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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토와 트레첸또(1300년대)이.탈.리.아 문화/미 술 belle arti 2020. 3. 1. 12:15
지오토는 이탈리아에서 자연주의 최초의 거장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저술가 빌라니와 보카치오, 그리고 바자리까지도 지오토의 충실한 자연묘사가 동시대인에게 끼친 엄청난 영향을 강조하고 있으며, 지오토의 예술양식을 그가 등장했을 당시 아직도 지배적이던 비잔틴풍 예술의 정직성 및 인위성과 대조하고 있는데, 이러한 생각은 모두 충분한 근거를 지닌다. 다만 우리는 지오토의 표현방법에서 볼 수 있는 명료성, 단순성, 논리성, 정확성을 후에 나타나는 더욱 세부적이고 유희적인 자연주의와 비교하는 데에만 익숙해 있을 뿐 지오토 이전에는 회화적 수단으로 전혀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그가 비로소 볼 수 있게 해주고 이야기할 수 있게 해준, 사물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엄청난 회화기법상의 진보는 간과하고 있다. 우리는 그를 위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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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가의 지배와 자본주의의 발전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3. 1. 09:50
메디치가의 지배 이러한 민중정부가 진압되고 난 뒤의 피렌체는 치옴피 반란 이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야 할 입장에 서게 되었다. 다시 지배권을 장악한 것은 이른바 포폴로 그라쏘popolo grasso(대시민)들이었다. 종전과 비교해서 한가지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정치권력을 전체 시민계급이 아니라 몇몇 부유한 집안이 행사하고 또한 그들이 장악한 권력이 더이상 심각하게 위협을 받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한 세기 동안은 이들 부호집단은 그들이 위험하다고 느끼고 혁명적 운동이라고 간주되는 일체의 정치적 운동은 지체없이, 그것도 크게 힘들이지 않고 진압하였다. 알베르티가, 카포니가, 우자노가, 알비찌가와 이들 가문의 추종자들이 비교적 단기간에 걸친 지배가 끝난 후에 드디어 권력을 잡은 것이 메디치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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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극우 마테오 살비니 Matteo Salvini한이 관계/정치 경제 사회 2020. 3. 1. 09:09
우선 마테오 살비니가 당대표인 북부동맹에 대해 알아보자. Lega Nord(현재의 명칭은 북부Nord를 떼어버린 la lega) 1991년 움베르토 보시(Umberto Bossi)가 창설한 우익 포퓰리즘 정당으로, 이탈리아 북부를 남부와 분리하여 독립하자고 주장했고, 본부는 밀라노에 있다. 1990년대 Bossi의 슬로건은 "왜 우리가 뼈빠지게 벌어 게으른 남부 놈들을 먹여 살리는가!" 2018년 3월 새 당대표가 된 마테오 살비니가 분리독립 노선파를 소수로 밀어낸 후 연방제, 반EU, 반이민 노선 전국 정당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2018 총선 결과 북부동맹은 제3당이 되고 살비니도 상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비례대표로 17.37%를 득표해 하원에서는 오성운동 다음인 2위의 의석을, 상원에서는 오성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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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말기의 사회배경이.탈.리.아 역사/중세역사 medioevo 2020. 2. 29. 11:21
꽈뜨로첸또(1400년대)의 시민적 예술과 궁정적 예술의 감상자층 르네상스의 예술감상자층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도시의 시민계급과 왕후들이 살던 궁정사회이다. 이 두 그룹이 대표하는 예술적 취향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긴 하지만, 많은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한편으로는 고딕의 궁정적 요소들이 부르즈와 예술에 아직도 계속 영향을 마치고 있고, 신분이 낮은 계급에게도 그 매력을 전적으로 상실한 적이 없던 기사적 생활양식이 다시 부활하게 되자 시민계급은 궁정 취향을 가진 예술형식을 새로이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궁정의 귀족들도 시민계급의 사실주의와 합리주의에 담을 쌓을 수는 없었으므로, 그들 역시 도시생활에 근원을 두고 발전하기 시작하는 새로운 세계관과 예술관을 정립하는 데 하나의 역할을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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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와 르네상스의 연속성 - 사회학적 관점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2. 29. 10:10
이탈리아가 경제적 합리주의로 유럽 자본주의의 발전을 서두를 장식했던 것처럼 예술에서도 이탈리아 예술은 통일성의 원리에 의해서 유럽 르네상스와 고전주의 발전의 시초를 이루었다. 그 이유는 르네상스 전성기나 매너리즘이 전유럽적 운동이었던 것과 달리 초기 르네상스는 본질적으로 이탈리아의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예술문화가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현하게 된 것은 이 나라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서구의 여러 나라보다 한발짝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즉 경제의 부흥이 여기서 시작되었고, 재정과 운수 기술상의 이점 때문에 십자군 원정도 여기서 조직되었으며 중세 길드조직의 이상에 맞서서 새로운 자유경쟁 경제가 발달되고 유럽 최초로 은행제도가 생긴 곳도 이탈리아였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서는 북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봉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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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식과잉의 인간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2. 28. 17:46
유럽의 중세는 필요-충족을 목적으로 한 사회 원리가 기본적으로 작동하던 시대였다. 9세기경까지는 일반인은 물론 영주들조차도 사치의 맛을 잘 몰랐다. 영주들은 수공업자나 농민들한테서 거둔 각종의 공납품을 영내의 각지에 쌓아놓고 부하나 하인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쌓인 공납품이 없어질 때까지 먹고 놀다가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그들이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주로 성의 크기, 부하나 하인의 숫자, 식량이 많은 것 등이었고, 그밖에 보물이니 좋은 곳이니 좋은 식사니 하는 것은 아직 자랑할만한 수준도 아니었다. 유럽 사회의 내용은 10세기 이후 변화하기 시작했다. 도시와 상업이 발달하고, 학문과 예술이 진보하고, 생활 태도에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런 의미에서, 르네상스는 인간 생활 의식의, 즉 인간 정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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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명성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2. 28. 09:25
지금까지 서술한 개인의 발전과 잘 어울리는, 새로운 종류의 인정받는 방식이 생겨났으니 곧 현대적인 명성이다. 14세기 명성 개념 이탈리아 바깥에서는 여러 계급들이 각기 자기 계급에 어울리는 중세적인 계급 명예심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음유시인과 연가시인으로서의 명성은 오로지 기사 계급에만 국한된 것이었다. 그에 반해서 이탈리아에서는 전제군주 아래서나 아니면 민주주의 체계에서 각 계급이 평등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것은 이탈리아 문학과 라틴어 문학에 기반을 둔 보편적인 사회의 첫 흔적들이다. 이러한 토양에서 비로소 저 새로운 삶의 요소인 명성이 싹틀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열심히 탐구하였던 로마시대의 시인들이, 명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고, 거기 탐닉하였다는 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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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이.탈.리.아 역사/이탈리아가낳은인물 titani 2020. 2. 23. 21:01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 - 1472 «Ci è un uomo che per la sua universalità parrebbe volesse abbracciarlo tutto, dico Leon Battista Alberti, pittore, architetto, poeta, erudito, filosofo e letterato» - Francesco de Sanctis 여기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 같은 남자가 있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화가, 조각가, 시인, 지성인, 철학자, 문학가 - 데 상티스 레온 바티스타는 1404년 제노바에서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이자 은행가였던 로렌조 알베르티와(1388년 정치적인 이유로 토스카나에서 추방되었다) 제노바 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