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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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국과 그 위기 II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2. 19. 01:24
보르지아 가문 엄격하게 보자면 이탈리아 문화 형식들을 논하는 책에서 교황 알렉산더 6세는 다루지 않아야 할 사람이다. 보르자 가문은 나폴리 가문이나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는 체사레와 공공연하게 에스파냐어로 대화했고, 루크레치아는 페라라궁에 맞아들여질 때 에스파냐 옷차림이었으며, 에스파냐 테너 가수들이 노래했다. 집안의 가장 가까운 하인들은 에스파냐 사람들이었고, 마찬가지로 1500년 전투에서 체사레의 악명 높은 병사들도 에스파냐 사람이었다. 체사레의 온갖 이질적인 행위 중에는 폐쇄된 궁전 정원에서 투우를 즐기는 것도 있었다. 부정부패에서도 이 일가는 선두에 등장한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어떤 일을 했는가는 자주 저술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달성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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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국과 그 위기 I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2. 18. 22:28
교황국 아주 예외적인 존재로서 교황 제도와 교황국은 이탈리아 국가들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서 지금까지는 오직 부수적인 관심만을 끌었다. 보통 이탈리아 국가들을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 즉 권력 수단을 의식적으로 강화하고 집중화하는 일이 교황국에서는 극히 드물게 나타났다. 종교적인 힘이 세속적 힘의 부족을 끊임없이 감싸고 보충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성되어 있던 국가가 14세기와 15세기 초에 얼마나 가혹한 시련을 겪어야 했던가. 교황이 남프랑스 국가에 붙들려 가자 (교황의 아비뇽 유폐 1309~1377)처음에는 모든 것이 해체되었다. 그러나 아비뇽은 돈과 군대를 가졌고, 교황국을 다시 완전히 굴복시킨 위대한 정치가이자 전사를 가졌다. 바로 에스파냐 사람 알보르노즈Albornoz 1310~1367 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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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품으로서의 전쟁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2. 17. 18:25
전쟁이 어떤 방식으로 예술품의 성격을 갖는가 하는 것을 여기서는 다만 몇 마디로 암시할 생각이다. 중세 서양에서 개별적인 전사의 교육은 당시의 방어와 무기 체계의 한계 안에서는 가장 완벽한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시대에나 축성 기술과 포위 기술에서 천재적인 발명가들이 있었다. 다만 전략과 전술은 실질적, 시간적인 수많은 이유에서 전투 의무가 제한되었다는 점과, 귀족의 명예심을 통해서 발전 과정에 방해를 받았다. 예를 들면 귀족은 적을 앞에 놓고서도 전투에서의 우선 순위를 놓고 다투고, 맹목적 광포함을 통해 크레시 전투와 모페르튀 전투같은 가장 중요한 전투들을 망쳤다. 인문주의자들의 '전쟁 기술' 그에 반해 이탈리아에서는 아주 일찍부터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조직된 용병 제도가 도입되었다. 총과 대포가 일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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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국가들의 외교 정책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2. 16. 15:49
대부분의 이탈리아 국가들이 창조물(반성에 의거하고 정확하게 계산되고 눈에 보이는 기초에 근거하고 의식을 지닌 창조물)이라고 한다면, 그들 상호간의 관계, 그리고 외국에 대한 그들의 관계 또한 창조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 거의 모두가 상당히 최근에 일어난 권력 찬탈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정은 내부에서와 마찬가지로 외교관계에서도 치명적인 일이었다. 속셈 없이는 누구도 상대를 인정하지 않았다... 전제군주가 조용히 통치를 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군주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았다. 스스로를 확장하고 움직이려는 욕구는 모든 불법적인 권력에 공통된 현상이다. 그래서 이탈리아는 '외교 정책'의 고향이 된다. 이 외교 정책은 점차 다른 나라들에서도 일종의 공인된 법률 체계라는 지위를 얻게 되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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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형식의 출현 - 프랑스의 인문주의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2. 15. 19:42
요한 호이징가(하위징아)Johan Huiginga 1872-1945 새로 탄생하는 인문주의humanisme와 중세 조락기간의 관계는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인문주의를 중세에 대립시키는 데 익숙해 있는 우리는 이성고 고대적 아름다움에의 열망과 닳아빠진 낡은 사고 체계와 중세적 표현의 포기를 마치 돌연한 계시처럼 갑작스러운 산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알레고리들과 플랑보아양flamboyant 양식1 에 식상한 정신들은 돌연 그것을 거부했을 것이고, 고전의 조화로움이 그들에게는 구원의 메시지인 양 제시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길을 발견한 사람들의 열정으로 고대에 매달렸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고전주의는 정반대로 중세적 사고의 뜰안 무성한 식물들 사이에서 조금씩 조금씩 자라났다.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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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II : 피렌체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2. 13. 12:25
피렌체는 여러 가지 정치 형태와 그에 따른 명암들을 겪었을 뿐 아니라, 서양의 다른 자유국가들 보다 훨씬 더 많이 그에 관한 답변들을 내놓았다. 그것은 변하기 쉬운 보편성에 대한 인간 계층 및 개인들의 태도를 완전히 반영한다. 프루아싸르가 보여주는 프랑스와 플랑드르 지역의 위대한 시민 계급 선동가들의 모습과 14세기 도이치 연대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정말 중요한 것들이다. 다만 정신적인 완전성과 사건에 대한 다양한 근거 제시라는 측면에서 피렌체 사람들은 그들 모두를 훨씬 능가한다. 귀족 지배, 전제군주, 중간 계급과 무산자 간의 싸움, 완전한, 절반의, 겉보기만의 민주주의, 한 가문의 우선권, 신정 정치(사보나롤라 의), 그리고 메디치 가문의 전제정치를 예비하는 혼합 형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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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I : 베네치아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2. 12. 18:36
한동안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도시를 국가로 만드는 힘을 최대한도로 발휘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도시들은 거대한 연방을 결성하기만 하면 되었다. 때로는 이런 형식, 때로는 저런 형식의 옷을 입고 나타나기는 했지만 이것은 이탈리아에서 되풀이해서 시도되었다. 12세기와 13세기의 싸움에서 실제로 크고 전투력이 강한 도시 연방들이 생겼다. 시스몬디는 롬바르디아 연방이 바르바로싸에 맞서 마지막으로 무장했던 시기(1168년 이후) 가 아마도 이탈리아 연방이 형성될 수 있었을 적기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강력한 도시들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특성들을 발전시킨 이후였다. 그들은 무역 경쟁국으로서 상호간에 극단적인 수단까지 사용하였고 힘이 약한 이웃 도시들에 압력을 가해 무조건적인 종속으로 끌어들였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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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배경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2. 11. 16:11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유럽이 일찍부터 문화적으로 동양을 앞서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그리이스나 로마 의 찬란한 문화를 이어받은 중세 유럽의 문화가 같은 시대 동양의 문화에 비해 훨씬 더 앞서고 있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많은 학자들이 밝히고 있듯이 유럽의 중세가 암흑 시대는 아니었다. 그러나 일부 유럽 역사가들이 중세를 문명의 시대로 말하고 있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왜냐하면 당시의 아라비아나 비잔틴 제국에 비하면 중세기 유럽 문화는 많이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뒤떨어져 있던 것은 문화 만이 아니었다. 도덕도 그만큼 저열한 상태였다. 그 무렵 가장 진보해 있었던 곳이 아라비아 제국이고, 중세 유럽의 십자군(1096~1270)은 그 문명 세계를 약탈, 정복하러 나선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