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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롤라모 사보나롤라이.탈.리.아 역사/이탈리아가낳은인물 titani 2020. 3. 6. 10:04
Girolamo Maria Francesco Matteo Savonarola (1452 – 1498) 이탈리아의 도미니쿠스회 수도사·설교가·종교개혁가
<무기없는 예언자>로 알려진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북부 이탈리아 페라라에서 태어난 사보나롤라는 조부 밑에서 소년 시절을 보내며 시와 산문을 즐겨 썼다. 1475년 고향을 떠나 도미니크 수도원에 들어갔고, 91년에는 피렌체의 산 마르코 수도원장으로 부임한다. 이때는 르네상스가 최고조에 달한 시대였다. 이 자의식 과잉의 시대, 신앙은 소홀하게 취급되고, 사회는 문란해져 있었다. 사보나롤라는 피렌체에 경고하기 시작한다 " 회개하라, 때가 가까와졌다. 큰 재난이 너희에게 닥치리니..."
그런데 이 광신자 같은 수도사를 경멸하던 시민들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그 예언자적 열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피렌체의 군주 메디치가의 보호하에 <비너스의 탄생>, <봄>같은 이교적인 그림을 그렸던 화가 보티첼리조차 사보나롤라를 신봉하게 되었다. 이 무렵, 사보나롤라는 땅속에서 치솟는 불길로 피렌체가 활활 타버릴 무서운 <심판의 날>을 환상으로 목격했다고까지 극언했다. 그의 말에 감동한 사람들은 설교를 들으며 울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사보나롤라 신봉자들을 항간에서는 피아니오니(우는 벌레)라고 불렀다.
1492년 로렌조 메디치가 죽고, 피에로 데 메디치가 피렌체의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 메디치가의 운명에는 불길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메디치가의 몰락을 재촉한 결정적인 사건은 1494년에 행해진 프랑스왕 샤를 8세의 침입이다. 이 젊은 프랑스 왕의 침입은 분열과 혼란속의 이탈리아에 대한 열강 최초의 침입으로 알려져 있고, 이탈리아 역사에서는 그 근대사의 첫 페이지를 쓰는 중요한 사건이기도 하다.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에 침입한 샤를 8세 대군은 마치 버터를 바늘로 뚫듯이 단숨에, 그리고 아무 저항도 없이 나폴리까지 점령하게 된다. 샤를 8세의 대군을 맞이한 피렌체 군주 피에로는 정복된지 알마 안되는 이탈리아 도시 피사 외에도 배상금 20만 금 굴덴을 바친다는 굴욕적인 화평을 제의하여 일단 위기를 모면하는 듯 했으나, 샤를 8세와 손잡은 반대파에 의해 추방당했다. 피렌체 시민들은 사보나롤라의 예언이 적중한다는 공포와 불안 속에서 점령군이 입성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탈리아인들이 알고 있던 군대는 용병대장 중심의 오합지졸 뿐이었는데 그것에 비하면, 북방에서 불시에 나타난 샤를 8세의 대군은 제복부터 시작해서 장병 전원의 일거 일동이 일사분란하고, 소총대, 궁병대 기병대, 포병대 등이 위풍당당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당대 이탈리아인들이 상상도 못해본 절대 왕정의 군대였다. 피렌체 시민들은 모두 그 독설을 즐기던 입을 다물고, "프랑스인이 왔다"고만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 프랑스군은 피렌체 시당국의 후대에 만족하여 피에로가 약속한 배상금도 받지 않은 채 나폴리로 떠나버렸다. 이 때 샤를 8세를 상대로 탁월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피렌체를 구한 것이 바로 <피렌체 재난의 날>을 예고했던 사보나롤라였고, 피렌체 시민들은 그를 중심으로 오랫만에 공화정을 부활시켰다.
이때부터 사보나롤라는 피렌체에서 신정정치의 막을 올렸다. 이른바 <신의 의사>에 의해 모든 것을 행하는 정치였다. 사보나롤라는 금욕적인 생활을 강요하면서 시민들의 도덕적 갱생을 부르짖고, 부패한 로마 교회를 비난하면서, 개혁을 요구했다. 이 종교적 열광 상태는 1497년 사육제에서 행해진<허영의 소각>에서 그 절정에 이르렀다. 시민들이 자진해서, 혹은 강제에 의해 내놓은 화장 도구, 장식품, 옷, 서적, 예술품에 이르기까지 <사치품>이라고 인정되는 것은 모두 악마로 취급되어 광장에서 불에 던져졌다. 그에 앞서 어느 상인이 그 아까운 물건들을 구해보려고 2만 2천 후로린(수십억 상당)에 사려 했으나 오히려 악마 취급을 당했다. 이런 일은 사보나롤라가 <순수, 무구>하다고 생각한 10대 소년단들에 의해 벌어졌다.
그를 반대하여 피렌체에 '아라비아티'(Arrabbiati)라는 한 당파가 형성되었다. 이들 내부 정적들은 강력한 외부세력들과 동맹을 맺었는데, 이 가운데 대표적인 세력은 밀라노의 공작과 교황으로서 이들은 프랑스 왕에 맞서 신성동맹(神聖同盟 Holy League)에 가담한 상태였고, 피렌체가 이 동맹에 가담하는 것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사보나롤라라고 보았다.1
사보나롤라의 숙명적 패배
로맹 롤랑은 문제의 피렌체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총명하고 편협하고 광신적이고, 또 서로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입으로는 독설을 내뱉으며, 의문이 많은 정신은 내부에 깊이 숨기고, 비밀 행동을 즐기고, 질시하고 그렇게 서로 망해갔다> 같은 르네상스 시대에도 다른 지역과 달리 쾌락적이고, 이교적이고, 또 고전적이기도 했던 것이 피렌체와 시민들이었다. 이런 열혈 시민들은 흥분하기도 잘하고 식기도 잘한다. 사보나롤라의 예언이나 설교가 아무리 탁월해도 그런 시민들을 오래 잡아둘 수는 없었다. 한때의 종교의 열광이 가시자 시민들은 곧 수도승들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피렌체의 지배권을 장악하고 싶어하던 대상인은 재빨리 시민들과 제휴했다.
사보나롤라에게 직접 싸움을 건 것은 이들 사보나롤라의 강적 밀라노와 교황청의 지원을 받은 프란체스코 수도승들이었다. 프란체스코회 수도승들은 누가 옳은지 신의 심판을 받자고 도발했다. 중세 유럽의 교회에서 흔히 사용하던 신명 재판의 일종으로, 불속에 들어갔다 나와서 무사한 쪽이 이기는 것이었다. 1498년 4월 7일 일요일 오후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 사람들이 운집한 가운데 신명 재판이 열렸다.
산처럼 쌓아올려진 장작더미 속에 좁은 통로가 하나 있고, 곧 장작 더미는 불이 붙었다.
그러나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사가 나타나지 않아 신성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법령 규정에 따라 사보나롤라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기적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다음날 아라비아티당은 폭동을 일으켜 산마르코로 몰려가서 경비병들을 물리치고 사보나롤라를 프라 도메니코와 그밖의 다른 제자들과 함께 마치 일반 범죄자처럼 끌고 갔다. 가장 악랄한 정적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그를 심문하고 혹독하게 고문했으며, 어떤 죄목이라도 뒤집어씌우기 위해 심문기록을 위조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교황청 위원들이 로마에서 '판결문을 가슴에 품고'(그 가운데 한 사람의 말에 따르면) 왔다. 형식적인 종교재판이 열린 뒤 그는 세속군대에 넘겨져 두 동료들과 함께 교수형과 화형을 당했다. 그가 화형당하던 순간의 기록은 마치 교회 교부들 생애의 한 장면과 같다.
그는 처형대에 오르기 전에 교황의 사면과 전대사(全大赦)를 경건하게 받아들였다.1
사보나롤라에 대한 평가
사보나롤라는 사실상 성직자들의 부패에 대항해 싸웠고, 이 가운데 알렉산데르 6세는 극단적인 한 예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로마 교황권 자체와 싸우지는 않았고, 언제나 복종과 존경을 표시했다. 종교개혁자였으나 철저히 가톨릭교도이자 토마스주의자였다.
그의 저서에는 이러한 그의 신앙이 잘 나타나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은 그리스도교 변증학을 명쾌하게 해설해 놓은 〈고난의 승리 Triumphus crucis〉이다.
실현된 환상들과 예언들을 기록한 〈계시 목록 Compendium revelationum〉은 여러 나라에서 판을 거듭했다. 설교는 다른 사람이 받아 적은 것들 몇 편이 현존한다. 사보나롤라가 죽은 뒤 그에 대한 숭배의식이 생겨 오랫동안 전승되었다. 교회가 성인으로 시성한 사람들 중 필리프 네리와 카테리나 데 리치 같은 이들은 그를 성인으로 존경했다. 성무일도에는 그에게 드리는 기도가 실렸고, 그가 행했던 기적들이 기록되었다.
그는 그림과 메달에서 '베아투스'(beatus)라는 이름으로 묘사된다. 〈성인전 Acta sanctorum〉에서 그는 〈praetermissi〉에 나온다. 1952년 탄생 500주년 기념식에서 그를 성인으로 시성하는 문제가 다시 거론되었다.1
출처> 대세계사 8권 근대의 서곡 / 김성근
1 [Daum백과] 사보나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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