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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도의 관념
    이.탈.리.아 역사/중세역사 medioevo 2020. 4. 5. 02:26

     

    일반적으로 중세의 사고는 종교적 개념들로 가득하다. 마찬가지로 보다 제한된 영역 즉 궁정과 귀족 계급내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사고 속에 기사도적 이상이 가득 배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적 영역까지 침범한다. 

    귀족 계급에 기초한 이 드높은 열망은 구체적인 형태를 띠는가? 또 그것은 이 계급의 의무와 관련된 어떤 일정한 정치 사상에까지 평화의 수립과 예루살렘 정복 및 터키족 축출을 위한 싸움이다. 

    하지만 기사도에 기초한 사회라는 이같은 환상은 기묘하게도 현실과는 상당한 대조를 이루었다...기사도라는 개념은 이들 작가들의 피상적인 정신에게는 당시의 사건들을 스스로 납득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일종의 마술 열쇠 같은 것이었다. 그 시대의 정치가 그러했듯이 전쟁도 극도로 조잡했고 십중팔구는 지리멸렬하기 일수였다. 거대한 영역 위에서 산발적으로 흩어진 채 각각 고립되어 싸웠고 소규모 국부전들이 만성적 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외교술은 복잡하고도 결함이 많은 방편으로서 한편으로는 매우 일발적인 전통적 사고의 지배를 받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국부적이고 사소한 권리문제들의 잘 풀리지 않는 거대한 총체에 의해 좌우되기도 하였다. 역사는 결국 실제의 사회 발전을 식별할 수가 없었으므로 기사도적 이상이라는 허구를 사용하였으며, 그것의 힘을 빌어 세계를 제후들의 명예 및 궁정적 덕행이라는 아름다운 이미지의 범주로 축소시키면서 질서의 환상을 만들어냈다.

     

     

    삶의 이상으로서 기사도의 개념은 매우 특수한 성격을 띤다. 본질상 그것은 환상과 영웅적 감동에서 나온, 그러나 외관에 있어서는 윤리적 이상을 담당한 하나의 미학적 이상이었다. 중세적 사고는 기사도의 개념을 종교와 미덕에 결부시키면서만 그 기사도적 개념에 귀족적 위치를 부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사도는 결코 완벽하게 이 윤리적 기능의 높이에까지 이를 수 없을 것이다. 그 지상적 기원이 그것을 막는 것이다. 그같은 이상의 본질은 미의 위치까지 올려진 교만이기 때문이다. 샤를랭은 이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후 권력들은 교만으로 기울어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모든 주요 권력들은 교만이라는 한 좁은 점으로 수렴되고 있다. 모든 주요 권력들은 교만이라는 한 좁은 점으로 수렴되고 있다." 교만은 양식화되고 찬양받으면서 기사도적 삶의 축이라 할 수 있는 명예를 탄생시켰다. 테느는 중간 계층과 하위층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는 이해 관계가 그 주된 원동력인 반면에 귀족 계급에서는 교만이 그 큰 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자부심이 강한 인간은 스스로에 대한 존경심을 필요로 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그는 그에 합당한 자가 되려 하기 때문이다." 이 말들은 부르크하르트가 르네상스 시대의 명예감에 대해 판단한 것과 관련이 깊다. 즉 양심과 에고이즘의 이 기이한 혼합이야말로 수많은 악행과 양립할 수 있으며 극도의 착각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한 인간 속에 순수하고 귀족적인 것으로 남아 있는 모든 것은 거기에 의거하며 바로 거기에서 새로운 힘을 길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개인적 영예에의 갈망은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르네상스기 인간의 특성처럼 생각된다. 그는 이탈리아 외부에서 중세적 삶을 고무하는 계급적 명예 및 영광에 대립시켜 단테 이래 과거 모델들의 영향 하에 이탈리아 정신이 멸망한 인간적 영광 및 명예심을 대립시킨다. 하지만 내가 볼 때는 이것은 부르크하르트 자신이 중세와 르네상스 또 서유럽과 이탈리아 사이의 거리감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점 중의 하나인 것 같다. 르네상스기 인간 특유의 이 명예심과 영예욕은 본질상 전시대의 기사도적 야심이기도 하다. 그것은 봉건적 감정은 제거되고 고대적 사고에 의해 윤색된 확대된 계급적 명예심이다. 후세에게 찬양받으려는 열렬한 희구는 15세기 이탈리아의 예술 운동을 주도한 아름다운 정신들에게서 볼 수있는 것 만큼이나 12세기의 궁정기사나 14세기의 거친 장수들에게도 낯선 것은 아니었다...

    기사도적인 영광과 명예에의 추구는 영웅 숭배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리고 그 영웅 숭배 속에는 중세적 요소와 르네상스적 요소가 뒤섞여 있다. 기사도적 삶은 하나의 모방, 즉 아더왕 서사시군의 영웅들이나 고대 영웅들의 모방이라 할 수 있다...고대 역사는 여전히 경이로운 여전히 경이로운 원탁의 나라들과 뒤섞인다. 

    전사의 용맹함이 <르 주방셀>의 대목들에서보다 더 간결하고 표현적으로 묘사된 것은 없었다.  "전쟁이란 즐거운 것이다...사람들은 전쟁시 그토록 서로 사랑한다. 자기네 편의 싸움이 잘 되어가고 또 자기네 혈족이 잘 싸우는 것을 볼 때 사람들의 눈엔 눈물이 흐른다. 우리 창조주의 명령을 이루기 위해 그렇게 용감하게 자기몸을 내놓는 친구를 볼 때 충성심과 연민에 가득찬 마음에는 애정이 싹튼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와 더불어 죽고 그와 더불어 살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며 사랑하므로 결코 버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거기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극한 기쁨이 생겨난다. 이것에 직면한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리라 생각하는가? 결코 아니다. 그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 만큼 힘을 얻고 완전히 넋을 잃는다. 그래서 그는 진짜로 아무것도 겁내지 않게 된다. "

    이러한 말들은 15세기 기사에 의해서만큼 현대의 병사에 의해서도 그만큼 잘 씌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말이 특별히 중세적이랄 것은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전장의 용맹성의 진수를 보여준다. 위험 한가운데서 자신을 망각하는 것이며 동료의 용기에 감동을 느끼는 것, 또 충성심과 희생 정신의 극한 희열 등등, 이같은 원시적인 금욕주의는, 기사도적 이상이 남성적 완벽성의 고귀한 표현 즉 그리스인들의 '칼로카가티아'에서 표현된 것 같은 아름다운 삶에로의 열망에까지 고양되는 기반이 된다. 이 이상이야말로 수세기 동안 하나의 에네르기의 원천으로 남을 것이며...또 모든 에고이즘과 난폭함의 세계를 뒤에 숨긴 마스크로 남을 것이다. 

     

     

    출처> 중세의 가을 / 호이징가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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