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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고전주의와 자연주의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5. 13. 19:22
그러나 바로 이러한 작품들 속에 르네상스의 고전주의 예술이 실현되고 있는데, 우리가 그렇게 칭찬하는 이 예술의 보편성이라는 것도 실제로는 종전의 어떠한 예술방식보다 더 제한된 감상자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감상자층은 그리스 고전기의 감상자층보다 더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르네상스의 고전주의 역시 그 양식화 경향에도 불구하고 그 직전의 세대들이 이루어 놓은 자연주의적 성과를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계승, 발전시켜 완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품이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의 박공보다도 '더 정확하고' 더 실제 경험에 맞게 만들어진 것과 같이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보이는 하나하나의 주제 역시 꽈트로첸토 거장들의 작품보다 좀더 자유스럽고 명쾌하며 자연스럽게 다루어져 있다. 꽈트로첸토의 거장들의 작품들로서 다 빈치 이전의 모든 이탈리아 회화에 나타나는 인물들을 라파엘로, 프라 바르톨로메오, 안드레아 델 사르토, 티치아노, 미켈란젤로 등의 인물들과 비교할 때 무언가 모나거나 딱딱하거나 어딘가 좀 어색한 점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는 하나도 없다.
Untitled by Andrea Del Sarto 정확하게 관찰된 부분부분들이 아무리 풍부하다 하더라도 초기 르네상스의 그림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어딘가 불안정한 자세로 서 있고, 그들의 동작은 어딘가 속박된 듯 무리가 있으며, 사지는 관절이 삐걱거리고 흔들거리는 듯 하고, 이들 인물과 공간의 관계는 모순투성이이기 일쑤요, 인물들의 실체감 표현에 억지가 많고 명암도 매우 부자연스럽다. 15세기의 자연주의적 노력은 16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그 결실을 맺는 것이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양식사적 통일성은 15세기의 자연주의가 친퀘첸토로 직접적으로 이어지면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에서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전성기에 와서 고전주의적 예술로 발전한 양식화의 과정 또한 이미 꽈트로첸토 중엽부터 시작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고전주의의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모든 부분의 조화'라는 미에 대한 규정은 이미 알베르티에게서 공식화되었던 것이다. 그는 예술작품이란 전체의 미를 손상하지 않고는 전체 작품에서 어떤 한 부분을 떼어낼 수도 없고 무엇을 첨가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알베르티가 비트루비우스(기원전 1세기 로마시대의 건축가 및 건축에 관한 저술가)에서 발견했고 실제로는 아리스토텔레스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러한 생각은 고전주의 예술이론의 기본 명제의 하나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르네상스 예술관 에서 보이는 이와같은 비교적 높은 통일성 - 꽈트로첸토에서의 고전주의의 시작과 친퀘첸토에서의 자연주의의 계속적인 발전 - 은 르네상스의 사회적 변동성과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인가? 르네상스 전성기가 사실적 정신을 계속 보존하고 예술적 진실의 경험적 기준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아니면 더욱 강화하기까지 했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르네상스 전성기가 그리스 고전주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으로는 보수적인 경향을 띠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는 아직도 사회적 상승과정이 끝나지 않았고 따라서 어떠한 최종적 관습과 전통도 이룩될 수 없었던 동적인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평준화의 과정을 종결하고 일체의 사회적 상승을 저지시키려는 움직임은 시민계급의 지배적 위치를 획득하고 귀족계급과 융합되면서부터 이미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꽈트로첸토에서 고전주의적 예술관의 시초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발전경향과 부합하는 것이다.
자연주의에서 고전주의로의 이행이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이루어졌다는 사정은 르네상스 예술양식의 전 발전과정에 대한 오해를 가져오기 쉽다. 즉 양식적 전환을 예고하는 징조들에게만 주의를 기울인다던가 다 빈치와 페루지노의 예술같은 과도기적 현상을 출발점으로 삼을때 우리는 양식의 변화가 아무런 단절과 도약도 없이 거의 논리적 필연성을 가지고 이루어지며 르네상스 전성기의 예술이 단지 꽈트로첸토의 예술적 성과를 종합한 데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양식의 발달이 동족결혼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고대예술에서 기독교 예술,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의 전환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요소들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예술양식은 단지 내재적으로, 다시 말하면 종전의 여러 예술적 경향의 단순한 변증법적 안티테제나 종합으로서는 좀처럼 설명될 수 없고 처음부터 예술양식사의 내재적 관련성을 넘어서는 예술 외적인 동인에 의해서 설명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꽈트로첸토에서 친퀘첸토로의 이행과정에서는 사정이 좀 다르다. 여기서는 양식의 변화가 거의 단절되지 않고 연속적인 사회발전과 완전히 부합해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식의 변화가 자동적으로 즉 이미 잘 알려진 계수의 논리적 함수관계로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만약 15세기의 사회적 상황이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어떤 다른 요인에 의해서 실제와는 달리 전개되었다면, 예컨대 이미 전개되고 있던 보수적 경향이 공고해지는 대신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전환이 일어났다면 예술발전도 이러한 변화에 부응해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고, 이렇게 해서 생겨난 예술양식은 고전주의적 양식에서 완성되었던 바와는 달리 또 하나의 초기 르네상스의 '논리적' 귀결이 되었을 것이다. 논리학의 원칙을 역사적 발전에 적용하려고 한다면 적어도 우리는 하나의 역사적 상황이 서로 상이한 여러 '논리적' 귀결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출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아르놀트 하우저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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