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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코 델라 미란돌라
    이.탈.리.아 역사/이탈리아가낳은인물 titani 2020. 3. 4. 13:13

     

    Giovanni Pico della Mirandola, 1463. 2. 24 - 1494. 11. 17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원만하며, 키가 크고, 살결이 보드랍고 매끄러우며, 얼굴은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살색은 희고 적당히 붉으며, 눈동자는 잿빛이며 발랄하고, 이는 하얗고 고르며, 머리카락은 금빛이고 숱이 풍부한” 모습1이었다는 피코 델라 미란돌라 도시 요새로 시작하여 4세기 동안 독립 공국이었던 미란돌라Mirandola 의 귀족인 아버지 지안프랑코 1세와 귀족 출신 어머니 줄리아 보이아르도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피코 가문은 스포르차, 곤자가, 에스테 가문들의 가까운 친척이었고, 형제들은 코르시카, 페라라, 볼로냐의 상속자들과 결혼했다. 

    어려서부터 천재로 불릴 정도로 영민하던 그는 학문을 좋아하던 어머니 밑에서 일찍부터 인문주의 교육을 받았고, 14세가 되자 볼로냐 대학에서 로마법을 공부한다. 2년 후 페라라로 옮겨갔고 곧 파도바로 옮겼는데, 여기서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스승들 중의 하나인 Elia del Medigo를 만나게 된다. 유태인인 Elia del Medigo는 애버로이스트 Averroist (진리와 신앙은 별개의 존재라고 주장하는 학자들) 아리스토텔레스 학파 였다. 

    1482년 파도바를 떠날 무렵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 의 신플라톤주의에 매력을 느껴 피렌체에 머물면서 마르실리오 피치노, 로렌조 일 마니피코, 안젤로 폴리지아노, 에지디오 다 비테르보, 지롤라모 베니비에니, 지롤라모 발비, 요하난 알레만노 등 당대의 수많은 지식인들과 우정을 쌓는다.

     

    Marsilio Ficino , Giovanni Pico della Mirandola e  Agnolo Poliziano – Miracle of the Sacrament 1484-86 by Cosimo Rosselli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융합시키는 새로운 과제에 몰두하던 그는 1484년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적 스콜라 신학의 중심지였던 파리 소르본 대학으로 옮겨 수학한다. 철학논리를 발전시키는 것과 함께 문학적 재능을 가다듬은 그는 유명한 학자 Ermolao Barbaro에게 보내는 서신 형태로 선언문을 발표하여 어떻게 수사학rhetoric이 철학자를 무장시켜 수사학적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소명을 방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파리에서의 길지 않은 체류를 끝내고 피렌체로 돌아온 그는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아내인 마르게리타를 납치하는 사건을 일으켰는데, 로렌조 데 메디치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피렌체에 머물지 못하고 당시의 혼란과 전염병을 피해 계속해서 장소를 옮겨 다니면서 Girolamo Benivieni의 연애시에 대한 논평을 쓰고, 거대한 철학적 융합 체계를 계획했다. 이 계획의 핵심은 플라톤주의자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조화를 통해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융합시키려는 피코의 새로운 목표는 기독교와 여러 이교의 융합이라는 야심찬 과제와 결부되어 있었다. 그의 히브리어에 대한 풍부한 지식으로 연구한 유대의 비교 카발라cabala는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플라톤과 성서와 카발라를 지혜의 3대 보고라고 불렀다. 

    1486년 그는 Universal philosophical congress를 통하여 그리스·히브리·아랍·라틴 등의 작가들의 저술을 모은 900개의 논제를 놓고 유럽 전역의 학자들을 초대하여 로마에서 공개 토론을 벌일 예정이었다. 개회식을 위해 <De hominis dignitate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연설>을 준비했는데, 15세기에 발표된 철학 텍스트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이 담화는 창조자이자 건설자인 신을 정의하고, 우주의 중심에 인간을 놓는 지성의 힘을 보여주는 것으로, 후학들에 의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선언"으로 간주되었다.

    연설을 요약하면; 신의 의사에 의해서 우주의 중심에 놓인 인간은 대우주에 대한 소우주이고,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 신은 창조의 마지막 날에 인간을 창조하셨다. 인간이 우주의 법칙을 인식하고 그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그 위대함에 경탄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인간을 그 어떤 확고한 자리에도, 그 어떤 정해진 행동에도, 그 어떤 필연성과도 맺어놓지 않고 그에게 움직일 권한과 자유로운 의지를 주셨다. 창조주는 아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세계 한 가운데 너를 세웠다. 네가 더욱 쉽게 사방을 둘러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너를 천상의 존재도 지상의 존재도 아닌 것으로, 죽는 존재도 죽지 않는 존재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네가 너 자신을 만들어가는 존재가 되고 스스로 극복하는 존재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너는 짐승으로 떨어질 수도 신과 비슷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짐승은 어미의 몸에서 나올 때 제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을 가지고 나온다. 더 높은 정신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니면 태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영원 속에 머물게 될 그런 존재가 된다. 너만이 자유 의사에 따라 발전과 성장을 할 수 있으며 온갖 종류의 삶의 씨앗을 네 안에 가지고 있다." - 2 그러나 교황청 위원회는 이 논제 중 13개를 이단으로 탄핵하여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는 이 회의를 금지시킨다.

    이후 이 논제들에 대한 〈변명 Apologia〉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단으로 파문된 그는 프랑스로 도피했다가 그레노블에서 필립 2세에게 체포되었으나 즉시 풀려났다. 메디치, 곤자가, 스포르차의 보호하에 피렌체에 정착하였고, 미란돌라의 저작은 예수 크리스토의 성스러움을 표현하려는 의지라고 좋게 해석해준 알렉산드로 6세에 의해  1492년 사면받았다.  피치노의 아카데미아에 계속 드나든다. 

    말년에는 엄격한 정통파 그리스도교도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의 영향을 받았다.

    교회의 적에 대항해 쓴 피코의 미완성 논문에는 점성술의 결함에 대한 논의도 들어 있다. 비록 이 비판은 그 바탕이 과학이라기보다 종교였지만 17세기 과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에게 영향을 미쳤다. 행성운동에 대한 케플러의 연구는 근대 천문학의 기반이 되었다.

    1494년  11월 17일 서른 한살의 나이에 열병에 걸린 그는 비소중독으로 사망하여 산 마르코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피코의 다른 저서로는 자신의 7개 논점을 넌지시 알리는 〈헤프타플로스 Heptaplos〉(그리스어로 hepta는 '7'이라는 뜻)라는 제목으로 〈창세기〉를 설명한 것과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개요를 다룬 것이 있다. 완성된 저작 〈존재와 일자에 관하여 De ente et uno〉는 그 일부이다. 피코의 저작들을 처음으로 모아 펴낸 책은 〈요안네스 피코 미란돌라 해설서 Commentationes Joannis Pici Mirandulae〉(1495~96)이고 E. 가린이 1942년 현대판을 발간하기 시작했다.

     

    Mirandola 의 Castello Pico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고전적인 고대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에 반대하고 모든 시대의 학문과 진실을 옹호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베로에스와 유대인 연구자들뿐 아니라 중세의 스콜라 철학자들도 각기 내용에 알맞게 평가하였다. 그는 그들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영원히 살 것이다. 자구에 얽매이는 학파 속이 아니라 현자들의 모임 안에서. 안드로마케의 어머니나 니오베의 다들들에 대해 토론하는 곳이 아니라, 신과 인갅거인 사물의 더욱 깊은 근원에 대해 토론하는 곳에서. 그곳으로 가까이 오는 사람은 야만인들도 혀가 아닌 가슴 속에 정신을 가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강력하고도 아름다운 라틴어와 명료한 묘사를 통해서 그는 현학적 순수주의와 남에게서 빌린 형식을 지나치게 평가하는 일을 조롱하였다. 특히 그런 지나친 평가가 일방적으로 사태의 위대한 진실을 희생시킬 경우에 더욱 그러했다. 반종교개혁의 물결이 더 높은 정신적 삶을 교란시키지 않았더라면. 이탈리아 철학이 얼마나 위대한 전환을 맞이했을 것인가를 그를 통해 알 수 있다. 2

     



    출처>  1 [Daum백과]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김상근, 21세기북스

               2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위키백과 이탈리아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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