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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의 자율성
    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5. 3. 17:16

     

    천재 개념이 예술가의 입장에서 주관적 형식으로 표현된 생각이라면, 반대로 작품의 입장에서 객관적 형식으로 표현하면 곧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개념이 된다. 정신적인 형성물의 자율성이란 정신의 자발성과 맞먹는 개념인 것이다. 그러나 르네상스에서 예술의 자율성이란 단지 교회와 교회가 대표하는 형이상학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할 뿐 절대적, 보편적인 자율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교회의 도그마로부터 해방되기는 했지만 이 시대 과학의 세계상과는 계속 밀착되어 있었다. 그것은 예술가들이 성직자계층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인문주의 및 그 추종자들과는 그만큼 더 깊은 관련을 맺게 된 것과 같은 현상이다. 그러나 중세에 예술이 '신학의 시녀'가 되엇던 것처럼 르네상스에서 학문의 시녀가 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예술은 세상사와 고립된 상태에서 정신적으로 안주할 수 있는 곳이었고 그 속에서 특유의 정신적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영역이었다. 이러한 영역에서 움직일 때 사람들은 종교의 초월적 세계는 물론 현실의 실제적 세계와도 분리될 수 있었다. 예술은 신앙을 위한 목적에 이용될 수도 있고 학문과 함께 공동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만, 어떠한 비예술적 기능을 완수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대상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중세에는 전혀 생각도 할 수 없었던 하나의 새로운 국면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르네상스 이전에는 사람들이 예술품의 형식적 질과 가치를 느끼지도 감상하지도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고 감성적인 반응에서 의식적인 반응으로 넘어가는 순간 예술작품을 그 형식적 가치가 아니라 형상화된 대상에 의해서, 그 의미 내용 혹은 묘사의 상징적 가치에 의해서 평가했던 것이다. 중세인들의 예술에 대한 흥미는 소재에 대한 흥미였고, 당시의 기독교적 예술에 대해서만 내용이 담고 있는 의미에 주목했던 것만이 아니라, 고대의 예술까지도 순전히 소재적인 관점에서만 판단했던 것이다. 르네상스에서 고대 예술과 문학에 대한 태도 전환은 고대의 새로운 작가들과 작품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내용적인 요소에서 형식적인 요소로 옮겨졌기 때문이며, 이것은 새로 발견된 고대의 작품에 관해서나 오래 전부터 알려진 작품에 관해서나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태도에서 특징적인 것은 감상자들 자신이 이제부터는 예술가의 입장에 서서, 인생이나 종교의 관점이 아닌 예술 자체의 관점에서 예술을 판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세의 예술이 현실을 해석하고 인간을 도덕적으로 향상시키려 했다면, 르네상스의 예술은 현실을 풍부하게 하고 인간을 즐겁게 해주려 했다. 중세의 세계가 인간존재의 경험적, 초현실적 영역에만 한정되어 있었다면, 르네상스 예술은 이러한 두 영역에 또 하나의 새로운 삶의 영역을 첨가하는데, 이 새로운 영역에서는 존재의 현세적인 형식들과 형이상학적 원상原象 모두가 하나의 독자적이고도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Saint Stephen , Giotto , 1330–1335

     

    자율적이고 목적에 구애받지 않으며 그 자체로서 즐길 수 있는 예술의 이념은 이미 고대에도 익히 알려져 있었다. 르네상스는 중세에 망각 속으로 파묻어버렸던 이 이념을 재발견한 데 불과하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전에는 예술의 즐거움에 몰두하는 인생이 한층 더 높고 고상한 삶의 형식일 수 있다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예술에 높은 의의를 부여한 플로티노스와 신플라톤주의자들도 예술의 자율성까지는 인정하지 않고 예술을 단순히 지적인 인식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간주하였다. 예술이 자율적인 미적 본질을 보존하며, 다른 정신적 세계에 대한 독자성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러한 자주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인류의 교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페트라르카에서 이미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비중세적인 동시에 비고대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예술의 관점과 기준을 인생에 적용시킨다는 것이 고대에도 전혀 생소한 일은 아니었지만 르네상스에서 있었던 하나의 에피소드, 즉 어느 신자가 임종할 때 그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보기 싫다는 이유로 거기에 입맞추기를 거부하고 더 아름다운 십자가를 요구했다는 이야기는 르네상스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미적 자율성이라는 르네상스의 개념은 절대적인 이념이 아니다.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은 스콜라 철학적 사고의 속박에서 벗어나려 하기는 했지만 완전한 독립을 위해 특별히 애쓴 것은 아니며 예술의 독립성이라는 것을 하나의 원리적 문제로 만들 생각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정신활동의 과학적인 본질을 강조하였다. 과학과 예술을 세계인식의 동질적인 기관으로 묶고 있던 유대가 풀리는 것은 친퀘첸토에 들어와서의 일이며 이때 비로소 과학에 대해서도 자율적인 예술 개념이 형성되는 것이다. 과학이 예술에 의존하는 시기가 있는 것처럼 예술 또한 과학에 의존하는 시기가 있는 것이다. 초기 르네상스에는 예술의 진리가치가 과학적 기준에 의해 정해졌고, 후기 르네상스와 바로크에 이르면 반대로 과학적 세계상이 예술적 원칙에 의해 형성된다. 콰트로첸토 회화의 원근벚은 과학적 개념이었던데 반해, 케플러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우주상은 근본적으로는 미학적 비전이었다. 딜타이는 르네상스에서의 연구활동과 관련해서 '예술적 상상력'이라는 적절한 표현을 쓴 바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의당 초기 르네상스의 예술적 창작에서 '과학적 상상력'이 상당히 큰 역할을 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아르놀트 하우저

    이미지 출처> 위키페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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