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역사
-
예술의 전문화와 다면성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5. 6. 10:58
우리는 재능의 다양성, 특히 한 인간에게서 구현되는 예술과 학문의 결합을 르네상스의 특징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예술가 한 사람이 여러 기술을 완전히 습득하는 현상은, 다시 말하면 지오토, 오르카냐, 브루넬레스키, 베네데토 다 마이아노,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건축가인 동시에 조각가, 화가였고 피자넬로, 안토니오 폴라이우올로, 베로키오가 조각가인 동시에 화가, 금은세공가, 메달조각가였으며 점점 전문화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도 라파엘로는 화가이자 건축가였고 미켈란젤로는 조각가, 화가인 동시에 건축가였다는 사실은 다면성이라는 르네상스의 이상보다는 오히려 조형예술이 가지고 있던 기술적, 수공업적 성격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박식다재는 실제로는 중세적 이상이다. 콰트로첸토는 수공업적 전통과 함께 이러..
-
예술의 과학화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5. 5. 08:38
콰트로첸토의 학자나 연구자들이 누리던 명성은 19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회복되었다. 이 두 세기에는 모든 노력이 새로운 수단 및 새로은 과학적 방법과 기술적 발명을 통해 경제 팽창과 성장을 촉진시키는 데에 집중되었다. 15세기와 19세기의 과학의 우위와 과학자의 명성은 부분적으로는 바로 이러한 현상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아돌프 힐데브란트(1847-1921 독일 조각가)와 버나드 베렌슨이 조형예술에서 '형식'이라고 일컫는 것은 알베르티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에 있어서의 원근법 개념처럼 미적 개념이라기 보다 오히려 이론적 개념이다. 이 두 범주는 모두 감각적인 경험세계에서의 지침이자 공간성을 해명하는 수단이며 시각적 인식의 도구이다. 르네상스에서 예술에 대한 애호가 아무리 컸다 하더라도 당시의 예술원칙이..
-
예술의 자율성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5. 3. 17:16
천재 개념이 예술가의 입장에서 주관적 형식으로 표현된 생각이라면, 반대로 작품의 입장에서 객관적 형식으로 표현하면 곧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개념이 된다. 정신적인 형성물의 자율성이란 정신의 자발성과 맞먹는 개념인 것이다. 그러나 르네상스에서 예술의 자율성이란 단지 교회와 교회가 대표하는 형이상학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할 뿐 절대적, 보편적인 자율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교회의 도그마로부터 해방되기는 했지만 이 시대 과학의 세계상과는 계속 밀착되어 있었다. 그것은 예술가들이 성직자계층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인문주의 및 그 추종자들과는 그만큼 더 깊은 관련을 맺게 된 것과 같은 현상이다. 그러나 중세에 예술이 '신학의 시녀'가 되엇던 것처럼 르네상스에서 학문의 시녀가 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예술은 ..
-
르네상스의 천재 개념과 독창성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5. 1. 09:18
르네상스의 예술관에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은 천재 개념의 발견이다. 예술작품은 자주적 인격의 소산이고 자주적 인격은 전통, 이론, 규범은 물론 작품까지도 넘어서서 그 위에 군림하는 것이며 작품은 그 법칙을 이러한 인격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는 생각, 바꾸어 말하면 이러한 자주적, 창조적 인격의 소유자는 작품보다 더 풍부하고 심원하며 어떠한 객관적 형상으로도 완전히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정신의 독창성과 자발성 그 자체에 가치를 두지 않았고 거장을 모방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요 표절도 허용될 수 있는 일로 간주했으며 정신적 경쟁이라는 생각에 겨우 접하기는 했을망정 결코 그것이 지배적이지 않았던 중세에는 천재라는 개념은 완전히 생소한 것이었다. 천재란 곧 신의 선물이요 남에게 양도될 수 없는 타고..
-
예술가의 전설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4. 29. 09:38
이처럼 회화를 중세적, 수공업적 관점보다 높이 평가하는 태도는 이미 인문주의 최초의 선구자들에게서 나타난다. 단테는 그의 연옥편 제 11장에서 치마부에와 지오토 두 거장을 위한 불멸의 기념비를 세웠고, 이들 화가들을 구이도 구이니첼리, 구이도 카발칸티 같은 시인들과 비교하고 있다. 페트라르카도 그의 소네트에서 화가 시모네 마르티니를 높이 칭찬하고 있으며, 필리포 빌라니도 피렌체를 찬미하는 글에서 도시의 이름있는 명사를 열거하면서 몇몇 화가들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소설, 그중에서도 특히 보카치오와 사케티의 소설에는 미술가에 대한 일화가 많이 들어 있다. 비록 얘기 속에서 예술 자체는 별다른 역할을 못하고 있지만, 이러한 소설에서 특기할 점은 예술가들을 이름없는 평범한 장인들의 존재와 분리..
-
예술가와 인문주의자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4. 28. 09:12
우리는 화가와 조각가가 길드로부터 해방되고 수공업자의 위치에서 시인과 학자의 위치로 상승한 원인을 그들이 인문주의자와 결합한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우리는 인문주의자가 예술가의 편을 든 이유를, 고대문화의 열광자인 인문주의자들이 그리스나 로마의 기념비적 문학작품과 미술작품은 서로 분리될 수 없을 정도의 통일체를 이루었고 또 고대에는 미술가도 시인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명망을 누렸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로 설명해왔다. 실제로 인문주의자들로서는 공통적인 유래로 인해 똑같은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보던 이들 예술품의 창조자들을 동시대인들이 자기들과 달리 평가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동시대인들, 그리고 나아가서는 19세기에 이르기까지의 후세사람들에게 고대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
죽음의 환영이.탈.리.아 역사/중세역사 medioevo 2020. 4. 25. 21:17
쇠퇴기의 중세만큼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강조하고 감정을 부여한 시대는 달리 없었다. 그 시대에는 끊임없이 삶 속에서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는 호소가 메아리쳤다. 중세 전시대에 걸쳐 종교는 사람들의 정신 속에 죽음에 대한 항구적인 생각을 새겨놓았다. 하지만 앞 시대의 신앙서들은 주로 이미 은퇴한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쳤다. 차츰 탁발 수도회와 더불어 민중 설교가 확장되어갔고 그러자 삶을 비난하는 말들이 어두운 송가로서 지속적인 둔주곡의 모티프를 가지고 삶을 관류하며 높아져갔다. 중세 말기에 이르면 새로운 형태의 표현 형식이 설교가들의 설교에 더해지는데, 사회의 모든 계층 속에 파고든 목판화가 그것이었다. 설교와 이미지, 이 두 표현 양식은 민중을 사로잡으면서, 죽음의 표현에 단순하고 직접적이..
-
목가적인 삶의 꿈이.탈.리.아 역사/중세역사 medioevo 2020. 4. 21. 09:26
삶의 기사도적 개념은 아름다움과 미덕과 유용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였다. 코민Commines이 하듯이 순전히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그 유명한 기사도는 전부 불필요하고 거짓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즉 하나의 외적 과시일 뿐이며 우스꽝스러운 시대 착오에 불과하다. 사실 인간을 행동으로 몰아가고 각 신분들과 공동체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진정한 모티프들은 기사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기사도적 이상이 갖는 사회적 유용성이 극히 약한 것으로 되었다면 그 윤리적 가치는 훨씬 더 약하게 보였다. 순전한 정신적 멸망과 비교해볼 때 이 고결한 삶은 모두 한낱 죄와 허영일 뿐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 이 이상은 순전히 미학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더이상 만족할 만한 것이 못 되었다. 사회적 형식들의 아름다움조차도 모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