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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적 사고가 이미지로 맺혀지다
    이.탈.리.아 역사/중세역사 medioevo 2020. 5. 10. 14:14

     

    죽음을 형상화하는 일은 중세말의 큰 특징을 이루는 생각을 이미지로 결정화하는 한 예를 보여준다. 생각은 본질상 구체적인 표현을 지향하게 되어있고 금괴는 자잘한 동전으로 나뉘게 마련이다. 그 시대는 신성한 것이라면 뭐든지 재현하고 싶어하며, 종교적인 것들에 일정한 형상화를 부여함으로써 조각처럼 강하게 부각시켜 정신에 새겨지게 하려는 거역할 수 없는 욕구를 느낀다. 이처럼 모든 것을 구체적이고 물질적으로 재현하려는 경향은 결국 종교적 사고를 과도하게 밖으로 드러내고 물질 속에 고정시키는 위험을 가져온다. 

    중세의 기독교 생활은 그 모든 발현 속에 종교적인 표상들로 가득차 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아무 사물이나 행동을 신앙과 관련 지으려 들며 또 제아무리 평범한 것이라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이같은 포화상태의 분위기에서는 종교적 긴장과 초월적 사상, 숭고함에로의 비상 등이 항상 있을 수는 없다. 이것들이 없으면, 종교의식을 자극하게 되어 있는 모든 것은 세속적인 진부함으로 전락하게 되고, 소위 저 세상을 주장하는, 불쾌할 정도로 눈에 거슬리는 심한 물질주의로 타락하게 된다...

    15세기의 신앙은 이처럼 형식 속에 생각되고 그에 생기를 주는 심정적 깊이와는 별도로 우후죽순처럼 혹처럼 번식한다. 종교적 실행과 해석의 양적 증가는 결국 질적 약화만을 급속도로 진전시키며, 그것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신학자들에게는 가히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상 15세기의 개혁 정신은 불신이나 새로운 의례 행위들의 미신성을 우려했다기보다 오히려 이 신앙의 과잉 표출을 걱정한 것이었다. 온후한 신의 은총을 재현한 표지들은 점점 더 수요가 급증했다. 각종 성사들 곁에 강복식들이 만연했고 성유골로부터 부적에 이르기까지 찾지 않는 것이 없었다...

    끊임없이 무한은 유한으로 환원되고 신비는 원자들로 나뉘어진다. 모든 성스러운 신비에, 마치 선체에 조개가 달라붙듯 그것을 타락케 하는 추가의 믿음층들이 덧붙여진다. 성체 자체도 물질적인 미신들로 변질된다. 일례로 사람들은 미사를 들은 날에는 장님이 되거나 뇌일혈에 걸릴 일이 없고, 미사에 참석하는 동안에는 늙지도 않는다고 믿었다. 교회는 하나님이 그렇게 자주 이 땅으로 모셔와지지 않는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그리스도의 변화산상에서 지금 그들이 하늘에서 보는 것만큼 분명하게 신성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단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잔 다르크를 모방한 소녀들 가운데 하나가 긴 옷에 붉은 망토를 입은 하나님을 보았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순전한 신성모독이다. 그러나 교회는 민중들의 상상력에 매우 풍부한 자료를 제공했고, 민중이 신학에 의해 규정된 미묘한 것들을 구분할 수 없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나님을 일상적인 삶 속에서 다룬 그 친숙성은 한편으로는 깊고도 순진한 신앙심의 표시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불경을 초래하는 것인데 언제나 무한과의 정신적 접촉이 결여될 때 그러하다. 호기심은 비록 순진한 것일지라도 신성 모독에 이르기 마련이다. 특별히 이런 위험에 처한 것은 가장 깊은 신비에 속하는 성체이다. 중세에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성체가 가톨릭교 신앙속에서 종교적 감동의 가장 중요한 중심점을 이룬다. 하지만 중세에는 성스러운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매우 대담하여, 그 대담성은 우리가 볼 땐 매우 신성 모독적으로 보일 수 있는 말과 습관에까지 이른다...

    삶 전체가 그토록 종교로 가득차 있었고, 따라서 정신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사이의 구분이 매순간 시야에서 사라질 위험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일상 생활의 모든 것이 성화될 수 있었던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일상 생활과 분리할 수 없이 융해되어 있던 모든 신성한 것들이 낮추어지고 진부하게 되었다...

    교회에 가는 일은 사회 생활에 중요한 한 요소를 이룬다. 사람들은 거기서 서로 으스대며 신분과 위엄과 예절의 경쟁을 벌인다...신앙심과 일상 생활이 파렴치할 정도로 뒤섞이는 이 모든 세속화 속에는 진짜 신성 모독을 위한 것보다는 순진한 친숙함이 더 많다. 단지 종교적 감정이 생활 전반에 결쳐 침투되어 있고, 신앙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만이 이 같은 과도함과 변질을 안다...사람들은 점점 경쟁하듯 독설적이고 미공개된 신성 모독어들을 만들어낸다...

    다수의 순진한 종교적 의식은 신앙 문제에 있어서 지적인 증거들을 요하지 않았다. 단지 신성한 것들을 눈에 보이는 이미지들로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진리를 밝혀주는 데 족했다. 삼위일체와 지옥의 타오르는 유황불과 수많은 성자들의 조각 혹은 채색된 표상들과 그것들의 사실성에 대한 믿음과의 사이에는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 모든 형상화는 즉각적으로 신앙의 신조가 되었다. 뚜렷한 윤곽들과 생생한 색채 덕택에 그 형상화들은 교회가 요구할 수 있었던 모든 사실성과 더불어 그리고 그 이상의 무엇과 더불어 정신 속에 새겨질 수 있었다. 

    그런데 신앙이 교리의 물질적 표현과 너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때, 그 신앙은 자연과 종교의 서로 다른 요소들이 갖는 성스러움의 정도 사이에 더 이상 아무런 질적 구분을 할 수 없는 위험에 처한다. 이미지만으로는 신자들에게 하나님께는 찬미를 드려야 한고 성인들에게는 존경심만이 허용되어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가 어렵다. 이미지가 갖는 심리적 기능은 사실성에 대한 생생한 확신과 깊은 존경심을 우러나게 하는 데 국한된다. 따라서 교회에는 이미지들이 갖는 의미와 이미지들 각각에 부여할 수 있는 중요도를 정의하는 일이 돌아왔다. 교회의 관점은 순수하고 높았다. 개인의 사후 존속이라는 교리에 의해 성자들을 숭배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고, 아무런 반대도 일으키지 않았다. "신에게의 모방과 돌아감"에 의해 그들에게는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일이 허용된다. 아울러 사람들은 그 같은 숭배가 신을 대상으로만 한다면, 이미지들과 성유골들, 성자들, 신에게 바쳐진 물건들을 숭배할 수가 있다. 성인과 복자 사이의 기술적인 구분, 공식적인 성인품에 의한 성덕의 조직화는 비록 그것이 불안한 형식주의이긴 했지만 기독교주의와 대치되지는 않았다...

     

    Saint Stephen. ca XV. Carlo Crivelli 

     

    성인 숭배의 정신적인 요소는 조각상과 성화들의 형태 및 색채 속에 매우 완벽하게 결정화되어서, 미학적인 감정은 종교적 사고를 말소시킬 위험에까지 이르렀다. 경건한 표정들과 사실적인 기법에 의해 그토록 경탄스럽게 부여된 황금 및 의복들의 광채는 강력한 미학적인 인상을 창출했고, 그 미학적인 인상은 교리적인 사색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 이 영광스러운 존재들을 향해, 신앙심의 토로는 교회에 의해 정해진 한계를 생각지 않고 뜨겁게 타올랐다. 민중의 정신 속에서 성인들은 마치 신들처럼 살아 있었다. 그러므로 그 당시의 경건주의자들이 성인 숭배에서 민중 신앙의 심각한 위험을 본 것은 하등 놀랄 일이 아니다...

    중세말경 수호천사 숭배의 열기 속에서 성자전의 잡다한 패거리에 대한 무의식적 반동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생생한 신앙이 성인 숭배 속에 너무 결정화되어버려, 사람들은 보다 정신적인 존재와 초자연적인 보호의 필요를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호천사에게로 향하면서, 모호하고 알 수 없는 형상에서 신앙은 초자연 밑 신비와의 접촉을 재발견한다. 그리하여 수호천사 숭배를 계속 권장하는 사람은 신앙의 순수성을 역설하는 열정가 제르송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는 일단의 자질구레한 저속한 것들 속에 신앙을 매몰시킬 위험이 있는 호기심과 맞서야 했다. 그리고 다소 미개척 분야에 있던 천사들에 관하여 여러 가지 미묘한 문제들이 밀어닥쳤다. 천사들은 언젠가 우리에게서 떠나갈까? 수호천사들은 우리가 구원받을지 못 받을지에 대해 미리 알고 있을까? 그리스도도 수호천사를 갖고 있을까? 악마들이 우리를 악으로 인도하듯 천사들은 우리를 선으로 인도할까? 제르송은 이런 미묘한 문제들은 신학자들에게 맡겨두고 신자들은 단지 단순하고 성스러운 헌신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결론 짓는다. 제르송 이후 백년 뒤 종교개혁이 성인 숭배를 공격하게 되었을 깨, 그것은 이미 미약한 저항밖에는 않게 되었다. 반면 마법사들과 악마에 대한 신앙은 여전히 지속 되었고 신학자들조차도 그것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성인 숭배가 이미 '죽은 존재' 가 되었기 때문이다. 성인 숭배에 관련된 모든 것은 성화와 전설, 기도에 의해 완벽히 표현되었다. 따라서 성인 숭배는 어떠한 신성한 공포심도 일으킬 수 없었다. 성인 숭배는 상상할 수 없거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 속에 뿌리박고 있지 않은 반면, 악마에 관한 것은 매우 생생한 그 무엇을 갖고 있었다.

    성인 숭배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반종교개혁은 첫번째 작업으로 그것의 가지를 쳐야 했다. 민중의 상상력이 제멋대로 뻗쳐오르는 것을 잘라내기 위해 반종교개혁은 보다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게 된다..

     

    출처> 중세의 가을 / 호이징가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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