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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틴토레토
    이.탈.리.아 역사/16c - 19c 2020. 9. 14. 09:26

     

    그러나 미켈란젤로의 진정한 후계자는 이러한 범유럽적인 '미켈란젤로적' 마니에리즘이 아니라 이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본질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던 틴토레토(1518-1594)이다. 베네치아는 군주의 궁정을 갖고 있지 않았고 틴토레토는 티치아노처럼 외국의 궁정을 위해 일하지도 않았다. 아니, 베네치아 공화국으로부터 작품 주문을 의뢰받은 것도 그의 만년에 이르러서였다. 그는 궁정이나 국가 대신에 주로 교우회의 일을 맡았다. 그이 예술의 종교적 성격이 주문자의 요구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와 정신적으로 가까운 집단에서 고객을 골랐기 때문인지는 확언하기 힘들다. 아무튼 그가 비록 방식은 다르다 하더라도 미켈란젤로와 비교될 수 있을 정도로 당시의 종교적 재생을 깊게 표현한 이탈리아 유일의 예술가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틴토레토는 1575년 산 로코 교우회의 회원이 되어 그 교우회를 위해 일했는데 보수조건이 매우 낮은 것으로 보아 이 일을 맡은 것은 주로 그 자신의 감정적 요소 때문이었으리라고 짐작된다. 틴토레토 예술의 정신적・종교적 방향은 비록 그것이 외부로부터 정해지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어쨌든 그가 예컨대 티치아노의 고객과는 전혀 생각을 달리 하는 고객을 위해 일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종교적 기초 위에 세워지고 대부분 직업별로 조직된 교우회는 16세기 베네치아의 매우 특징적인 존재였다. 이들이 번창했다는 사실은 종교생활의 심화를 말해주는 한 징후이며 이러한 심화는 이탈리아의 대부분의 다른 곳에서보다도 콘타리니의 고향인 베네치아에서 더 강렬하게 나타났다. 교우회의 성원들은 대부분 소시민들이었고, 이러한 사실 또한 그들이 왜 예술적 관심에서 엄격한 종교적 요소에 우선권을 주었는가를 설명해준다. 그러나 이들 교우회 자체는 부유해서 그들의 회관을 수준 높은 그림으로 장식할 수 있었다. 틴토레토는 이러한 교우회관의 하나인 스쿠올라 산 로코의 그림 작업을 함으로써 반종교개혁 시대의 가장 위대하고 대표적인 화가가 되었다. 그가 정신적 재생을 경험한 시기는 1560년 전후, 그러니까 트렌토 종교회의가 그 종말에 가까워져서 예술에 관한 훈령이 제정될 무렵이었다. 스쿠올라 산 로코의 대작은 1565~1567년 그리고 1576~1587년의 두 기간에 걸쳐 제작되었는데, 이 그림들에서 그는 구약성서의 주인공들을 묘사하고 예수의 생애를 얘기하며 기독교의 성사들을 찬미하고 있다. 그림의 주제로 보건대 이들 벽화는 아레나 예배당에 있는 지오토의 벽화 시리즈 이래 기독교 예술이 만들어낸 최대 규모의 회화들이고, 그림의 정신으로 말한다면 기독교적 우주를 이처럼 정통적으로 묘사한 그림을 찾으려면 고딕 성당의 회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이다. 틴토레토에 비하면 미켈란젤로는 기독교의 신비와 씨름하는 일개 이교도인 셈이다. 미켈란젤로가 그 해결을 찾아 아직도 투쟁해야 했던 기독교의 신비를 틴토레토는 이미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성서의 여러 장면들, 수태고지, 성모 방문, 최후의 만찬, 십자가에 못 박힘 등은 미켈란젤로에서처럼 단순히 구세주 예수의 비극 속에 나오는 삽화가 아니라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 기독교 신앙의 신비이다. 그의 묘사는 신비적인 성격을 띠며, 그의 그림이 르네상스의 자연주의적 성과를 모두 수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얻는 주된 인상은 비현실적이고, 정신적이며 영감에 찬 것이다.

     

     

    Studio San Rocco by Tintoretto

     

     

     

     

     

    Tintoretto (Jacopo Robusti)  Christ Carried to the Tomb  late 1550s

     

     

    여기서는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세속적인 것과 초세속적인 것들 사이에 전혀 괴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와같은 완전한 평형상태는 하나의 과도기적 단계로서, 묘사의 정통적인 기독교 정신은 다시 사라지게 된다. 만년의 틴토레토 작품에 나타나는 세계상은 가끔 이교적・신비적인 성격 아니면 기껏해야 구약성서적인 성격이지, 신약성서적인 성격은 띠지 않는다. 이들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우주적 사건이자 원초적 세계의 드라마인데, 여기서는 예언자와 성자와 그리스도와 하느님 아버지가 모두 같은 공연자이지 무대감독이나 제작자가 아닌 것이다. [모세, 바위를 두들겨 물을 내다]라는 그림에서 모세는 주역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물줄기의 기적 뒤로 물러서야만 할 뿐 아니라, 하느님 자신도 하나의 움직이는 천체 내지 우주라는 메커니즘 속의 하나의 불수레가 되어 있다. 이러한 대우주적 드라마는 유혹이나 승천 등과 같은 그림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데, 이 그림들은 엄격한 의미에서 기독교적, 성서적이라고 부르기에는 역사적 구체성과 인간적 관련성이 너무나 희박하다. 다른 작품들, 예컨대 [이집트로의 피난]이나 두 개의 [마리아 상]에서는 전체 장면이 이상화된 신화적 풍경으로 바뀌며 인물은 거의 완전히 사라지고 배경이 전체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Drawings of Tintoretto

     

     

    Drawings of Tintoretto

     

     

     

    Studio del Crepuscolo di Michelangelo - Jacopo Tintoretto

     

     

     

     

     

     

    출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아르놀트 하우저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내셔널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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