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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기 로마 - 왕들의 업적 l
    이.탈.리.아 역사/고대역사 storia antica 2010. 5. 25. 14:03



    제 1 대  : 로물루스 Romulus ( 로물로 Romulo )




    1대왕 로물루스는 로마의 시조라고 불리우는 신화적 인물인 만큼 후대 예술가들은 로물루스를 주제로 하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Faustolo trova la lupa con i gemelli
    Rubens, 카피톨리니 박물관




    군신 마르스와 무녀 레아 실비아 사이에서 태어나
    작은 외조부 아물리우스에 의해 쌍동이 형제 레무스와 함께 버려져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나다 양치기 - 파우스툴로스에게 발견되는 장면이다.


    양치기에 의해 팔라티노 언덕에서 자라난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산적생활을 하다가  어느날 레무스가 아물리우스의 가축을 약탈했다는 죄목으로 잡혀간다.
    이 과정에서 그들의 출생과 가문이 알려지게 되고
    로물루스는 동료들과 함께 알바 롱가
    Alba Longa 에서 아물리우스를 죽이고 외조부 누미토르를 왕으로 복귀시킨다.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도시를 건설하기로 했는데 의견이 맞지않아  로물루스는 팔라티누스 언덕에, 레무스는 아벤티누스 언덕위에 도시를 세우게 된다.

    로물루스는 레무스가 도시의 신성한 경계인 도랑을 넘어왔다는 이유로 레무스를 죽이고 로마의 단독 지배자가 되는데
    이 날이 기원전 753년 4월 21일이라고 한다.[1]
     


    Romulus, Victor over Acron, hauls the rich booty to the temple of Jupiter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로물루스가 왕이 된 후 가장 처음 취한 행동들 중에 하나는 Tito Tazio왕이 이끄는 사비니족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사비니 여인들의 약탈' 전설이 탄생하는데, 두 부족간의 동맹은 안티 에트루리아 기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단시간이었으나 로마에 두 명의 왕이 존재했고, 부족간의 통합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로마인을 세 트리부스 tribù 로 나누는 것이었는데:  라틴족으로 이루어진 Ramnes, 사비니인들로 이루어진 Tities, 에트루리아인들의 Luceres 이었다.
    트리부스는 열개의 쿠리아들로 이루어졌으며,  민회 comizi curiati에 선발된 쿠리아는 시민의 생활에서  중요한  결정들에 참여했다.
    정부 내에서 왕을 선출하고 자문역할을 하는 원로원은
    “Patres” 라고 불리우던 중요한 가문들의 수장 200명으로 구성되었다.

    모든 쿠리아는 군대에 켄투리아(100명의 보병), 데쿠리아(10명의 기병)을 제공해야 했다; 따라서 로마의 군대는 애초에는 보병 3000, 기병 300 명이
    왕의 휘하에 조직되었다.
    사비니 왕 Tito Tazio가 일찌감치 죽으면서 로물루스가 로마의 유일한 왕이 된다.
    시민 조직들을 한 곳에 모을 수 있는 포룸 il Foro 도 만들었는데, 그것은 캄피돌리오의 늪지를 개간한 평원에 자리하고 있었다.
    로물루스는 로마를 두 개의 계급으로 나눈다, 중요한 가문들의 후손인 귀족 “patrizi, lat.patricius”과  귀족이 아닌 모든 민중을 대표하는 평민“plebei, lat.plebs, plebis ”.
    따라서 로마의 첫 계급 구분은 재산이 아닌 가문의 기원에 따라 나누어 진 것이었다.
    아무런 정치적 권리가 없었던 평민이 스스로를 보호할 유일한 방법은 귀족의 피호인
    “clienti”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봉사를 제공하는 대신 신변을 보호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로물루스는 정치적, 종교적 수장이었으나, 에트루리아의 베이오와 라틴의 피데네를 정복하여 로마에 새로운 영토를 추가시킴으로써
    군사적으로도 용맹하고 유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로물루스는 폭우와 일식이 있던 날 갑자기 사라졌다고 하는데, 이 에피소드가 로물루스를 신격화하고, 군신 마르스의 후손이라는 증거라고 해석되었다.
    이 해석은 왕의 친구인 줄리오 프로쿨로Giulio Proculo라는 귀족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원로원 의원들이 결부된 시해사건으로 의심하게 만들었다.
    로물루스가 사라진 것은 55세 때의 일로서, 재위 37년만에 일어난 일이었다.[2]


    기원전 753년 경의 로마





    포로 로마노에 있는 로물루스 신전






    [1] Ab Urbe Condita Libri , 고대역사가 Titus Livius (59 BC – AD 17)
    [2] http://www.romaspqr.it


    내용발췌> 로마사 - 프리츠 M. 하이켈하임, 세드릭 A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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