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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주의의 사회적 기원
    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5. 7. 10:50

     

    이론적으로는 자유로운 문인생활로서의 인문주의가 형성되는 전제조건은 독자층을 이루는 비교적 광범위한 유산계급의 존재이다. 인문주의 운동의 가장 중요한 발상지는 처음부터 궁정이나 관청이었지만, 이 운동의 대부분의 후원자들은 돈 있는 상인들과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해 부를 얻었거나 권력에 오른 사람들이었다. 중세에는 문학작품을 접할 수 있는 독자층은 저자 자신도 잘 알고 있는 매우 제한된 서클에 한정되어 있었다. 저자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까지 포함한 더욱 광범위한 독자층을 얻으려는 노력은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이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다. 이때부터 자유로운 문학시장이라든가, 문필에 의해 좌우되고 문학을 통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론이라는 것이 조성된다. 인문주의자들의 연설과 팸플릿은 현대적 저널리즘의 최초의 형태이며, 비교적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던 그들의 편지는 당시의 신문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피에트로 아레티노는 '최초의 저널리스트'이자 최초의 사이비 기자이기도 했다. 피에트로 아레티노 같은 인물의 존재를 가능케 해준 자유는 작가들이 더이상 한 패트런이나 엄격히 제한된 문학애호가 그룹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되고, 또 그들이 만든 정신적 생산품을 구입할 사람이 많아짐에 따라 그들이 더이상 모든 사람과 친해질 필요가 없게 된 시대에나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인문주의자들의 독자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비교적 그 층이 엷었던 교양인에 한정되어 있었고, 오늘날의 문인들과 비교해보면 부유한 가정 출신들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던 경우를 빼고는 그들은 아직도 기생적인 생활을 영위하였다. 그들은 대부분 궁정의 총애나 영향력있는 시민의 후원에 힘입고 있었고, 대개는 이들을 위해 비서나 가정교사 노릇을 했다. 그들은 종전처럼 침식을 제공받거나, 선물을 받는 대신 봉급, 연금, 성직록 등을 받았다. 당시의 새로운 엘리트들에게는 많은 돈을 들여서 그들을 거느리는 것이 자신의 사회적 체면 유지 비용의 일부였다. 지배계급은 궁정가인과 궁정광대, 사적인 목적을 위한 역사가나 직업적 송시작가들 대신에 이제 인문주의자들을 고용했고, 이들은 비록 승화된 형태로지만 그들 선임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직무를 수행했다. 물론 인문주의자들에게는 더 많은 것을 기대하였다. 왜냐하면 상층 유산계급은 한때 세습귀족과 손잡으려 했듯이 이제 정신적 귀족과 결합하려 했기 때문이다. 첫번째 결합에서 대부르즈와지가 세습적인 특전을 얻었다면, 두번째 결합을 통해서는 정신적으로도 귀족화되고자 했던 것이다. 

     

     

    정신적으로 자유롭다는 환상에 빠져 있던 인문주의자들은 지배계층과의 종속관계를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종전부터 있어왔고 또 아무 문제거리도 없었던 학문, 예술의 보호라는 제도가 중세의 시인들에게는 하나의 자명한 일에 속했지만. 인문주의자들에게는 이제 그렇지 못하였다. 재산과 소유에 대한 지성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복잡해졌다. 그들은 처음에는 방랑가인이나 걸식수도사와 같은 금욕주의적인 경제관을 가졌고 부라는 것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가난하고 정처없는 학생이나 교사 아니면 문인으로 있는 동안에는 이러한 견해를 고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유산계급과 한층 가까워지면서부터는 그들 본래의 견해와 새로운 생활방식 사이에는 해결될 수 없는 갈등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스의 소피스트와 로마의 웅변가 그리고 중세의 수도사들에겐 근본적으로 관조적이고 기껏해야 교육적인 면에서만 활동적이던 그들의 정신적, 사회적 위치로부터 뛰쳐나와서 지배계급과 경쟁해본다는 것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인문주의자들은 소유와 사회적 지위에 대한 특권을 요구한 최초의 지식인이었고, 지식인의 오만과 자존심이라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하나의 현상도 실패에 대비한 그들의 심리적인 자기방어였던 것이다. 상류계층은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인문주의자들의 노력을 처음에는 고무, 촉진해주었으나 결국에 가서는 억제하였다. 일체의 구속에 저항하는 자존심 강한 교양계층과 근본적으로 정신생활과는 거리가 먼 냉철한 경제인들 사이에는 처음부터 일종의 상호불신이 존재하였다. 플라톤 시대의 사람들이 소피스트들의 사고방식이 내포하고 있는 위험을 정확하게 감지했듯이, 르네상스의 상류계급 또한 인문주의적 운동에 대한 그들의 공감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뿌리뽑힌 자들임으로 해서 실제로 하나의 파괴적 요소를 형성했던 인문주의자들에 대해 의구심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인문주의자들의 소외

    하지만 정신적 상류계층과 경제적 상류계층 사이의 이러한 잠재적 갈등은 한동안 전혀 표면화되지 않았는데 특히 예술가들의 경우가 그러하였다. 사회적 의식이 좀더 강했던 인문주의자들보다도 예술가들은 이 점에서 훨씬 느린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설령 그것이 외면화되고 표명되지 않는다 해도 언제 어디서나 도사리고 있었고, 모든 지식인 계층은 문인이든 예술가든간에 사회적 근거를 상실한 '비시민적'이고 원한에 가득 찬 보헤미안 아니면 보수적, 수동적이며 지배계급에 추종하는 아카데미션이 될 위험에 봉착했다. 이러한 양자택일 앞에서 인문주의자들은 상아탑 속으로 도피함으로써 결국은 그들이 피하고자 했던 두 가지 위험에 모두 빠지는 결과가 되고 만다. 근대의 모든 유미주의자들은 이러한 전철을 그대로 답습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회적 근거를 잃으면서 동시에 수동적이 되며, 그들이 지지하는 사회질서에 적응하지도 못하면서 보수주의의 이익에 봉사하게 되는 것이다. 인문주의자들은 독립의 의미를 무구속으로 이해하였고, 그들에게는 사회적인 이해를 초월한다는 것은 바로 소외이며 현재로부터의 도피는 무책임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묶어두지 않기 위해서 어떠한 정치적인 활동도 삼갔는데, 이러한 그들의 정치적 수동성은 권력자의 위치를 현상태 그대로 굳히는 결과를 초래했을 따름이다. 이것이야말로 정신에 대한 '지식인의 배반'이요 결코 근자에 비난의 대상이 된 정신의 정치화가 배반이 아닌 것이다. 인문주의자들은 현실과의 연관성을 상실하고 낭만주의자가 되는데 이때부터 그들은 현실세계로부터의 소외를 세계에 대한 경멸로, 사회적 무관심을 정신적 자유로, 그들의 비시민적인 사고방식을 도덕적 독립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르네상스를 잘 아는 한 전문가는 다음과 같은 평가를 하고 있다. "그들에게 인생이란 다듬어진 산문을 쓰는 일이요 아름다운 시구를 짓는 일이며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일이다...그들의 눈에 본질적인 것은 갈리아인들이 정복되었다는 사실보다도 갈리아 정복에 관한 주석서가 씌어졌다는 사실이다...행동의 미는 문체의 미에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다.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은 인문주의자들만큼 그렇게 멀리 동시대인과 유리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정신생활은 이미 밑바닥부터 뒤흔들렸고 중세적 사회질서 속에 통합됨으로써 예술가가 누리던 균형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행동주의와 유미주의의 갈림길에 있었다. 아니면 그들은 이미 선택을 했는지도 모른다. 예술형식과 예술 이외의 목적의 결합이라는, 중세에는 소박하고 자명하며 전혀 문제가 될 수 없었던 사실이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에게는 상실되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 인문주의자들이 단순한 비정치적 문예애호가나 공허한 능변가 아니면 현실로부터 유리된 낭만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또한 열광적인 세계개혁자요 광신적인 계몽주의자이며 무엇보다도 미래의 승리를 낙관하며 지칠 줄 모르는 교육자였다. 르네상스의 화가나 조각가들이 인문주의자들로부터 힘입은 것은 그들의 추상적인 유미주의뿐만이 아니다. 예술가는 정신적 영웅이고 예술은 인류의 교육자라는 생각 또한 그들에게서 나왔다. 예술을 처음으로 지적, 도덕적 교양의 한 요소로 만든 것은 바로 이들 인문주의자들이었던 것이다. 

     

     

    출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아르놀트 하우저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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