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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인의 발전
    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2. 22. 10:27

     

    이탈리아 국가와 개인

     공화국이든 전제국가든 이탈리아 국가들의 특성속에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현대적 인간으로 일찌감치 형성된 이유, 유일한 이유는 아니지만 가장 강력한 이유가 들어 있다. 

     

     

     

    개인주의의 형성

     중세에는 의식의 두 측면 - 곧 세상을 향한 것과 인간 자신의 내면을 향한 것 - 이 하나의 공통된 베일 아래 감싸여서 꿈꾸거나 아니면 반쯤 깨어 있었다. 그 베일은 신앙심, 어린아이 같은 선입견, 망상 등으로 짜여진 것이었다. 그 베일을 통해서 내다보면 세상과 역사는 이상하게 채색되어 보였고, 인간은 자신을 오직 종족, 민족, 당파, 분대, 가족, 그 밖에 어떤 형태든지 보편성의 모습으로만 인식하였다. 바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이 베일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국가와 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에 대한 '객관적' 관찰과 취급법이 드디어 깨어났다. 바로 그 옆에서 '주관성'도 완전한 힘으로 몸을 일으켰다. 인간은 정신적인 '개인'이 되고 스스로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한때는 그리스 사람들이 야만인에 대해서, 아랍인이 다른 아시아 사람들에 대해서 그런 방식으로 자신들을 구분했었다. 정치적 상황이 여기서 가장 강력한 몫을 차지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훨씬 더 일찍부터 여기저기서 자기 자신에 근거한 개성의 발전이 나타났다. 그런 것은 북부에서는 개성으로 여겨지지 않거나 아예 나타나지 않았다...13세기 말경 이탈리아에는 개성들이 넘쳐나기 시작한다. 개인주의를 향한 길이 이미 완전히 열렸다. 수많은 개별적인 얼굴들이 끝도 없이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단테의 위대한 문학은 다른 나라에서라면, 나머지 유럽 국가들이 아직도 종족이라는 굴레 아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미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풍부한 개성을 통해서 고귀한 시인이 자기 시대의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문학과 예술 작품에 나타나는 사람들에 대한 서술, 다양하게 묘사된 인간 성격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는 심리적인 사실만을 다루기로 하자. 그것은 완전한 모습으로 단호하게 역사에 등장한다. 14세기 이탈리아는 거짓 겸양과 가식이라는 것을 거의 몰랐다. 누구나 거리낌없이 자기가 다른 사람과 실제로 다르고,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드러냈다. 

     

    Dante Alighieri, by Giotto di Bordone, c. 1335

     

     맨 처음에는 전제군주제가 전제군주와 용병대장의 개성을 극단적으로 발전시켰다. 그 다음으로는 그의 보호를 받기는 하지만 가차없이 착취당해온 재능 있는 사람들, 즉 비서, 관리, 시인, 수행원 등이 개성을 발전시켰다. 이런 사람들의 정신은 지속적인 것이든 일시적인 것이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내적 자원들을 알아야 했다. 어쩌면 짧기만 한 권력과 영향력의 순간에 가능한 한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 그들의 삶의 기쁨은 정신적인 수단을 통해서 높여지고 집중되었다. 

     그러나 피지배계층도 그와 같은 충동이 완전히 없지는 않았다. 여기서는 비밀 저항이나 모반에 삶을 바친 사람들은 논외로 하고, 비잔틴 제국과 회교도 국가들의 도시 거주민들처럼 순수한 개인으로 남으려고 한 사람들만을 생각하기로 하자. 예를 들면 비스콘티의 신하들은 가문과 개인의 품위를 주장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속을 통해서 도덕적인 성품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적인 유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정치적 무력함 속에서 개인적 삶의 극히 다양한 방향과 열망이 피어났기 때문이며, 그럴수록 오히려 더욱 강하고 더욱 다양한 방향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자신을 보여줄 수 있고 서로 경쟁을 할 수도 있는 부와 교양이 도시의 자유로움과 결합되고, 비잔틴이나 이슬람 세계도 그렇듯이 국가와 동일시되지 않는 교회와 결합되어서 - 의심할 바 없이 이 모든 요소들이 한데 합쳐져서 - 개인적 사고 방식이 꽃피어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게다가 당파 싸움이 없다는 것이 여기에 꼭 필요한 무위를 덧붙여주었다. 정치에 무관심한 개인은 한편으로는 진지하고 한편으로는 도락적인 활동을 벌이면서 14세기의 전제국가들에서 처음으로 완성된 모습으로 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관해서 문서로 된 진술들을 찾을 수는 없다. 어느 정도의 암시를 기대할 수 있는 단편소설가들은 많은 기묘한 인간들을 서술하기는 하였지만 언제나 일방적인 의도에서만 그렇게 했다. 아니면 서술되는 이야기와 닿아 있는 부분만을 이야기했다. 그들의 이야기들은 주로 공화국 도시들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공화국 도시들에서 사태는 또 다른 방식으로도 개인적 성격의 형성에 유리하였다. 통치하는 당파들이 자주 바뀔수록 개인은 통치술을 연습하고 누리는 데 더욱더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특히 피렌체 역사에서 정치가들과 국민 지도자들은 분명하게 개인적인 특성을 얻는다.   

     패배한 당파의 사람들은 자주 전제국가의 신하들과 비슷한 처지에 떨어졌다. 그러나 이미 맛본 자유나 통치, 어쩌면 그것을 되찾을 희망이 그들의 개인주의에 더 많은 생기를 주었다. 이렇게 자발적이지 않은 무위의 사람들 사이에서 아뇰로 판돌피니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그의 <가정 생활>이라는 저술은 완전히 완성된 개인 생활에 대한 최초의 프로그램이었다. 개인의 의무와 불확실하고 고마움을 모르는 공식적 생활을 날카롭게 나누는 방식은 그 시대의 기념비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추방 또한 인간을 소모시키거나 아니면 최고도로 단련시켰다. 조비아노 폰타노는 이렇게 말한다. "인구 많은 우리 도시들에서 우리는 자발적으로 자기 고향을 떠난 사람들 많이 본다. 쓸모 있는 사람은 어디서나 환영받는다." 정말로 공식적으로 추방당한 사람들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혹은 경제적 사정을 참을 수 없어서 자발적으로 고향을 떠났다. 피렌체를 떠나 페라라로 간 사람들과 베네치아로 간 루카 사람들은 외국 교민 집단을 이룰 정도였다. 가장 정신력이 풍부한 추방자들에게서 발전되어 나온 세계시민주의는 개인주의의 가장 높은 단계였다. 단테는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탈리아의 언어와 교양에서 새로운 고향을 찾아냈다. 게다가 그것을 넘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내 고향은 이 세계다!" 사람들이 어울리지 않는 조건들을 제시하면서 그에게 피렌체에 등을 돌리라는 제안을 하자 그는 이런 답장을 썼다. "나는 어디서나 태양과 별들의 빛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국민과 고향 도시에 명예를 잃은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고도 어디서든 가장 고귀한 진리에 대해 명상할 수 있지 않은가요? 앞으로도 내게 빵이 부족하지는 않을 겁니다." 예술가들은 높은 저항 의식으로 장소가 가지는 압력에서 자신들이 자유롭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기베르티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을 배운 사람은 바깥 어디서도 이방인이 아니다. 재산을 빼앗기고 친구가 없어도 그는 모든 도시의 친구가 되고 아무 두려움 없이 운명의 변화를 경멸할 수 있다." 도망친 인문주의자 한 사람도 비슷한 말을 하였다. "학식 있는 사람이 거처를 잡는 곳은 어디든 훌륭한 고향이다"

     

     

     

    출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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