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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적인 삶의 묘사 : 풍속화적인 묘사
    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5. 15. 14:02

     

    중세문학의 희극적이고 풍자적인 측면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비천한 삶의 그림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르네상스의 이탈리아 사람들이 삶의 그림을 그린다면 전혀 다른 것이 된다. 우선 그것은 그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고, 또한 위대하고 보편적인 세계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삶의 물결에 자기들이 마법에 걸린 듯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다. 경향적인 풍자는 보통 시민들, 농부들, 신부들을 향한 것이었고, 그래서 당시 집안, 길거리, 마을에는 풍자들이 떠돌았다. 우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학에서 풍자 대신에 - 그리고 나란히 - 진정한 풍속화가 시작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그림이 그런 것을 표현하기 오래 전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풍자와 진정한 풍속화가 자주 결합되어 나타나지만 그래도 그 두 가지가 전혀 다른다는 사실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단테는 저승의 사건들을 그토록 눈에 보일 듯이 뚜렷하게 묘사하기 이전에 얼마나 많은 이승의 사건들을 깊은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였던가. 베네치아 조선소의 활기, 교회 문간에 나란히 기대 앉은 장님들의 모습을 그린 그 유명한 장면들만이 이런 종류의 묘사의 유일한 증거는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몸짓으로 영혼의 상태를 서술하는 그의 기술이 벌써 그가 삶을 지속적으로 탐색하였음을 보여준다. 

    그의 뒤를 따르는 시인들이 이런 맥락에서 그의 경지에 도달한 경우는 드물다. 단편소설의 경우 이 문학 장르의 최고 법칙이 한 가지 대상에 오래 머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단편소설가들은 장황하게 서론을 늘어놓거나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끌어도 되지만 풍속화처럼 묘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묘사에서 즐거움을 느낄 기회를 얻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사건 서술

    여기서 다시 모든 것에 대한 감각을 지녔던 사람, 곧 에네아스 실비우스가 우리 앞에 나타난다. 풍경의 아름다움, 지리적 관심과 고대풍의 관심뿐만 아니라 , 생동하는 삶의 과정도 그를 자극하여 그것을 묘사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의 회고록의 많은 부분에서 당시 거의 누구도 취급하지 않았을 풍경들이 수없이 많이 묘사되고 있다. 그 예로 우리는 볼세나 호수에서 벌어진 보트 경주를 들 수 있다. 고대의 어떤 편지나 이야기가 그에게 그토록 생생한 삶의 그림들을 묘사하도록 자극을 주었는지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고대와 르네상스 사이의 정신적인 접촉은 대단히 미묘하고 신비스러운 요소를 포함한다. 

    그리고 서술적인 라틴어 시들이 여기 속하는데, 즉 사냥, 여행, 행사 등을 묘사한 시들이다. 이런 종류의 이탈리아어 시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폴리치아노와 루카 풀치의 유명한 메디치 마상 창시합의 묘사 같은 것이다. 서사시인들, 루이지 풀치, 보이아르도, 아리오스토 등은 대상을 따라 더욱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가지만 그래도 이들 모두에게서 약간 정밀한 동적인 삶의 묘사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그들의 위대함의 주요 요소로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케티는 숲에서 소나기를 만난 예쁜 아낙네 한 무리가 나누는 짦은 대화를 즐겁게 묘사하기도 했다. 

    동적인 현실에 대한 다른 묘사들은 특히 전쟁을 서술한 문인들에게서 가장 먼저 찾아볼 수 있다. 이미 르네상스 초기에 나온 상당히 긴 시에서 14세기의 용병 전쟁의 정밀한 서술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주로 전투중에 나타나는 외침, 명령, 대화 등의 형태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문장들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특히 로렌조 일 마니피코와 그를 둘러싼 문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진짜 전원 생활에 대한 묘사이다.

    전원문학

    페트라르카 이후로 인습적인 가짜 전원시나 목가시들이 나타났다. 베리길리우스를 흉내낸 것으로 라틴어나 이탈리아어로 된 것들이다. 이와 이웃한 장르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보카치오의 목동소설, 산나자로의 아르카디아, 그리고 뒷날 타쏘와 과리니의 목동 희극 등이다. 이들은 모두 극히 아름다운 산문이나 완성도가 높은 운문으로 된 작품들이지만 여기서 목동의 존재는 전혀 다른 교양 영역에 속하는 감상 위에 덮어씌운 이상적인 겉껍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15세기 말에는 전원 생활을 진짜 풍속화적으로 다루는 방식이 문학에 등장하게 된다. 그런 것은 오직 이탈리아에서만 가능하였다. 오로지 이탈리아에서만 농부는(소작농이나 자영농이나 똑같이) 그들의 생활이 몹시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개인적인 자유와 임의이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와 농촌 사이의 차이는 북유럽처럼 그렇게 엄격하지 않았다. 상당수의 소도시들에는 오직 농부들만이 살았는데, 그들은 저녁시간에는 진짜 도시민이었다. 코모의 벽돌공들은 거의 이탈리아 전지역을 돌아다녔다. 어린 지오토Giotto(14세기)는 자신의 양떼를 떠나서 피렌체에서 조합원이 될 수 있었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일은 끊임없이 일어났고 산악 지역 주민들은 오로지 그러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교양의 오만과 도시의 자부심으로, 시인이나 단편소설가들은 촌놈villano들을 놀려먹고, 즉흥희곡이 나머지 일을 수행하였다. 그래도 저 프로방스의 귀족 시인들과 프랑스 연대기 작가들이 보여준 것 같은, 촌놈들에 대한 잔인하고 경멸적인 증오의 목소리는 이탈리아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16세기 초 롬바르디아의 귀족들은 전혀 거리낌없이 농부들과 함께 춤을 추고 겨루고 뛰어오르고 경주를 하였다. 모든 장르의 이탈리아 작가들은 농부의 삶에 나타나는 중요성과 위대성을 자발적으로 인정하고 찬양하였다. 조비아노 폰타노(1426-1503)는 사나운 아브루초 사람들의 영혼의 강인한 면모들을 경탄으로 묘사한다. 전기모음과 단편소설에는 영웅적인 농촌 소녀의 모습도 빠지지 않는다. 그녀는 목숨을 걸고 자신의 순결을 지키거나 가족을 지킨다. 이러한 사실들을 전제로 해야만 농촌 생활에 대한 시적인 관찰이 가능해진다. 우선 한때 많이 읽혔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바티스타 만토바노의 전원시들을 들을 수 있다(1480년경에 씌어진 초기 작품들에 속한다). 이 작품들은 아직 진짜 전원문학과 인습적인 전원문학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지만 진짜의 요소가 훨씬 더 강하다. 본질적으로 선량한 시골 성직자의 감각이 나타나고, 물론 어느 정도의 계몽적인 열성도 곁들여진다. 카르멜 수도사로서 그는 시골 사람들과 교류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로렌조 일 마니피코는 전혀 다른 힘을 가지고 전원 그룹에 끼어든다. 그의 <넨치아 다 바르베리노>는 8행시의 위대한 흐름 속에 담아낸, 피렌체 근교에서 나온 진짜 민요의 정수처럼 읽힌다. 시인은 화자(넨치아에게 자신의 사랑을 밝히는 농부 소년 발레라)에 대해서 공감을 했는지, 그를 비웃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여기에는 판과 요정들이 등장하는 인습적인 목가에 대한 반대 의도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로렌조는 소박한 농부 생활의 거친 사실주의를 의도적으로 즐기고 있으며 그런데도 전체적으로는 진짜 시적인 인상을 만들어낸다. 

    루이지 풀치는 자신의 <베카 다 디코마노>가 <넨치아>와 짝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고백하였다. 다만 여기에는 더 깊은 객관적인 진지함이 없다.  <베카>는 농촌 생활을 묘사하겠다는 내면의 충동에서 씌어진 것이라기보다는, 그런 종류의 작품을 통해서 교양 있는 피렌체 사람들의 박수 갈채를 얻으려는 의도에서 나온 작품이다. 그래서 풍속화적인 요소가 더욱 의도적으로 투박스러워졌고 외설스러운 표현들이 섞였다. 그런데도 시골 애인의 생각이 대단히 능란하게 포착되어 있다. 

    이 계열에 드는 세 번째 시인은 안젤로 폴리치아노로, 라틴 6운각으로 씌어진 <농부Rusticus>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베르길리우스의 <농부가Georgica>와는 별도로 특별히 토스카나 지방 농부의 1년을 노래한다. 그것은 농부가 이랑을 가르고 겨울 작물의 씨를 뿌리는 늦가을로 시작된다. 봄의 들판 묘사는 대단히 풍부하고 아름다우며 여름도 탁월한 구절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가을날 포도 압착 축제의 묘사는 새 라틴어 문학의 진수로 꼽을 만하다. 폴리치아노는 이탈리아어로도 몇 가지 시들을 썼는데, 그것들을 보면 로렌조 일 마니피코 주변의 시인들은 하층 계급 사람들의 정열적인 생활에 대한 그림들을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렌조가 쓴 <집시의 노래>는 시적인 의식을 가지고 다른 계층 사람의 처지로 들어가보는, 진짜 현대적인 성향이 나타나 있는 초기 작품들 중의 하나이다. 그런 것은 전부터 해학적인 의도로 시도되어왔었다. 여러 사투리를 흉내내는 것도 시골 사람 흉내를 내는 것도 물론 여기 포함된다. 그리고 피렌체에서 카니발 축제 때 가면 쓴 사람들의 노래는 그런 것을 위한 기회를 되풀이하여 제공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감정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일이며, 그럼으로써 <넨치아>와 <집시의 노래>는 문학사에서 기억할만한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인간성의 인식과 선언

    마지막으로 이 분야에서도 교양이 미술보다 앞섰다는 점을 다시 지적해야겠다. <넨치아>가 나온 뒤 80년이 지나서야 야코포 바싸노와 그의 제자들이 지방의 풍속화를 그리게 된다. 다음 제5부에서는 당시 이탈리아 신분계층에 출생의 차이가 효력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처음으로 인간과 인간성을 그 가장 깊은 본질의 측면에서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런 결과를 불러온 것이다. 르네상스가 만들어낸 이 한 가지 사실만 해도 우리의 마음을 영원한 감사의 감정으로 가득 채운다. 인간성에 대한 논리적인 개념은 옛날부터 있었지만 르네상스는 그것을 현실로 인정한 것이다. 

    이 영역에서 가장 높은 예감들은 피코 델라 미란돌라가 인간의 품위에 대한 연설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것은 실로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고귀한 유산 중의 하나라고 부를만한 것이다. 신은 창조의 마지막 날에 인간을 창조하셨다. 인간이 우주의 법칙을 인식하고 그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그 위대함에 경탄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인간을 그 어떤 확고한 자리에도, 그 어떤 정해진 행동에도, 그 어떤 필연성과도 맺어놓지 않고 그에게 움직일 권한과 자유로운 의지를 주셨다. 창조주는 아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세계 한가운데 너를 세웠다. 네가 더욱 쉽게 사방을 둘러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보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는 너를 천상의 존재도 지상의 존재도 아닌 것으로, 죽는 존재도 죽지 않는 존재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네가 너 자신을 만들어가는 존재가 되고 스스로 극복하는 존재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너는 짐승으로 떨어질 수도 신과 비슷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짐승은 어미의 몸에서 나올 때 제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을 가지고 나온다. 더 높은 정신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니면 태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영원 속에 머물게 될 그런 존재가 된다. 너만이 자유 의사에 따라 발전과 성장을 할 수 있으며, 온갖 종류의 삶의 씨앗을 네 안에 가지고 있다."

     

     

    촐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이미지 출처> 야후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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