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바로크의 재평가
    이.탈.리.아 역사/16c - 19c 2020. 9. 18. 11:23

     

    인상주의를 통한 바로크의 재평가

    17세기 예술이 총괄적으로 바로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바로크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18세기에는 아직도 그것은 당시의 고전주의적 예술이론의 관점에서 보아 무절제하고 혼란스러우며 기괴하게 느껴졌던 예술 현상에 적용되었다. 거의 19세기 말경까지 지배적이었던 이러한 개념에서 고전주의 자체는 제외되었다. 요한 요아힘 빙켈만의 입장은 물론이고 부르크하르트의 입장까지도 근본적으로는 고전주의적 예술이론의 관점에 의거하고 있다. 즉 그들은 모두 바로크를 무규칙적이고 자의적이라는 이유를 붙여 비난했고, 그것도 바로크 예술가인 니콜라 푸생을 모범으로 간주하는 미학의 이름으로 비난했다. 부르크하르트나 베네데토 크로체 같은 뒷날의 순수주의자들(잡다한 현대적 경향에 반대하는 순화주의자라는 뜻)처럼 18세기의 편협한 합리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사람들은 바로크 예술을 단지 비논리적이고 전체 구조의 균형을 못 갖춘 예술로만 보았고, 바로크 건축의 원주나 벽기둥은 아무것도 떠받들고 있지 않고 처마도리와 벽면은 마분지로 만들어진 것처럼 마음대로 휠 수도 접을 수도 있는 것이며, 바로크 회화의 인물들은 마치 무대 위에서처럼 부자연스럽게 조명되고 있고 부자연스러운 몸짓을 하며, 바로크의 조상은 본래 회화 특유의 것이고 또 회화에만 국한되어야 한다고 비평가들이 강조하는 환각적 표면효과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들만을 보았다. 그러나 로댕 같은 조각가의 예술을 체험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이러한 바로크 조각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보았어야 했다. 그러나 바로크에 대한 이들의 반대는 인상주의에 대한 반대이기도 했던 것이며, 바로크 예술을 '악취미'라고 비난한 크로체는 사실상 자기 시대의 새로운 예술을 적대시하는 아카데미즘의 편견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바로크 예술의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가치평가는 주로 뵐플린리글의 업적이며, 이는 인상주의라는 예술사조의 수용이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뵐플린이 만든 바로크의 여러 범주는 인상주의의 여러 개념을 17세기 예술에 그대로 적용한 것에 불과했다. 그것도 17세기 예술의 일부에만 적용한 것인데, 뵐플린의 바로크 개념이 비교적 명확했던 것은 17세기 예술의 고전주의를 근본적으로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방적인 고찰의 결과로 인해 비고전주의적인 바로크 예술은 더욱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 되었다. 17세기 예술이 16세기 예술의 연속이 아니라 그에 대한 변증법적 대립으로 보이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뵐플린은 르네상스에서는 주관주의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는데 바로크에서는 이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였다. 그는 인상주의적 예술 의욕의 시초, 그의 말을 빌리면 "지금까지의 예술사가 경험한 가장 중요한 방향 전환"의 시초가 17세기에 이루어진다고 단정하고 있지만, 그러나 예술적 세계관의 주관화, '촉각상'으로부터 '시각상'으로의 전환과 실상으로부터 가상으로의 전환, 인상과 체험으로서의 세계라는 입장, 주관적인 국면을 가장 중요시하고 모든 시각적 인상이 지니는 과도적 성격을 강조하는 사고방식 등이 바로크 시대에 완성되긴 했지만 르네상스와 매너리즘에서 이미 상당히 준비되었음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뵐플린은 이러한 동적 세계상의 여러 예술 외적 전제조건에 관심을 갖지 않고, 모든 예술사의 진행과정을 일정의 폐쇄적, 준논리적 기능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양식 변화의 사회학적 조건과 함께 그 실질적인 근원을 간과하였다. 왜냐하면 예컨대 주관적인 인상에 따르면 굴러가는 수레바퀴의 살이 없어진다는 발견이 17세기에 새로이 대두한 세계상을 말해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발견들로 귀결된 발전은 일찍이 고딕 시대에 상징적 관념 회화가 해체되고 그 대신 현실의 시각상이 점점 순수하게 됨으로써 시작되었고, 이는 또한 개념 실재론 사유에 대한 개념 유명론적 사유의 승리와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Heinrich Wölfflin

     

     

    뵐플린의 근본개념

    뵐플린은 다섯 쌍의 대립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그의 체계를 발전시키고 있는데, 각 쌍의 개념에는 각각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특징이 서로 대립되어 있고, 그중 단 한 쌍의 대립 개념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좀 더 엄격한 예술관으로부터 좀더 자유로운 예술관으로 나아가는 발전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범주들을 열거하면 (1) 선적인 것과 회화적인 것, (2) 평면적인 것과 입체적인 것, (3) 폐쇄적인 것과 개방적인 것, (4)명확한 것과 불명확한 것, (5) 다양한 것과 단일한 것이다. '회화적인 것'에 대한 추구, 즉 조각적이고 선적이며 견고한 형식을 움직이는 것・부동하는 것・파악하기 힘든 것으로 해체시킨다든가, 제한이 없고 측정할 수 없으며 무한한 것의 인상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한계나 윤곽을 지워버린다든가, 지속적・정체적・객관적 존재를 생성이나 기능으로, 주관과 객체의 상호작용으로 변화시킨다든가 하는 것 - 이것이 뵐플린의 바로크 개념의 기본 특징을 이루고 있다. '평면'보다 '입체적 깊이'라는 경향도 동일한 역동적 생활감정의 표현이다. 즉 일체의 고정적인 것과 확고부동한 것 그리고 명확한 윤곽을 가진 것에 대해 반발하는 생활감정의 표현인데, 여기서 공간은 형성되고 있는 그 무엇, 생성과정에 포착된 것 내지는 일종의 기능으로 파악되고 있다. 공간의 깊이를 나타내기 위해 바로크 예술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은 전경을 지나치게 크게 그리고 전경의 인물들을 보는 사람의 바로 눈앞에 돌출하도록 하며, 배경의 사물은 원근법적으로 급격하게 축소시키는 것이다. 그 결과 공간은 그 자체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는 인상을 줄 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은 화면에 극히 가까운 시점이 주어짐으로써 공간이 자기 자신에게 종속되어 있고 자신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형식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Peter Paul Rubens, The Massacre of the Innocents, c. 1611-1612

     

     

    그러나 절대적인 것을 상대적인 것으로, 엄격한 것을 자유스러운 것으로 대체하려는 바로크의 경향을 가장 뚜렷하게 나타내는 것은 '개방적'인 비건축적 형식을 즐겨 쓴다는 사실이다. 폐쇄적인 '고전주의적' 구도에서는 화면에 묘사된 것은 이미 그 자체로서 한계 지어진 현상이요 이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는 서로 관련되어 있거나 서로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상호 관련 속에서는 어느 한 요소도 불필요하다거나 모자라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와 달리 바로크 예술의 비건축적・비조직적 구성은 언제나 다소간은 불완전하고 분열적으로 보이며 또한 어디서나 다시 계속될 수 있고 자신을 초월해 무엇인가를 지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일체의 고정되고 항구적인 것은 흔들리게 된다. 수평선과 수직선으로 표현된 안정, 균형과 좌우대칭이라는 이념 및 그림의 표면을 완전히 채우고 그림의 틀에 알맞게 그리는 원칙 등은 경시되었고, 언제나 구도의 어느 한 측면은 다른 측면보다 더 강조되고 그림을 보는 사람은 정면이나 측면 같은 '순수한' 전망 대신에 우연적이고 즉흥적이며 순간적인 광경을 보게 되는 것이다. 뵐플린의 말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바로크가 지향하는 바는 화면을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독립적 세계가 아니라 그냥 스쳐 지나가는, 그러나 관람객이 한순간이나마 참가할 수 있는 영광을 지니는 장면으로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화면 전체를 의도가 없이 그리 된 것으로 보이도록 할 것을 노리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바로크 예술은 '영화적'이다. 즉 여기 묘사된 과정들은 슬쩍 엿듣고 몰래 엿본 것처럼 보이고, 보는 사람을 고려했을 성싶은 일체의 흔적은 지워져 있으며 모든 것은 마치 우연히 일어난 일처럼 제시되어 있다. 묘사가 비교적 명확하지 못한 것도 이러한 즉흥성과 관련되어 있다. 빈번하고 때로는 무리한 오버랩, 투시도법에 의한 크기의 과도한 격차, 그림의 틀에 의해 주어진 여러 방향성의 무시, 소재의 불완전성과 모티프 처리의 불공평 등은 모두 묘사가 일목요연해지는 것을 의도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수단일 뿐이다.

     

    Artemisia Gentileschi, Judith and her Maidservant, 1623-25

     

     

    간단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명료한 것에서 덜 명료한 것으로, 뻔히 드러나는 것에서 감춰진 것으로 나아가는 예술문화 내부에서의 연속적인 발전이 너무 명백하고 확실한 것에 대한 점증하는 혐오감에 일조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예술 감상자들은 그들의 교양과 예술 이해의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이와 같은 자극의 상승을 요구하는 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것과 어려운 것, 그리고 복잡한 것을 통한 자극과 병행해서 무엇보다도 감상자에게 묘사된 화면의 무궁무진하고 파악하기 힘들며 무한함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노력이 바로크에서 다시 나타나는데, 모든 바로크 예술은 이러한 경향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통일성의 원리

    이러한 모든 특징들에는 속박되지 않고 한계 지어지지 않으며 자의적인 것을 추구하는 반고전주의적인 충동이 나타나고 있는데, 다만 뵐플린이 지적한 양식적 특징들 중에서 통일성의 추구라는 특징에서만 종합으로 나아가고 따라서 좀 더 엄격한 구성 원칙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화됨을 볼 수 있다. 만약 뵐플린이 상정한 대로 예술사의 발전과정이 하나의 명확한 논리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회화적인 것과 공간의 깊이, 비건축적인 것과 불명확한 것에 대한 기호는 마땅히 모티프의 다양성의 경향, 축적과 좌우 병렬의 경향과 결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바로크 예술은 어느 작품에서나 집약과 종속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바로크 예술은 -뵐플린은 이 점을 지적하지 않았는데- 르네상스의 고전주의적 예술의 계속이지 결코 그 반대가 아닌 것이다. 이미 초기 르네상스 중에서도 중세의 누적적 구성 방법과는 대조되는 통일과 종속에 대한 추구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당대의 합리주의는 구도의 불가분성과 시점의 일관성 속에서 그 예술적 표현을 얻었던 것이다. 관람자가 작품을 수용하는 동안 자신의 관점, 특히 자연에의 충실성을 판별하는 기준을 바꿀 필요가 없을 때에만 예술적 환각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 당시의 지배적 의견이었다. 하지만 르네상스 예술의 통일성이란 일종의 논리적 일관성에 지나지 않았고, 묘사의 총체성이란 것도 개개 사물의 총합에 불과한 것으로서 거기 포함된 상이한 구성요소들이 뚜렷이 식별되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크 예술에서는 그러한 부분 부분들의 상대적 독립성은 상실된다. 다 빈치나 라파엘로의 구도에서는 아직도 각 요소를 분리시켜 즐길 수 있지만 루벤스와 렘브란트의 회화에 이르면 디테일의 묘사는 이미 그 자체로서는 아무론 의미를 갖지 못한다. 바로크 거장들의 구도는 르네상스 화가의 구도보다 더욱 풍부하고 복잡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한층 더 동질적이며 더욱 크고 깊고 지속적인 숨결이 지배하고 있다. 바로크 예술에서는 통일성이 추후에 달성된 결과가 아니라 예술적 창조 자체의 선행조건이다. 예술가는 처음부터 하나의 비전을 가지고 대상에 접근하기 때문에 일체의 특수하고 개별적인 것은 결국 이러한 비전 속에 용해되는 것이다. 이미 부르크하르트도 개별적 형식이 지닌 독자적 의미가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크 예술의 한 특징으로 인지하였고, 리글도 되풀이해서 바로크 작품들에서 보이는 디테일의 무의미성과 추함, 즉 디테일의 불균형성을 강조하고 있다. 마치 바로크가 건축에서 장대한 양식을 좋아한 것처럼, 다시 말해서 르네상스가 예컨대 건물의 각층을 수평선으로 서로 분리시킨 반면에 바로크는 관통하는 둥근기둥과 벽기둥 양식을 통해 이를 통일시키고 있는 것처럼, 회화에서도 각 구성 부분들을 주요한 모티프에 종속시키고 하나의 주된 효과에 초점을 맞추어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회화의 구도는 흔히 단 하나의 대각선이나 하나의 색채 부분에 의해 지배되고 있고, 조각 형식은 하나의 곡선에 의해서, 음악작품은 전체를 주도하는 하나의 솔로 음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Rembrandt, The Night Watch , 1642

     

     

     

    출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아르놀트 하우저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이.탈.리.아 역사 > 16c - 19c'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로크 시대의 로마  (0) 2020.09.29
    궁정적・ 카톨릭적 바로크  (0) 2020.09.25
    바로크의 개념  (0) 2020.09.15
    틴토레토  (0) 2020.09.14
    피렌체에서의 마니에리즘  (0) 2020.09.12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