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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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주의 정치의 이념이.탈.리.아 역사/16c - 19c 2020. 9. 3. 08:24
1541년 레겐스부르크 회의에서 콘타리니의 종교화해 협상이 결렬됨으로써 카톨릭 개혁운동의 '인문주의적' 제1기는 종말을 고한다. 개명되고 인간적이며 관용적이던 사톨레토, 콘타리니, 폴레 들의 시대도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모든 분야에서 현실주의의 원리가 승리를 구가했다. 이상주의자들은 현실을 정복할 능력이 없음이 입증되었다. 교황 바오로 3세(재위 1534~1549)는 이미 관용적인 르네상스에서 비관용적인 반종교개혁운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대표한다. 1542년에는 종교재판제도가, 1543년에는 출판 검열제도가 실시되었고 1545년에는 트렌토 종교회의가 열렸다. 레겐스부르크에서의 실패는 카톨릭교회로 하여금 전투적인 태도를 취하게 했고 권위와 권력에 의해서 카톨릭의 재건을 기도하도록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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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II : 피렌체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2. 13. 12:25
피렌체는 여러 가지 정치 형태와 그에 따른 명암들을 겪었을 뿐 아니라, 서양의 다른 자유국가들 보다 훨씬 더 많이 그에 관한 답변들을 내놓았다. 그것은 변하기 쉬운 보편성에 대한 인간 계층 및 개인들의 태도를 완전히 반영한다. 프루아싸르가 보여주는 프랑스와 플랑드르 지역의 위대한 시민 계급 선동가들의 모습과 14세기 도이치 연대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정말 중요한 것들이다. 다만 정신적인 완전성과 사건에 대한 다양한 근거 제시라는 측면에서 피렌체 사람들은 그들 모두를 훨씬 능가한다. 귀족 지배, 전제군주, 중간 계급과 무산자 간의 싸움, 완전한, 절반의, 겉보기만의 민주주의, 한 가문의 우선권, 신정 정치(사보나롤라 의), 그리고 메디치 가문의 전제정치를 예비하는 혼합 형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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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군주론 Il Principe이.탈.리.아 문화/인문학 scienze Umanistiche 2020. 2. 8. 10:57
마키아벨리가 출생한 당시의 이탈리아는 내부적으로는 로마, 피렌체, 밀라노, 나폴리, 베네치아의 다섯개의 강력한 도시국가로 분립되어 각각 유력한 지방귀족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으며, 그들의 주권자는 소위 전제적 독재자였고, 그 위에 로마교황이 또한 최고주권자로 교권 및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밖으로는 프랑스 왕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원정으로 사분오열되어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 강대국의 정치적 야망의 제물이 되었다. 이처럼 외국 세력 다툼의 장이 된 것에는 국내의 추잡한 내분과 분열에 원인이 있었으나, 그 내분을 이용하여 권위를 유지하려는 교황에게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로마교회가 도덕의 퇴폐와 신앙의 세속화를 이탈리아 민족에게 주었으며, 국내의 끊임없는 내분을 야기시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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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Niccolo Macchiavelli이.탈.리.아 역사/이탈리아가낳은인물 titani 2020. 2. 7. 14:37
마키아벨리의 생애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1469년 5월 3일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의 수도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며 공화제 자유도시의 상층을 대표하는 시민으로 성장했다. 그의 부모는 피렌체 이름 있는 지방 귀족 가문 출신들이었으며, 특히 부친은 변호사로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그의 유년기와 소년기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이런 환경으로 미루어 보아, 그리고 생애 후기에 병약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은 지식으로 남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특히 학문과 음악에 정진할 것을 당부한 것으로 보아 대체적으로 유복한 환경 속에서 면학에 힘쓰고 고상한 취미를 추구하는 전형적인 귀족의 장남으로 생활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탈리아 반도에서 가장 강한 도시국가이던 피렌체는 일대 변혁을 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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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Macchiavelli의 사상과 문학이.탈.리.아 문화/문 학 lettere 2020. 2. 4. 14:21
마키아벨리만큼 분분한 논란을 일으킨 사람은 일찌기 아무도 없었다. 정치적으로는 격동의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일고, 문화적으로는 문예 부흥의 화려한 꽃이 피어오르는 일종의 모순과 갈등에 처해있던 시기에 그는 피렌체에서 태어났다(1469). 그가 정치 생활을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스물 아홉이 되었을 때 2등 서기국에 발탁되면서부터였다. 인문주의 교육의 바탕에다 현실주의적인 역사 사회관에 입각하여 자신의 사상을 실현시키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비록 내무와 병무를 주관하는 부서의 서기였지만 그의 해박한 지식은 그로 하여금 외교 문제를 담당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리하여 그는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피렌체와 이웃하고 있는 주변 국가들을 자주 왕래하면서 그의 지식을 더욱 풍요롭게 하였다. , ,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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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정치의 반대자들이.탈.리.아 역사/중세역사 medioevo 2020. 2. 4. 11:22
전제군주에 대한 증오 이렇게 집중된 영주의 권력에 맞선 저항은 국가 안에서는 전혀 성과가 없었다. 도시 공화국 성립을 위한 요소들은 영원히 사라졌고 모든 것은 권력과 폭력을 지향하였다. 귀족 계급은 봉건 토지를 가진 경우에도 정치적인 권력은 없이 자신과 암살자들을 교황당Guelfi 과 황제당 Ghibellini 으로 나누고 베레모자에 깃털을 꽂든가 아니면 바지를 볼록하게 하거나 혹은 다른 방식으로 옷을 입는 것이 고작이었다. 사색가들, 예를 들면 마키아벨리(Macchiavelli 1469~1527)같은 사람들은 밀라노나 나폴리 같은 나라가 공화정을 하기에는 너무 부패했다 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폭력의 그늘에 두 줄로 늘어선 가문 간의 원한에 지나지 않는, 이미 오래 전에 낡아버린 저 두 당파들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