 자신이 만든 알레고리의 불분명함을 보면서 그것을 자신의 명예라고 생각했다. 페트라르카는 <트리온피>에서 사랑, 순결, 죽음, 명성 등의 인물들을 비록 짧기는 하지만 분명하게 서술하려고 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알레고리 인물들에 완전히 잘못된 상징물들을 잔뜩 실어주었다. 예를 들면 안토니오 빈체궤라의 풍자에서 질투가 '난폭한 쇠 이빨들'을 가지고 있으며 탐식은 입술을 꼭 깨물고 사납게 엉클어진 머리를 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많이 먹는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을 나타낸다. 미술이 그런 오해를 할 경우에 얼마나 상황이 고약해지는지 여기서는 말할 수 없다. 알레고리가 신화적인 인물을 통하여, 다시 말하면 아주 옛날부터 오해의 여지가 없는 예술 형식을 통해 표현될 수 있었던 경우에 미술이나 문학은 그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즉 전쟁 대신에 마르스를, 사냥의 즐거움 대신에 디아나 여신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Allegory of Vanity, Antonio de Pereda

     

     

    미술과 문학 양쪽에서 성공적인 알레고리들도 있었고, 이탈리아 축제 행렬에 등장하는 알레고리 인물들에 관해서는 적어도 구경꾼들이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말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구경꾼들은 평소의 교양을 바탕으로 그런 것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바깥, 특히 부르고뉴 궁정에서는 당시 아주 불확실한 인물들이나 아니면 단순한 상징들만을 참고 보아야 했다. 그런 것을 이해하거나 아니면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은 아직도 귀족들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1453년에 있었던 유명한 <꿩의 맹세> 공연에서는 기쁨의 여왕으로 분장한 채 말을 타고 나온 아름다운 젊은 여인이 유일하게 볼 만한 알레고리였다. 자동 기계와 살아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식탁 장식대들은 단순한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거나, 아니면 그 위에 평범한 도덕적 설교들을 늘어놓았다. 식탁 가장자리에 살아 있는 사자가 지키고 있는 벌거벗은 여인의 조각상을 보고서야 콘스탄티노플과 장래의 그 구원자인 부르고뉴 공작을 나타낸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팬터마임을 빼면 나머지는 아주 의미심장하거나 아니면 전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이 축제를 묘사한 사람인 올리비에 자신도 '교회'로 분장하고 거인이 이끄는 코끼리 등에 올려놓은 탑 속에 앉아서, 신앙이 없는 자들이 승리한 것을 탄식하는 긴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이탈리아 문학, 예술 작품, 축제의 알레고리들이 취향과 전체적인 맥락이라는 면에서 더 수준 높은 것이라고 해도 그것이 장점은 아니다. 결정적인 장점은 -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대단히 위대한 시인들과 예술가들을 위한 장점 - 여기서는 일반 개념을 의인화시키는 일말고도, 사람들이 이 일반 개념을 대표하는 역사상의 인물들을 아주 많이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즉 사람들이 수많은 유명인사들을 시적으로 혹은 미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다는 점이다. <신곡>, 페트라르카의 <트리온피>, 보카치오의 <사랑스러운 화상> 등은 바로 여기에 기반을 둔 작품들이다. 그 밖에도 고대 연구를 통한 교양이 광범위한 확산등은 일반인들이 이런 역사적인 요소들과 친숙해지게 만들었다. 이런 인물들은 축제 행렬에서도 특정한 가면을 통해서 개인으로 표현되거나, 아니면 적어도 중요한 인물 알레고리나 사물 알레고리가 이끄는 그룹으로 표현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그룹 단위로 구성하는 법을 배웠다. 북부 유럽에서는 가장 화려한 공연들도 근거없는 상징과 대체롭지만 무의미한 유희로 갈라져 있던 시절이었다. 

     

     

     

    출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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