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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알레고리 The Genius of Victory미.켈.란.젤.로/조 각 scultura 2020. 9. 22. 10:32
<미켈란젤로의 생애> 서문 / 로맹 롤랑
피렌체 국립 미술관에는 미켈란젤로가 '승리자'라고 부른 대리석상이 있다.
체격이 훌륭하고, 굽실굽실한 머리카락이 나지막한 이마에 덮여있는 나체의 청년이 수염이 덥수룩한 포로의 등을 한 쪽 무릎으로 누르고 우뚝 서 있다. 포로는 몸을 웅크리고 머리만 앞으로 불쑥 내밀고 있다.
그러나 승리자는 그 포로를 내려다보지 않으며, 내려치려던 손도 멈추고, 그 입가에는 쓰디쓴 표정이 감돌고, 눈길을 돌리고 있다.
그는 이미 승리를 원치 않는다. 오히려 싫어진 것이다.
그는 싸워 이겼다. 그러나 또한 진 것이다.
이 '비창한 회의'의 상, 이 '날개 찢겨진 승리'는 미켈란젤로의 전 작품 가운데 오직 하나, 그가 죽을 때까지 아틀리에에 소장했던 것이고, 마음의 벗이었던 다니엘레 다 볼테라의 영구대를 장식하는데 쓰려던 작품이다. 이 작품이야말로 미켈란젤로 자신이며, 전 생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고뇌는 여러가지 양상을 보인다. 어느 때는 빈곤・ 병고・불우한 운명・인간의 악의 등, 도저히 저항하기 어려운 운명, 때로는 인간의 존재 자체 속에 그 원천이 있기도 하다. 이 경우에도 고뇌는 마찬가지로 쓰라리고 피하기 어렵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선택한 것도 아니며, 스스로 태어나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또한 지금과 같은 자신이 되고자 원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후자의 괴로움이 미켈란젤로의 고뇌였다. 그는 능력도 있고, 싸워 이길 수 있는 희귀한 행운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기에 그는 승리하였다. 그러나 어떻게 된 것일까 그는 승리를 원치 않았다. 그가 바라던 것을 거기서 찾아낼 수 없었다 - 햄릿의 비극, 비창한 천재와 그렇지 않은 의지와의 대결, 넘치는 정열과 굳이 욕심부리지 않는 의지와의 모순
정신의 불안은 위대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존재와 사물과의 조화, 생명과 그의 법칙 사이의 조화가 전혀 결여된 것은 위대한 사람들의 경우에도 그의 위대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약함에서 오는 것이다 - 왜 이 인간의 약함을 감추려고 하는 것일까? 약한 자는 사랑할 가치가 없는 것일까? - 약한 인간일수록 사랑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약한 인간이야말로 더욱 사랑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나는 친근감도 없는 영웅을 내세우고 싶지 않다. 나는 인생의 비참함과 마음이 가난함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비겁한 이상주의자를 싫어한다. 거창한 말로 기만적인 환상에 마음이 쏠리기 쉬운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영웅적 허언은 비겁한 것이라고.
이 세상에 영웅적인 정신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 그리고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여기에서 운명의 비극으로 여기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의 고뇌의 모습을 보여 주며, 그 고뇌는 인간 존재의 깊은 곳으로부터 발하여 쉴 새 없이 그 존재를 좀먹고, 그것을 멸망에 이르기까지 떠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10세기 이전부터 서양을 고뇌와 신앙의 외침으로 가득 차게 하였다. 저 위대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하나가 기독교인들이었다.
몇 세기를 지난 미래의 어느 날엔가, 어느 때인가는 그 시대 사람들은 말레보르제 연못가에 서있는 단테처럼 찬탄과 공포와 연민이 얽힌 심정으로 이미 사라진 인류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출처> 미켈란젤로의 생애 / 로맹 롤랑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