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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펌>예술가들의 고향 이탈리아 마르케 주
    이.탈.리.아 여정/중부이탈리아 centro 2013. 9. 4. 22:54



    이탈리아 마르케 주는 한국의 강원도와 같이 이탈리아 중부의 동쪽 해안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바다와 언덕 그리고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시빌리니 산맥이 있는, 자연의 축복을 받은 지역이다. 토스카나의 언덕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뭔가 덜 꾸민 듯 자연스러움이 살아 있다.

     


     


     

    이탈리아 마르케(Marche) 주에는 프라다(Prada)나 토즈(Tods), 체사레 파치오티(Cesare Paciotti)의 신발 생산 공장들이 있고 요트를 제조하는 공장도 밀집해있으며 와인과 치즈,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어 수입이 많은 반면 인구 밀집도는 적어 삶의 질이 매우 풍요로운 곳이다.

    한여름으로 접어든 8월 초, 일단 목적지를 마르케 주에서 가장 중요한 우르비노(Urbino) 시로 잡았다. 한국인에게 좀 생소한 우르비노는 도시 곳곳에 중세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는 작은 언덕 도시다.

    천재 화가 라파엘로(Raffaello, 1483~1520)와 건축가 브라만테(Bramante, 1444~1514)의 고향이며 15세기 르네상스 예술과 건축이 크게 번성했던 곳으로 1998년 구시가지 전부가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곳으로 이탈리아와 유럽의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이 꽃피운 문화는 유럽 전역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두오모 성당 바로 맞은편의 민박집에 짐을 풀자마자 도시를 구경하러 나갔다.

    시는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관광객도 거의 없었다. 일단 두칼레 궁전을 방문한 후 도시 탐험에 나섰다. 도시라고는 하지만 서울의 명동만 한 크기여서 반나절이면 다 구경할 수 있을 정도다.

    언덕 꼭대기에 생긴 도시라 모든 길은 평지라고는 없이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었다. 대부분의 골목 벽에는 철근으로 긴 손잡이를 박아 걸음걸이가 불편한 노인들은 물론 눈, 비가 오는 날 미끌어지지 않도록 했다. 300~400년 이상된 우르비노의 집들은 대부분 벽돌로 지어졌고 19세기 이후에 지은 건물들은 시멘트벽으로 마감되었기에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도시에는 젊은이보다 노인이 많았고 대부분 삼삼오오 광장 주변이나 바에 모여 하루를 보냈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은 거의 대부분 대도시로 옮겨간 모양이다.

    두칼레 궁전 뒤로 내려와 5분 정도 걸어 라파엘로의 생가에 도착했다. 14세기에 지어진 이 집에서 1483년 라파엘로가 태어났다. 당시 매우 부유한가정이었으리라고 느껴지는 이 집에는 우르비노의 특징적인 작은 안뜰과 우물이 있고 집 안에는 라파엘로가 살던 당시 사용하던 가구들을 재현해놓았다. 그가 태어났을 곳이라 짐작되는 방에는 성모와 아기 예수 그림이 걸려 있었다.

    높고 낮은 언덕을 오르고 내리며 우르비노를 구경하다 보니 벌써 오후 7시. 라파엘로 생가 앞 작은 광장의 바에서 재즈 연주가 시작되었다. 생맥주 한 잔을 시켰더니 나무 접시에 안주거리를 가져다줬다.

    관광객들과 동네 사람들은 콘서트장 주변에 몰려들었고 어린아이들은 아예 광장 앞쪽에 일렬로 자리 잡고 음악을 감상했다. 이 얼마나 한적한 풍경인가! 광장 너머 성당의 종탑 사이로 떠오른 달을 조명 삼아 연주는 계속되었다.

     

     



    1우르바니아의 미라 박물관. 당시 죽은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2우르비노 광장에 삼삼오오 모인 할아버지들의 풍경이 정겹다.

    3마체라타 광장의 거리 연주자들.

     

     

    이튿날, 우르바니아라는 마을로 향했다.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사진에서 보는 강물 위의 두칼레 궁전과 미라 박물관이 궁금해서다. '죽은 이들의 성당'이라 불리는 미라 박물관은 성당의 제대 뒤편에 있었다.

    이곳에 전시된 미라들은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명령하에 공동묘지를 재정비하다가 우연히 땅속에서 발견된 16세기 사람들이다. 제왕 절개 수술을 받다 죽은 산모와 그 아기, 친구와 싸우다 칼에 찔려 죽은 사람, 기형아로 태어난 사람 등 현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기이한 상황에서 죽은 사람들이 특별한 곰팡이에 의해 미라의 형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한 인간의 죽음이 다른 인간에게 연구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다지 반길 만한 일은 아니지만 역사를 재해석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중요시된다. 우르바니아를 떠나 한 시간 정도 차를 몰아 중세 유적지 그라다라(Gradara) 성에 도착했다.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 성은 단테가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쓴 『신곡』의 두 주인공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의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성 안을 걸으면 아직도지옥에 떨어진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의 영혼이 떠도는 것 같은 서늘한 느낌마저 든다. 이들을 달래듯 그라다라 성에서는 각종 연극과 공연이 매일 열리며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1로레토 마을 광장의 휠체어를 미는 수녀님들.

    2로레토 성당 안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환자와 자원봉사자들.

    3우르바니아 중앙 광장에 모인 주민들.

     

     



    그라다라를 떠나 성모의 집으로 유명한 도시 로레토(Loreto)로 향했다. 성지 순례도 더운 여름에는 피하는지 뜨거운 태양열로 달궈진 광장에는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과 휠체어를 미는 수녀님들, 그리고 몇몇 관광객들밖에 없었다.

    하지만 성당 안은 제대 앞에서 기도를 바치는 순례자들과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성모의 집은 보석을 보관하는 주얼리 상자처럼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석관 내부에 모셔져 있었는데, 세 벽면으로 구성된 성가는 바위 안을 파서 만든 동굴과 같은 느낌이었다.

    이 좁은 공간에서 대여섯 명의 신자가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하염없이 울고 있는 여인의 모습도 보였다. 어떤 어려운 사정이 있어서 여기까지 성모님께 기도 드리러 왔을까? 고통 없이 지내는 것에 감사드리며 성당을 나와 마르케 주의 마지막 목적지인 마체라타(Macerata)로 향했다.

     

     

     



     

     

     

    4초승달 형태의 스페리스테리오 야외극장.

    5스페리스테리오 야외극장의 '라트라비아타' 1막 2장.

    6거울 역할을 하는 반사 패널 덕에 신비한 분위기가 연출된 야외극장 무대. '라트라비아타' 2막 5장 비올레타와 제르몽의 이중창.

     

     



    스페리스테리오 야외극장

    마체라타 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스페리스테리오 야외극장(Arena Sferisterio)은 베로나 아레나만큼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매년 7~8월 오페라 마니아들이 일부러 찾을 정도로 유럽의 매우 중요한 야외극장 중 하나다.

    1921년 피에랄베르토 콘티(Pieralberto Conti) 공작의 후원에 힘입어 '마체라타 오페라'(Macerata Opera)라는 이름으로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가 첫 공연으로 상연되었다.

    공연을 위해 1000명이 넘는 배우가 동원됐고 낙타, 말, 소 같은 동물들도 찬조 출연했다. '아이다'는 대 인기를 끌어 17회나 공연되었는데 마체라타 역사상 유례없는 7만 명의 관객이 관람했다.

    인기 여세를 몰아 이듬해 폰키엘리의 '라 조콘다'(La Gioconda)를 상연했지만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했고 스페리스테리오에는 1927년까지 공연이 열리지 않았다.

    1967년 마르케 주 출신의 카를로 페루치가 '마르케의 오페라 순회 공연단'(Circuito lirico delle Marche)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전국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마체라타의 공연 순서가 되자 이들은 스페리스테리오에서 공연할 것을 요구했는데 마체라타는 대환영하며 새로운 무대와 조명까지 만들어 주었고 페루치는 베르디의 '오셀로', 푸치니의 '나비부인' 등 대작을 연속적으로 공연하며 야외극장을 부활시켰다.

    1980년대 후반에 아레나 스페리스테리오(Arena Sferisterio) 협회가 설립되었고 1992년부터 7월과 8월에 '스페리스테리오 오페라 페스티벌'(Sferisterio Opera Festival)이라는 이름으로 서너 개의 오페라를 공연하는 마체라타 오페라(Macerata Opera)가 탄생했다.

    특이한 극장 형태 및 마이크와 스피커가 필요 없는 완벽한 음향 시설을 갖춘 스페리스테리오의 명성은 전 세계로 퍼져 갔고 루돌프 누레예프, 카를라 프라치,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몽세라 카바예, 카티아 리치아렐리, 라이나 카바이반스카 등 세계적인 성악가들과 발레리니를 줄줄이 무대에 세웠다.

    2012년 마체라타 야외극장의 프로그램은 '라보엠' '라 트라비아타' 그리고 '카르멘'이었다.[참고로 금년 프로그램은 베르디의 '나부코'(8월 2?4?7일)와 '일 트로바토레'(8월 3?10일), 벤저민 브리튼의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 '굴뚝청소부 샘'(7월 29?30?31일)과 '한여름 밤의 꿈'(8월 8일)이다)] 셋 다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일정상 하나만 골라야 했다.

    그렇다면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가 제격일 것 같아 표를 구입했다. 초생달 형태의 스페리스테리오는 약 2000명의 관객들로 꽉 찼다. 공을 튕기라고 만든 웅장한 벽 앞에 벽 길이만큼 긴 무대가 설치되었고 그 밑에 오케스트라의 연주석이 마련되었다.

    56개의 도리안 양식 기둥은 조명을 받아 아름답게 빛났고 짙푸른 색의 하늘에는 별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공연이 시작되려면 5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무대에는 의자와 테이블 몇 개만 가장자리에 놓여 있을 뿐 아무 배경도 없다.

    천장이 없으니 위에서 내리는 무대 장치를 할 수 없을 거라고는 짐작했지만 베로나의 아레나처럼 돌려서 무대를 바꾸는 사각 기둥이나 단순히 벽에 붙이는 배경 같은 것도 없다. 아마도 배경 없이 모던하게 하는가 보다 생각했다.

    조명이 모두 꺼지고 '라 트라비아타'의 서곡이 흘렀다. 그 순간 컴컴하던 무대의 바닥에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마치 거대한 용이 입을 쩍 벌리며 그 안에서 불을 뿜어내는 것같이 빛나는 부분은 점점 높아졌다.

    자세히 보니 그건 거대한 거울의 역할을 하는 반사 패널이었다. 관중석 뒤에서 무대에 쏘는 스포트라이트가 판에 반사되어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곧이어 배우들과 성악가들의 공연이 시작됐다.

    배우들의 수는 패널에 비쳐 두 배는 더 많아 보였고 거울에 반사된 움직임이 마치 벽 위를 걸어다니는 스파이더맨의 무리 같았다.

    음향 효과가 어찌나 완벽한지 성악가들과 합창단원들이 모두 마이크 없이 노래를 하는데도 소리가 멀리까지 정확하게 전달되었고 거대한 벽의 좌우에는 노랫말이 빛으로 영사되어 따로 팸플릿을 읽을 필요도 없었다.

    캐스팅도 완벽했다. '라 트라비아타'의 주인공 비올레타는 실제 프랑스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마리 뒤플레시스를 모델로 삼았는데, 사교계의 여왕이었지만 폐렴으로 죽어가는 가녀린 여인 비올레타를 위해 아름답고 날씬한 소프라노 가수 미르토 파파타나시우(Myrto Papatanasiu)를 선택했고 그녀의 가늘고 높이 올라가는 벨칸토 목소리는 관객의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공연이 한창인데 검은 옷을 입은 스태프 8명이 그림자처럼 무대 위에 올라갔다. 이들은 무대 좌우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장이 바뀌자 바닥에 깔려 있는 배경을 후다닥 잡아당겨 무대 배경을 바꿨다.

    1막에 필요한 배경을 이미 바닥에 깔아둔 상태여서 가장 위의 그림을 걷어내니 다음 장에 필요한 배경이 반사 패널 위에 순식간에 펼쳐졌다. 넋 놓고 무대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는 사이 1막이 끝났다.

    시골 별장을 배경으로 한 2막도 마찬가지였다. 바닥에 누워 노래하는 테너 가수의 거울에 비친 모습은 마치 별장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장이 바뀌며 배경은 들국화가 가득 핀 들판으로 바뀌었고 반사 패널 뒤쪽으로 슬금슬금 잡아당긴 무대 배경이 거울 벽 밑에 주름 접히며 동산을 만들어냈다. 그러다가 다시 플로라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 장소로 배경이 바뀌었고 클라이맥스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간소한 병실이 배경인 3막은 아무 무대 배경 없는 검은색 바닥에서 진행됐다. 다만 이전 막들과는 달리 조명을 오른쪽 끝에서 길게 비춰 죽음을 앞둔 우울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관객의 시선은 온전히 조명을 받은 주인공들에게 집중되었다.

    비올레타의 죽음과 함께 오페라 공연은 막을 내렸고 관중은 감동의 물결에 휩쓸려 스페리스테리오를 떠났다.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는 스페리스테리오의 불 꺼진 무대에 여름 하늘의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김성희씨는_

    동양화를 전공한 후 1995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밀라노 'Istituto Europeo di Design'의 주얼리 디자인과를 수석 졸업했다. 세계 유명 주얼리 회사의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국제 공모전에서 8차례 수상한 바 있는 실력파. 문화와 예술을 좇아 세계를 일주하는 자유기고가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더 주얼』 『모로코의 이방인』 등이 있다

     



    기획_안지선 사진_김성희

     

     



    여성중앙 2013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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