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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의 발견 : 문학에 나타난 정신의 묘사 I
    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4. 10. 13:24

     

    르네상스 문화는 세계를 발견해낸 것에 이어 한층 더 큰 업적을 이루는데, 처음으로 인간에 대해 그 완전한 내용을 찾아내고 공개했다는 점이다. 

    우선 앞에서 이미 보았듯이 이 시대는 개인주의를 가장 강하게 발전시켰다. 이어서 모든 단계에서의 개인을 가장 열렬하고 다양하게 인식하도록 개인주의를 자극하였다. 개성의 발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개성과 다른 사람의 개성을 인식하는 일과 결부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이 두가지 위대한 과정 사이에 고대 문학을 끼워넣어야만 했다. 개인의 인식 및 묘사와, 보편적으로 인간적인 것을 인식하고 묘사하는 방식이 모두 고대의 영향을 통해서 채색되고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인식의 힘은 시대와 민족 안에 들어 있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인용할 수 있는 현상들은 수가 그리 많지 못하다. 나는 여기서, 자신이 미심쩍은 짐작의 영역으로 들어섰다는 느낌, 자신의 눈에는 14~15세기의 정신사에서 섬세하지만 뚜렷한 색채 전환의 현상으로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사실로 인정하기 힘든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한 민족의 혼이 점차 분명하게 드러나는 일은 관찰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현상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실이 가려지고 판결이 나올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인간의 정신적 본질에 대한 인식은 이론심리학을 탐색하는 일이 아니라 -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로 충분하다 - 관찰과 묘사의 재능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꼭 필요한 이론적인 바탕으로는, 당시 널리 알려져 있던 행성의 영향 이론과 연관된 네 개의 체질론에 한정되었다. 이 고정된 요소들이 태고 이래로 개인을 판단하는 데 쓰여왔는데, 그렇다고 일반적인 발전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미 완성된 인간에 대해 정확한 묘사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불멸의 예술과 문학이 인간의 가장 깊은 본질과 특징적인 외양을 표현해낼 수 있었던 시대에 여전히 그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었다. 보통 때는 아주 유능한 관찰자였던 사람이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우울질의 사람이라고 판단하였자만, 의사들이 그를 다혈질, 담즙질의 사람으로 판단하는 것을 보고 그 의견을 따르는 일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조르지오네가 그의 초상화를 그렸고, 밤바야가 그를 조각하였으며, 모든 역사가들이 그를 서술하였던 라벤나의 승리자 가스통 드 푸아가 토성의 성품을 지녔다는 말을 들으면 이상하기 짝이 없다. 물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 말로 아주 특별한 내용을 표현하려고 했다. 어쨌든 그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데 사용하는 범주들은 기묘하고도 퇴물처럼 보인다. 자유로운 정신을 묘사하는 영역에서 맨 먼저 우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14세기의 위대한 시인들이다. 12~13세기 서양 전체의 궁정 문학과 기사 문학에서 영롱한 진주들만을 뽑는다면 영혼의 움직임을 훌륭하게 예감하고 있는 작품들과 그것을 그려낸 작품이 상당수 나타날 것이다. 이런 작품들은 얼핏 보면 이탈리아 사람들과 우선권 다툼을 할 것처럼 보인다. 서정시 영역을 빼고라도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 한 사람만 해도 그의 작품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불멸의 특성을 보이는 정열의 그림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모든 진주는 관습과 인공의 바다에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내적 인간과 그 정신적 풍부함을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만드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이탈리아도 13세기에 음유시인Trovatore들을 통해서 궁정 및 기사 문학에 참여하였다. 그들로부터 칸초네Canzone가 유래한다. 이 시 형식은 북방의 연가시인들의 형식처럼 그 구조가 아주 인위적이고 어려운 것이었다. 시인 자신은 시민 계급이나 학자 계층 출신일지라도 이 시의 내용과 사고 전개는 궁정의 특성을 지닌 것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문학 특유의 미래를 보여주는 새로운 두 개의 출구가 나타난다. 그것들은 시 형식하고만 관련된 것이지만 그래도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단테의 스승인 브루네토 라티니는 칸초네 문학에서 음유시인들의 통상적인 방식을 취했던 사람인데, 가장 일찍 알려진 '무운의 11운각 시행'또한 그의 것이다. 이렇게 형식이 없어 보이는 형태로 갑자기 참된 정열이 표현되었다. 그것은 내용의 힘을 믿고 외적인 수단을 의식적으로 제한한 것이다. 몇십 년 뒤의 프레스코화와, 그보다 뒷날에 그려진 패널 그림들에서도 이런 방식이 나타나는데, 색채를 포기하고 더 밝은 혹은 더 어두운 색조만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렸다. 보통은 인위적인 형식을 그토록 중시하던 시대에 브루네토 라티니의 이 런 시 형식은 새로운 방향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Brunetto Latini

     

     

     

    출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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