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이상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9. 1. 19:26
명예심
우선 악인을 강력하게 제지하는 도덕적인 힘을 거론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해보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명예심'을 그런 힘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현대인이 자신의 잘못으로 혹은 잘못이 없이 다른 모든 것, 곧 믿음, 소망,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남는 것으로서, 양심과 이기심이 기묘하게 혼합된 것을 말한다. 이 명예심은 많은 이기심과 큰 죄악들과도 잘 어울리고, 엄청난 기만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개인의 품성 안에 남아 있는 모든 고귀한 것과 결합될 수도 있고, 또한 이 원천에서 새로운 힘들이 만들어져 나올 수도 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의미에서 그것은 오늘날 개인주의적으로 발전한 유럽인들에게서 행동의 결정적인 기준이 되었다. 도덕과 종교를 충실하게 지킨 많은 사람들도 무의식적으로 명예심에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곤 한다.
고대 세계가 이런 감정의 독특한 명암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리고 중세가 어떻게 특별한 의미에서의 명예를 특수한 계층의 언어로 만들었는지를 입증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는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명예심이 아니라 양심을 본질적인 추진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싸울 이유도 없다. 사정이 그렇기만 하다면 훨씬 더 좋고 아름다울 것이다. 다만 "이기심에 의해 다소 흐려진 양심"에서 더 나은 결정들이 나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면 이런 이기심과 양심의 혼합을 명예심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물론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명예심은 직접적인 명성욕과 구분하기가 때로 어려웠다. 명예심은 자주 명성욕으로 넘어가곤 한다. 그러나 그 두 가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 점에 대한 진술들도 부족하지 않다. 특히 뚜렷한 진술 하나를 여기서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최근에야 발견된 귀차아르디니의 격언집에서 나온 것이다. " 명예를 높이 여기는 사람은 모든 일에 성공한다. 그는 노력도, 위험도, 비용도 꺼리지 않고 바치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을 시험해보았으니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이 강력한 충동에서 나오지 않은 인간의 행동은 공허하고 죽은 것이라고" 우리는 물론 저자의 생애에 관한 또 다른 출처의 지식을 가지고 있기에 여기서의 명예는 명성욕이 아니라 명예심을 말한다는 것을 덧붙일 수 있다. 어쩌면 모든 이탈리아인보다도 프랑스 사람인 라블레가 이것을 훨씬 더 날카롭게 강조하였다. 물론 우리는 이 연구서 안에 이 사람의 이름을 섞어 넣고 싶지는 않지만 이 강하고 바로크적인 프랑스 사람이 제시한 것은 우리에게 형식과 아름다움이 없는 르네상스가 어떤 모양일까 하는 것에 대한 그림을 대충 보여준다. 그러나 텔렘 수도원에서의 이상적인 상태에 대한 그의 묘사는 문화사적인 증거로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최고의 환상이 없다면 16세기의 그림은 불완전하게 되고 말 것이다. 그는 자유 의지의 기사단에 속한 신사와 숙녀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그들의 계율에서는 '네가 원하는 것을 행하라'는 항목만이 존재한다. 가문이 좋고, 교육을 잘 받은 자유로운 사람들은 정직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항상 덕성을 유지하면서 약을 멀리하게 만드는 본능과 성향을 천성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가리켜 '명예'라고 부른다."
그것은 18세기 후반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프랑스 혁명의 길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인간 본성의 선의에 대한 믿음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경우에도 각자 자신의 본래 선한 본능에 호소하였다. 전체적으로 보아서 - 주로 국민적인 불행의 인상에 압도된 상태에서 - 훨씬 더 염세적으로 판단하고 느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명예심을 여전히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개인의 무한한 발전이 세계사적인 운명이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개인의 의지보다 더 강한 것이었다면, 당시 이탈리아에 나타난 이런 반대 방향의 힘[이기심을 통제하는 명예심] 또한 거대한 현상이었다. 그것이 사나운 이기심의 공격에 맞서서 얼마나 자주 승리를 거두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인간적인 판단력은 한 국민의 절대적인 도덕적 가치를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 많이 발전한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사람의 도덕성에 대해서 중요한 일반적 전제로 등장하는 것은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이탈리아 사람들의 미덕과 잘못에 특별한 색채를 부여하였다. 상상력의 지배 아래서 고삐 풀린 이기심은 처음으로 완전히 두려운 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름벽
예를 들면 이탈리아 사람은 그들의 상상력이 미래의 부유함과 향락의 모습을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극단적인 것들까지 노름에 건 근대 최초의 위대한 노름꾼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노름벽이 일반적이어서 당시 자주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거나 파괴하곤 하였다. 피렌체는 14세기 말에 이곳의 카사노바라 할 만한 부오나코르소 피티를 배출하였다. 그는 상인, 정치 당원, 투기꾼, 외교관, 전문 노름꾼 등의 자격으로 끊임없이 여행하면서 엄청난 돈을 따거나 잃었다. 그는 브라반트,바이에른, 사부아의 공작 같은 영주들을 노름 상대로 삼을 수 있었다. 로마 교황청이라 불리는 커다란 제비뽑기 항아리는 사람들이 흥분의 욕구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 그런 욕구는 거대한 간계들이 벌어지는 틈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주사위 놀이를 통해 밖으로 터져 나오곤 하였다. 예를 들면 프란체스케토 치보(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의 아들)은 추기경 라파엘레 리아리오와 두 번 노름판을 벌여 1만 4천 두카토를 잃었다. 그런 다음 그는 교황에게 가서 상대방이 자기를 속였다고 고발하였다. 그 이후 이탈리아는 복권lottery의 고향이 되었다.
복수욕
상상력은 또한 이 나라에서 복수욕에 아주 독특한 특성을 부여하였다. 정의감은 유럽 전체에서 동일한 것이었고, 그것을 위반하고도 아무런 벌을 받지 않으면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느낌을 가졌다. 그러나 다른 국민들은 더 쉽게 용서하지는 못하더라도 더 쉽게 잊어버릴 수 있었던 반면 이탈리아의 상상력은 불의의 모습을 끔찍할 정도로 생생하게 유지시켜 주었다. 동시에 가족의 살인자에 대한 복수가 국민 도덕에서 의무로 여겨지고, 종종 극단적인 방식으로 행해졌다는 것은 이런 일반적인 복수욕에 특수한 근거를 마련해주었다. 도시의 정부와 재판정은 복수욕의 존재와 정당성을 인정해주고 오로지 지나치게 극단적인 경우에만 통제하려고 했다...가족간의 복수는 여러 세대가 지나도록 계속되었고, 방계 친척들과 친구들에게까지 퍼지고 높은 신분 계층으로도 올라갔다. 연대기와 소설들은 그런 예들로 가득 차있다. 거기다가 치욕을 당한 여자들을 위한 복수까지 더해졌다. 이런 일에 대한 고전적인 토양은 특히 로마냐 지방이었다. 그곳에서 복수는 다른 종류의 온갖 파당 짓기와 결합되었다. 인기 있는 이야기들은 끔찍한 상징성을 띠고서 이 대담하고 강한 종족 위에 닥친 잔혹한 일을 들려준다...경건하고 성스러운 수도사들은 화해를 설교하였으나 진행 중인 복수 행위를 자제하게 만드는 것이 고작이었고 새로 발생하는 복수 행위를 막지 못했다.
단편소설들은 드물지 않게 이런 종교의 작용을 묘사해서 들려준다. 고귀한 관용과 용서의 마음이 갑자기 나타나지만 이미 전에 일어났고 이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을 다시 강조하면서 화해의 마음이 사라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황이 나선다고 해도 화해가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비슷한 관습의 바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교양 계층과 상류층의 개인적인 복수욕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수많은 양상을 띠고 나타났으며, 작가들의 목소리 속에 들어 있는 일반 여론에 의해서 완전히 인정받았다. 온 세상은, 모욕과 손해를 입어도 당시 이탈리아 법정이 정의를 만들어주지 못하는 경우에, 그리고 그들을 위한 적절한 법이 어디에도 없고 앞으로도 생길 수가 없는 사람들의 경우에 각자가 자신의 법을 만들어내도 좋다는 것을 한 목소리로 인정하였다. 다만 이런 복수에는 정신이 드러나 있어야 하고, 모욕을 준 사람에게 실질적인 손해와 정신적 굴욕을 함께 줄 수 있어야만 만족했다. 잔인하고 거친 힘의 승리만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개인 전체가, 명예와 조롱에 대한 그의 성향까지도 함께 아울러서 승리를 거두어야지 단순한 주먹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사람은 특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많은 가식의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것이든 자신의 것이든 원칙적으로 위선만은 용납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복수도 극히 소박하게 인간의 욕구로 인정받았다. 아주 냉정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모은 정열과 무관하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두도록" 목적에 맞는 일만을 한다고 자랑하였다. 그러나 정열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에 비하면 그런 경우는 아주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복수란 가족의 살인자에 대한 복수와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가족의 살인자에 대한 복수는 인과응보의 범위 안에 들어가지만, 복수란 필연적으로 그 범위를 넘어선다. 그것은 정의감을 만족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경탄하는 사람들, 상황에 따라서는 비웃는 사람들까지도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을 뜻했다.
때때로 그토록 오래 복수를 미루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통상적으로 '좋은 복수bella vendetta'를 위해서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상황들이 모두 맞아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단편소설 작가들은 여기저기서 그런 기회들이 서서히 무르익는 것을 진정한 환희를 느끼며 서술하고 있다.
출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이.탈.리.아 역사 > 르네상스 rinascimento'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범죄 (0) 2020.09.17 사랑 (0) 2020.09.08 도덕성 (0) 2020.08.30 베네치아 로마 피렌체의 축제 (0) 2020.08.26 축제 행렬 (0) 2020.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