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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카치오 Giovanni Boccaccio이.탈.리.아 문화/문 학 lettere 2020. 1. 19. 06:55
1313년 ~ 1375년 소설가, 시인
중세기 문학의 위대한 종료를 장식한 단테에 이어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으로 이탈리아 문학에 근대성을 불어넣은 사람은 페트라르카였다. 페트라르카로부터 참다운 의미의 근대 이탈리아 문학이 시작된다고 보아야 하고, 그의 주된 사상인 인문주의(Umanesimo)는 보카치오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중세를 암흑 시대라고 단정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겠지만, 종교의 속박 때문에 신의 문제에 천착한 나머지 문학이나 예술의 중요한 소재가 신이나 신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인권 본위의 문화인 헬레니즘이 로마에 이식되어 발전해 갔지만 교권 만능의 문화권에서 헬레니즘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던 것이다.
인문주의는 여기에 대항해서 생겨난 것이다. 기독 사상은 인정하면서, 오히려 그것을 더욱 고양시키고 승화시켜 문학 속에 표현하고자 인간의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따라서 오래 잊혀졌던 고전 작품 속에서 인간의 참다운 가치를 찾고 새로운 문학의 방향을 설정하는 이정표를 세우는 데 필요한 초석을 찾으려 했는데, 이것이 곧 인문주의의 근본이다.
인간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인문주의는 곧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태동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이다. 보카치오는 페트라르카가 출발점을 찍어놓은 인문주의의 직속 계승자이며, 탁월한 산문력과 창작력을 구사하여 전 대중속에 깊이 파고든 작가였다.
단테나 페트라르카의 생애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듯이 보카치오의 생애에 대해서도 확실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가장 보편화된 설에 의하면 그는 1313년 피렌체 부근의 체르탈도Certaldo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어머니와 함께 파리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지오바니는 그녀의 사후 피렌체의 아버지에게로 보내져 라틴어 문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남달리 총명하던 그는 6살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자신의 직업(은행가)을 이어가게 하려고 나폴리로 보내 은행업을 배우도록 했다. 당시의 나폴리 왕국은 문화의 중심지로 생기에 넘치는 곳이었다. 보카치오는 그 곳의 문화와 정서적인 삶에 반했고, 그 곳은 제 2의 고향이 된다.
은행이나 상업에 관심이 없던 그는 아버지를 설득해 나폴리 대학의 전신인 스타디움Stadium에 들어가 6년간 교회법을 공부했는데, 교회법에 필요한 라틴어를 공부 하면 할 수록 문학에 끌려 결국 완전히 문학 쪽으로 돌아서게 된다.
이 즈음 베르질리우스와 스타시우스 등의 작품과 그리스 신화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면서 타고난 창작력을 발휘하여 보카치오는 주옥같은 시를 쓰기 시작했다.
고전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단지오 왕가의 총애를 받던 그는 단지오 왕의 딸인 마리아를 사랑했는데, 그녀의 바람기가 젊은 보카치오의 마음을 상당히 괴롭혔다고 한다.
그의 작품 속의 영원한 뮤즈 피암메타Fiammetta인 마리아Maria d'Aquino 는 결국 보카치오를 버리게 되며, 그후 얼마 안되어 세상을 떠난다. 베아트리체를 잃은 단테와 마찬가지로 보카치오도 그녀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며 그 상실감을 시와 소설 속에 표현하게 된다.
1340년 말 경 나폴리 바르디 가문의 은행이 도산하면서 그 은행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던 아버지도 파산하여 그는 피렌체로 다시 소환되는데, 제 2의 고향이며 청춘을 보낸 나폴리를 떠나게 된 그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향수에 사로잡힌다. 마음을 잡지 못한 그는 이 곳 저 곳 방랑을 시작하여 또다시 나폴리에 이르게 되지만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고 피렌체로 돌아간다.
페스트가 전 피렌체를 휩쓸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 때를 전후하여 그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해 페트라르카와도 만나게 되고, 그의 주선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데카메론이 이 시기의 작품이다.
여러 도시에 외교관으로 파견되기도 했으나 문필작업을 계속하던 그는 페트라르카의 영향에 의해 자신의 방탕한 생활을 깊이 반성하게 되는데, 페로니라는 극단적인 사제에 의해 신앙심이 더욱 부추겨져 하마터면 모든 비종교적인 작품을 불태울 뻔 했다고 한다. 그 때 페트라르카의 충고가 없었다면 데카메론조차 사라져 버릴 뻔 했던 것이다.
베네치아에서 오랫동안 페트라르카의 보호 아래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그와 깊은 우정을 나누던 그는 1370년 다시 나폴리를 방문하게 되고, 잠시 고향인 체르탈도에 머물다가 피렌체 영주의 초청으로 성당에서 단테의 신곡을 강의하게 되나, 건강이 악화되어 체르탈도로 다시 돌아가 1375년 12월 21일 세상을 떠난다.
출처> 이탈리아 문학의 이해 - 한형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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