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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기 로마 - 왕들의 업적 lll
    이.탈.리.아 역사/고대역사 storia antica 2010. 6. 2. 20:06

    제 3 대왕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lat. Tullus Hostilius, Ital. Tullo Ostilio ; ? – 641 a.C.)
    재위기간 BC 673 – 642







    로물루스 시절 사비니인들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Hostus Hostilius 의 손자였던
    툴리오 오스틸로(이탈리아어)는 로물루스의 복제판으로 평가되곤 한다.
    두 사람 모두 목자들 사이에서 선출되었고, 피데네 Fidene와 베이오 Veio와의 전쟁을 계속했으며, 도시민을 증가시키는데 기여했고
    군사력 증강과 훈련에 주력했기 때문이다.[1]
     



    The Victory of Tullus Hostilius over the Forces of Veii and Fidenae

    Giuseppe Cesari



    누마의 평화스런 치세가 지루했다는듯이 툴루스가 왕위에 있는 동안, 로마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누마가 로마의 내부의 기초를 충실히 다져 놓은 기반으로 툴루스는 라틴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합니다.
    툴루스는 맨 처음 로마왕국의 모국인 알바롱가(Alba Longa)를 표적으로 삼습니다.
    툴루스 이전까지는  로마 북부에 위치한 에쿠리아족에 대항하기 위해서 평화를 유지하던 알바롱가의 접경 지역에 사는
    농민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는데 그 결과 발생한 약탈 변상을 알바롱가가 거부하는 것을 계기로 전쟁이 시작됩니다.

    80년 밖에 안된 로마에 비해서 알바롱가는 4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립국이었기 때문에 간단히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였고,

    강국인 에트루리아가 있었기 때문에 툴루스 왕은 각 나라의 대표끼리 시합을 해서 이기는 나라가 진나라를 다스리자는 제의를 했고

    알바롱가는 승낙하게 됩니다.  로마 측에선 호라티우스 가문의 세 쌍둥이가 알바롱가 측에선 클리아티우스 가문의 세 쌍둥이를

    출전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두 어머니가 친자매인 사촌지간이었습니다. 이들은 양군 진영 앞에서 신호가 떨어지자 마자 전투를 개시합니다.

    먼저 로마측의 전사 2명이 쓰러집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은 겁을 먹어 도망가게 되는데 도망 가다가 뒤를 돌아본 로마의 전사 호라티우스는

    자신을 쫒아오는 알바롱가의 세 쌍둥이들 사이가 꽤 떨어져 있음을 알아챕니다. 호라티우스는  가장 먼저 쫒아온 알바롱가의 전사를 쓰러뜨립니다.

    그 후 뒤 쫒아온 두 번째 적도 쓰러 뜨리고 마지막 한 명 마저 이기게 됩니다.[2]




    The Oath of the Horatii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Jacques-Louis DAVID,1784
    Oil on canvas, 330 x 425 cm
      Louvre, Paris



    이렇게 6명의 전투는 끝났지만 알바롱가로서는 한 번의 전투로 허무하게 로마의 밑으로 들어가야 하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기에 로마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가까운 부족들을 선동해서 로마와 싸우게 됩니다. 알바롱가가 주변 부족들을 선동한 것은 좋았으나, 태도를 명확히 하지 않은채 전황을 주시하는
    태도를 취하는 사이 로마는 주변 부족들을 하나씩 쓰러트립니다. 알바롱가는 제대로 로마와 싸워 보지도 못하고 로마에게 패하게 됩니다.

    툴루스는 로마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알바롱가의 왕  Mezio Fufezio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그의 다리를 두 필의 말에 하나씩 묶어, 말에게 채찍질을 가해

    반대반향으로 달리게 하여 능지처참합니다. 이 것이 로마의 최초의 능지처참이었다고 합니다 알바롱가 시는 철저히 파괴 되었고, 알바롱가의 백성들은 모두

    첼리오 언덕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노예로서가 아니라 로마 시민으로서 로마에서 살게 하였습니다.

    툴루스는 이들에게 로마의 시민권을 줌으로서 로마의 전력이 더 한증 증강되는 효과를 봅니다.[2]



    Curia Hostillia



    그 후 툴루스는  광장에서 열리던 원로원 회의을 위해 쿠리아 호스틸리아(Curia Hostillia)로 불리는 원로원 건물을 건축하였고,

    Fidene와 Veio를 차례로 정복하였으나

    로마인들 사이에 전염병이 퍼지고, 역병에 전염된 툴루스는 쥬피터에게 자신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원했으나

    기원 도중에 하늘에서 내려온 벼락을 맞아 32년간 치세로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2]










    [1] 위키백과 이탈리아
    [2] 네이트 역사학 지식인 - maymay70

    출처> 프리츠 M. 하이켈하임, 세드릭 A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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