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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 통치자 가문들 - 나폴리의 아라곤
    이.탈.리.아 역사/중세역사 medioevo 2020. 1. 29. 08:35

     

    나폴리의 아라곤 가문

     아라곤 왕조는 그보다 중요한 다른 왕조들과 분리해서 관찰해야 한다. 노르만 시대 이후 이탈리아에서 남작들의 장원 지배 형태로 지속되어온 봉건제도는 이 나라를 독특한 색깔로 물들였다. 남쪽의 교황국과 그 밖의 극소수 지역을 뺀 나머지 이탈리아 지역에서는 더 단순한 토지소유제가 통용되었고, 어떠한 세습 권한도 허용되지 않았다. 1435년 이후로 나폴리를 장악한 위대한 알폰소는 자신의 실질적인 혹은 이름뿐인 후손과는 다른 종류의 인물이었다. 전체적으로 빛나는 모습이었으나 국민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을 대단히 좋아했고, 심지어 나이가 든 뒤 루크레찌아 달라냐를 향한 정열을 놓고도 욕을 먹기는커녕 경탄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낭비하는 악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당연한 결과를 불러왔다. 뻔뻔스러운 세무 관리들은 거의 못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파산한 왕이 그들에게서 재산을 빼앗았다. 십자군을 일으키겠다는 핑계로 성직자에게도 세금을 부과했고 아브루찌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의 몫까지 계속해서 세금을 내야 했다.

     

     

    Alfonso the Magnanimous  ( 1396 – 1458 ) 

     

     그런 상황에서 알폰소는 고귀한 손님들을 위해 자기 시대 가장 화려한 주인 노릇을 했고, 누구에게나 - 심지어 적에게도 - 적선하는 것을 좋아했다. 문학적인 수고에 대해서는 아예 척도가 없었다. 그래서 포지오는 고대 그리스 작가 크세노폰의 정치소설 키로페디아를 라틴어로 번역한 대가로 금화 5백 개를 받았다. 

     

     

     그의 뒤를 이은 페란테는 알폰소가 에스파냐 여자와의 사이에서 얻은 서자라고 알려졌지만 어쩌면 발렌시아의 무어 사람 소생이었을 것이다. 페란테를 어둡고 잔인하게 만든 것이 단순히 혈통 때문이었는지는 모르나 당시 군주들 중에 가장 무시무시한 사람이었다. 쉬지 않고 활동하고, 가장 강력한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고 전혀 방탕하지 않았다. 화해를 모르는 기억력과 위장술을 지녔는데 그는 이 모든 힘을 적을 파괴하는 데 집중시켰다. 남작들이 자기와 인척관계이면서 외부의 적들과도 결합되어 있는 것에 몹시 기분이 상한 그는 극단적인 일을 극히 일상적인 일처럼 해치웠다. 내부의 싸움과 외부의 전쟁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이용했던 회교도의 방법을 다시 사용하였다. 오직 정부만이 곡식과 기름을 거래했다. 페란테는 무역을 모두 상인 프란체스코 코폴라의 손에 맡겼다.

     

     

     

    Ferrante I(Ferdinando I)  1424 - 1494

     

     

     코폴라는 왕과 이익을 나누었고, 해운업자를 모두 고용하였다. 나머지 일은 강제 차입, 처형, 몰수, 성직과 성물 매매, 성직자 단체에 대한 위협 등을 동원해서 처리했다. 페란테는 원래 잔혹하게 행하던 사냥 말고도 적을 산채로 경비가 잘 된 감방에 가두어 두는 것과 죄수를 죽여 미라 처리를 한 다음 고인이 살아서 즐겨 입던 옷을 입혀 가까이 놓아두었다. 그는 심복들과 죄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킥킥거렸다. 미라 수집은 처음부터 비밀이 아니었다. 희생자들은 거의 남자들로 속임수로 혹은 왕의 식탁에서 체포되었다.

     

     

     

    Triumph of Ferdinand of Aragon,

     

     페란테의 큰아들 알폰소는 아버지의 말년에 일종의 공동 통치를 했다. 그는 솔직하다는 점에서 아버지를 앞섰고, 종교적 관습에 대한 경멸감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던 거칠고 잔인한 방탕아였다. 그들이 당시의 예술과 교양에서 취했던 것은 오로지 사치 아니면 겉모습뿐이었다.

    이 잡종 가문의 말로는 명백하게 혈통의 결함을 드러낸다. 페란테는 마음의 걱정과 고통으로 죽었다. 알폰소는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착한 동생 페데리고에게 배신 죄를 덮어 씌우고 가장 품위 없는 방식으로 그를 모욕했다. 그때까지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능한 장수 중 하나로 알려졌던 페데리고는 마침내 아무 대책 없이 시칠리아로 도망치고, 어린 아들 페란테를 프랑스인에게 잡히도록 버려두었다. 이 집안처럼 통치했던 왕조가 그 자손과 후손들이 왕조를 다시 회복하기를 바란다면 적어도 자신들의 목숨 값을 비싸게 받았어야 했다.

     

     

     

     

     

    출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위키백과 인물소개:

    알폰소 아라곤 https://ko.wikipedia.org/wiki/알리폰소_5세

    페란테 아라곤 https://ko.wikipedia.org/wiki/페르디난도_1세_(나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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