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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의 과학화
    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5. 5. 08:38

     

    콰트로첸토의 학자나 연구자들이 누리던 명성은 19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회복되었다. 이 두 세기에는 모든 노력이 새로운 수단 및 새로은 과학적 방법과 기술적 발명을 통해 경제 팽창과 성장을 촉진시키는 데에 집중되었다. 15세기와 19세기의 과학의 우위와 과학자의 명성은 부분적으로는 바로 이러한 현상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아돌프 힐데브란트(1847-1921 독일 조각가)와 버나드 베렌슨이 조형예술에서 '형식'이라고 일컫는 것은 알베르티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에 있어서의 원근법 개념처럼 미적 개념이라기 보다 오히려 이론적 개념이다. 

     

    L.B.Alberti, The concept of visual pyramid in the geometric construction of the projective mechanism 

     

    이 두 범주는 모두 감각적인 경험세계에서의 지침이자 공간성을 해명하는 수단이며 시각적 인식의 도구이다. 르네상스에서 예술에 대한 애호가 아무리 컸다 하더라도 당시의 예술원칙이 지녔던 과학적 관심을 숨길 수 없는 것처럼 19세기의 심미적 세계관 역시 이 시기의 예술원칙이 지녔던 과학적 성격을 감추지 못한다. 힐데브란트의 공간가치, 세잔의 기하학주의, 인상파의 생리학주의, 온갖 새로운 소설과 희곡들의 심리주의 등, 19세기의 어디서나 우리는 경험적 현실에 뿌리박고 자연적 세계상을 해명하며 경험의 자료를 축적, 정리하여 이를 하나의 합리적인 체계로 통합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19세기에 예술은 세계인식의 수단이었고, 인생을 경험하고 인간을 분석, 해명하는 하나의 형식이었다. 그러나 객관적인 인식에 주안점을 둔 이러한 자연주의는 그 근원을 바로 15세기에 두고 있는 것이다. 예술은 15세기에 처음으로 과학적 훈련을 받았고 어떤 의미에서 예술은 오늘날까지도 이 시기에 투자해놓은 자본금으로 살아가고 있다. 수학과 기하학, 광학과 기계학, 광선론과 색채론, 해부학과 생리학은 당시 예술의 기본 도구였고 공간의 성질과 인체의 구조, 운동과 비례의 계산, 의복 주름의 묘사법에 대한 연구나 색채에 대한 실험 등은 당시 예술가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물론 콰트로첸토의 사실성이 그 과학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허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가장 잘 깨달으려면 르네상스 예술을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공식인 원근법적, 투시도법적 재현이라는 표현수단을 보면 된다. 원근법 그 자체는 르네상스의 창안이 아니었다. 이미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도 생략법을 알고 있었고, 개개 사물의 크기를 관찰자와의 거리에 따라서 축소시켰다. 그러나 고대에는 원근법에 의해 통일되고 단 하나의 시점에 고정된 공간상은 알지 못했을 뿐더러, 상이한 대상들 및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들을 연속적으로 표현할 줄 몰랐고 그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고대의 공간묘사는 서로 관련이 없는 부분들을 합쳐서 만든 구성체였고 통일적인 연속체가 아니었다. 파노프스키(panofsky 1892~1968)의 용어를 빌리면 그것은 '집합적 공간' 이었지 '체계적 공간'은 아니었다. 르네상스에서 비로소 회화는 많은 사물이 존재하는 공간이란 일종의 무한한 연속적, 동질적 요소이며 우리는 이러한 사물들을 주로 단 하나의 고정된 눈으로 본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지각하고 있는 것은 매우 제한된, 그것도 비연속적이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복합되어 있는 공간이다. 우리들의 눈에 들어오는 공간상은 실제로는 공간의 주변이 왜곡되고 흐려진 것이고, 그 내용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독자적인 여러 그룹이나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며, 또 생리적으로 주어진 인간의 시야 자체가 구상球狀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부분에서는 직선보다 곡선을 보게 마련인 것이다. 르네상스의 예술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공간상, 즉 모든 부분이 하나같이 명확하고 시종일관된 형태이며 평행선은 공통의 소실점을 가지고 있고 거리는 통일적인 척도에 의해서 측정될 수 있는 공간상, 다시 말하면 알베르티가 시각 피라미드의 평평한 횡단면이라고 정의한 바의 공간상은 하나의 대담한 추상인 것이다. 투시도법의 공간은 수학적으로는 정확한 공간이지만 심리 -생리학적으로 여실한 공간은 아닌 것이다. 르네상스와 19세기 말에 이르는 몇 세기처럼 철저히 과학적인 시대에만 이와같이 완전히 합리화된 공간관이 실제적인 시각적 인상의 적절한 재현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 이 시기에는 통일성과 합리적 일관성이 바로 진리를 가늠하는 최고의 기준으로 통용되었다. 최근에 와서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현실을 하나의 통일된 공간상이라는 형식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여러 그룹을 상이한 시각적 중심점에서 파악하는 것이며, 우리의 시야가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옮아감에 따라 마치 로렌제티가 그린 시에나의 거대한 벽화에서처럼 시각의 부분적 관찰이 모두 합쳐져서 더욱 광범위한 복합체로서의 파노라마를 얻게 되는 것임을 다시 의식하게 되었다. 아무튼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 벽화들에서 보는 비연속적인 공간묘사가 투시도법의 규칙에 의해 구성된 콰트로첸토의 공간묘사보다 훨씬 더 실감이 있는 것이다. 

     

    Masaccio, Le Tribut de Saint-Pierre, v. 1427

     

     

    출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아르놀트 하우저

    이미지 출처> 야후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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