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우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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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II 세와 미켈란젤로미.켈.란.젤.로/생 애 vita 2020. 11. 16. 15:12
1505년 3월, 미켈란젤로는 율리우스 II 세에 의해 로마에 초청되었다. 이때부터 그의 생애의 영웅적인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 교황과 예술가는 두 사람이 모두 장대하고 격렬한 기질이었으므로 서로 충돌할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의기충천하는 인물들이었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항상 거대한 계획이 용솟음쳤다. 율리우스 2세는 고대에 필적하는 자신의 분묘 작업을 미켈란젤로에게 맡기려고 생각했고, 이 착상에 열광한 미켈란젤로는 40개 이상의 조각상을 포함하는 거대한 건조물을 계획하였다. 감격한 교황은 필요한 대리석을 확보하기 위해 미켈란젤로를 카라라로 파견하였다. 미켈란젤로는 8개월 이상을 이 산중에서 보냈다. 격렬한 흥분 속에서 어느 날, '말을 타고 이 지역을 돌아보는 가운데 해안 쪽에 우뚝 솟은 산봉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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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II세이.탈.리.아 역사/이탈리아가낳은인물 titani 2020. 2. 21. 22:23
호색하고 권력욕의 화신이었던 알렉산더 6세의 뒤를 이어 교황으로 선출된 율리우스 2세(Julius II 1443~1513)는 전쟁을 밥보다 좋아하는 정력적인 활동가로, 제 2의 르네상스적 교황이었다. 그래서 전사교황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전쟁 이외에 학문과 예술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는 어린 시절부터 삼촌인 교황을 보조하는 복사로 봉사하였고, 삼촌이 소속된 프란치스코회에서 교육을 받았다. 프란체스코 델라 로베레가 교황 식스토 4세로 선출되면서 조카인 줄리아노(율리우스)를 추기경에 서임함과 동시에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을 명의본당으로 하사하였다. 교황인 삼촌을 배경 삼아 줄리아노는 교회 안에 매우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으며, 여덟 개 이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