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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문화의 엘리트층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3. 26. 18:24
르네상스는 소상인이나 수공업자의 문화도 아니었고 큰 교양이 없는 시민계급의 문화도 아니었다. 르네상스는 오히려 다른 계층을 완전히 배제하면서 문화를 독점하려고 했던 비민중적이고 라틴화도니 교양 엘리트의 문화였다. 르네상스 문화의 주역을 담당한 계층은 당시의 인문주의적, 신플라톤주의적 정신조류와 관련된 계층, 즉 대체로 동일한 사고방식과 단일성을 지닌 지식인 계층으로서, 이러한 단일성은 전체적으로는 중세의 성직자 집단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르네상스의 중요한 예술품들은 이러한 계층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광범위한 대중들은 당시의 중요한 예술품을 전혀 알지도 못했고 아는 경우에도 이러한 예술을 감상하는 데 부적합한 비예술적인 의미로 이해했으며, 자신들의 심미적 감정은 질이 훨씬 떨어지는 작품들로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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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궁정문화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3. 25. 23:10
콰트로첸토(1400년대)에는 세기 말엽까지 이탈리아의 가장 중요한 예술중심지였던 피렌체 이외에 예술을 보호, 육성시킨 페라라, 만투아(만토바), 우르비노의 궁정들과 같은 새로운 예술중심지가 생겨났다. 이들 궁정은 14세기 북이탈리아의 궁정을 모범으로 삼았는데, 이들 궁정에서의 기사적, 낭만적 이상이나 비시민적, 형식적인 생활양식의 전통은 그러한 모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민계급의 정신, 즉 능률과 성과를 목표로 하고 과거의 전통에서 해방되어가는 합리주의 정신, 즉 능률과 성과를 목표로 하고 과거의 전통에서 해방되어가는 합리주의 정신이 궁정생활에도 영향을 안 끼칠 수는 없었다. 아직도 기사소설을 읽고는 있지만, 사람들은 기사소설에 대해 이미 거리감을 갖고 다분히 아이러니컬한 태도를 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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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자연과학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3. 23. 20:40
자연과학 분야에서 차지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특별한 전문서적들을 지적해야 한다. 이 서적 중에는 리브리Libri의 너무나도 간단하고 독단적인 작품만이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특정한 발견을 누가 했는가 하는 우선권에 대한 다툼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사전 지식이 대단히 부족한 상황에서 저항할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경험의 영역으로 자신을 던져 넣고, 타고난 재능으로 가장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는 사람은 어떤 시대, 어떤 문화 민족에게도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랭스의 제르베르와 로저 베이컨이 그런 사람들이었다...일반적인 미신과 망상의 껍질이 벗겨지고, 전통과 책들에 대한 굴종, 자연을 두려워하는 생각들이 극복되자마자 그들 눈앞에는 해결을 기다리는 수많은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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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위계 개념이.탈.리.아 역사/중세역사 medioevo 2020. 3. 22. 15:37
18세기 말 낭만주의가 막 새겨나던 초기에 중세 역사는 처음으로 관심과 찬탄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였다. 그때 사람들이 맨 처음 발견한 것은 기사도였고, 낭만주의는 그것을 중세 자체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기사도는 그 시대 문화의 여러 국면 중 하나일 뿐이며 또 사실은 사회적, 정치적 발전의 대부분이 기사도 밖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순수한 봉건 제도와 기사도 만개 시대는 13세기에 이르러 이미 쇠퇴한다. 그 다음은 자치 도시와 영주들의 시기고 제후들의 재력을 지탱해주던 부르주아의 상업 세력이 국가와 사회의 지배 요인으로 등장한다. 15세기의 정신 속에서 귀족 계급은 사회의 한 요소로서 이론의 여지없이 아직도 그 최우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귀족 계급의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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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가의 예술보호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3. 20. 10:11
도시공화국의 돈 있고 명망있는 시민들은 일상생활 태도에서는 남의 이목을 고려하여 어느 정도 자제력을 발휘했으나, 적어도 그들 사후의 명성만큼은 확실하게 남겨두고자 하였다. 공적인 비판을 불러일으키지않고 영원한 명성을 획득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교회에 헌납하는 것이었다. 15세기 전반부에 아직도 나타나고 있는 종교적인 예술생산과 비종교적인 예술생산의 불균형은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사실에 의하여 해명될 수 있다. 종교적 경건성 자체는 더이상 미술품을 헌납하는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되지 못한다. 까스텔로 쿠아라테지는 산타 크로체 사원의 정면 벽을 기증할 생각이었으나 사람들이 그의 문장을 표시하는 것을 거부하자 그 계획 자체에서 손을 뗀다. 메디치가조차도 그들이 후원하는 예술작품에 종교적 교회적 색채를 부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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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아름다운 삶에의 열망이.탈.리.아 역사/중세역사 medioevo 2020. 3. 19. 11:24
시대 전체가 보다 아름다운 삶을 열망한다. 현재가 어둡고 혼란스러울수록 그 같은 열망은 더 깊어지게 마련이다. 중세말의 삶은 침울한 멜랑코리로 가득차 있다. 15세기의 프랑크 - 부르귀뇽 세계에서는 르네상스기를 관통하며 울려오는 저 대담한 삶의 기쁨, 인간 자신의 힘에 대한 신뢰의 기색을 거의 들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 시대는 다른 시대에 비해 더 불행한 시대였을까? - 간혹 그렇게 믿으려는 경향이 있으나 매 시대마다 행복한 기억보다는 불행과 고통의 흔적을 더 많이 남긴다. 주로 불행한 일들이 역사에 남는 것이다. 중세의 기쁨은 아직 섬광을 발하고 있다. 민요, 음악, 풍경화의 평화로운 정경, 초상화의 엄숙한 자태 속에 그대로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15세기에는 드러내놓고 삶을 찬양하는 일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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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사람들의 여행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3. 18. 12:10
다른 유럽 지역의 발전을 가로막던 수많은 제약에서 자유로워지고, 개인적으로 높은 발전 단계에 도달하고, 고대를 통해서 수업을 받은 이탈리아 정신은 바깥 세상의 발견을 향해 관심을 돌리고 그것을 말과 형식으로 묘사하려고 시도한다. 발견자들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탈리아 바깥의 먼 지역으로 여행한 것에 대해 여기서는 몇 가지 일반적인 관찰만을 하기로 한다. 십자군 전쟁들은 모든 유럽인들의 마음에 멀리 떨어진 곳에 대한 관심을 열어 놓았고, 사방에서 모험적인 방랑 충동을 일깨웠다. 이 방랑 충동이 어느 지점에서 지식욕과 결합되었는지, 혹은 완전히 지식욕의 하인이 되었는지를 말하기는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어려운 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이탈리아 사람들 사이에서 맨 먼저 그리고 가장 완벽한 형태로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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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의 예술활동과 수집가들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3. 17. 08:20
이탈리아에서는 길드의 예술활동은 다른 유럽 국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신들의 예배당이나 길드 회관의 건축과 장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자치도시인들이 함께 쓰는 교회 건물의 설립같은 사업에까지 확대되고 있었다. 이러한 예술적 사업이 처음부터 길드의 권한에 속해 있기는 했으나 다른 여러 집단들의 정치적, 경제적 영량력이 상실되어감에 비례해서 길드가 담당하는 문화사업의 규모도 점차 커졌다. 그러나 자치도시 자체가 개인 자산의 관리자였듯이 대부분의 경우 길드도 자치도시의 전문가들 혹은 그 통제기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길드 그 자체가 결코 건축주가 될 수 없었을뿐더러 그들이 직접 기획 설립한 건축물의 정신적 창조자라는 명예를 누릴 수도 없었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대체로 건축물을 지을 돈을 관리하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