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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케이크 COLOMBA이.탈.리.아 먹거리 cucina italiana 2020. 2. 9. 14:45
콜롬바 디 파스쿠아(colomba di Pasqua, Colomba pasquale)는 이탈리아에서 부활절에 먹는 전통 케이크이다. 크리스마스에 먹는 판도로와 파네토네와 함께 명절을 대표하는 음식. 콜롬바의 도우는 파네토네와 비슷하여서 밀가루와 달걀, 설탕, 이스트와 버터로 만든다. 다른 점은 건포도나 단 종류의 재료를 첨가하는 것이다. 보통은 비둘기 모양으로 만드는데 위에 진줏빛이 나는 설탕과 아몬드를 굽기 전에 뿌린다. 콜롬바는 이탈리아어로 비둘기 만드는 법: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itico&logNo=220319215007 이탈리아 부활절 케이크, 콜롬바 만들기 1탄 (구글에서 퍼온사진) 이탈리아 부활절 콜롬바 케이크.지금 한창 발효중이라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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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군주론 Il Principe이.탈.리.아 문화/인문학 scienze Umanistiche 2020. 2. 8. 10:57
마키아벨리가 출생한 당시의 이탈리아는 내부적으로는 로마, 피렌체, 밀라노, 나폴리, 베네치아의 다섯개의 강력한 도시국가로 분립되어 각각 유력한 지방귀족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으며, 그들의 주권자는 소위 전제적 독재자였고, 그 위에 로마교황이 또한 최고주권자로 교권 및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밖으로는 프랑스 왕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원정으로 사분오열되어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 강대국의 정치적 야망의 제물이 되었다. 이처럼 외국 세력 다툼의 장이 된 것에는 국내의 추잡한 내분과 분열에 원인이 있었으나, 그 내분을 이용하여 권위를 유지하려는 교황에게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로마교회가 도덕의 퇴폐와 신앙의 세속화를 이탈리아 민족에게 주었으며, 국내의 끊임없는 내분을 야기시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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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Niccolo Macchiavelli이.탈.리.아 역사/이탈리아가낳은인물 titani 2020. 2. 7. 14:37
마키아벨리의 생애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1469년 5월 3일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의 수도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며 공화제 자유도시의 상층을 대표하는 시민으로 성장했다. 그의 부모는 피렌체 이름 있는 지방 귀족 가문 출신들이었으며, 특히 부친은 변호사로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그의 유년기와 소년기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이런 환경으로 미루어 보아, 그리고 생애 후기에 병약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은 지식으로 남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특히 학문과 음악에 정진할 것을 당부한 것으로 보아 대체적으로 유복한 환경 속에서 면학에 힘쓰고 고상한 취미를 추구하는 전형적인 귀족의 장남으로 생활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탈리아 반도에서 가장 강한 도시국가이던 피렌체는 일대 변혁을 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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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2. 6. 11:20
"신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르네상스의 의미에 대해 가장 널리 알려진 정의일 것이다. 종교에 함몰되어 있던 중세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인간의 시대로 전환된 찬란한 시기 - 학자에 따라 중세와의 단절과 연속성에 대한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르네상스라 일컫는 13세기 말 ~15 세기가 인류사에 갖는 특별함 자체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세계사 전집 8권, '근대의 서곡' 편은 중세와 르네상스의 현격한 차이를 저술하기 위해 식물도감을 예로 들면서 시작한다. 13세기 말경의 식물도감에는 오른쪽이 맨드레이크(이탈리아어로는 mandragola) , 동물형상은 각자 다른 이름을 가진 식물들이 그려져 있고, 풀들의 산지, 채집시기, 조합, 효능 등에 관한 것이 설명되어 있다고 한다. 즉 어디선가 분명히 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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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Macchiavelli의 사상과 문학이.탈.리.아 문화/문 학 lettere 2020. 2. 4. 14:21
마키아벨리만큼 분분한 논란을 일으킨 사람은 일찌기 아무도 없었다. 정치적으로는 격동의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일고, 문화적으로는 문예 부흥의 화려한 꽃이 피어오르는 일종의 모순과 갈등에 처해있던 시기에 그는 피렌체에서 태어났다(1469). 그가 정치 생활을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스물 아홉이 되었을 때 2등 서기국에 발탁되면서부터였다. 인문주의 교육의 바탕에다 현실주의적인 역사 사회관에 입각하여 자신의 사상을 실현시키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비록 내무와 병무를 주관하는 부서의 서기였지만 그의 해박한 지식은 그로 하여금 외교 문제를 담당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리하여 그는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피렌체와 이웃하고 있는 주변 국가들을 자주 왕래하면서 그의 지식을 더욱 풍요롭게 하였다. , ,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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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정치의 반대자들이.탈.리.아 역사/중세역사 medioevo 2020. 2. 4. 11:22
전제군주에 대한 증오 이렇게 집중된 영주의 권력에 맞선 저항은 국가 안에서는 전혀 성과가 없었다. 도시 공화국 성립을 위한 요소들은 영원히 사라졌고 모든 것은 권력과 폭력을 지향하였다. 귀족 계급은 봉건 토지를 가진 경우에도 정치적인 권력은 없이 자신과 암살자들을 교황당Guelfi 과 황제당 Ghibellini 으로 나누고 베레모자에 깃털을 꽂든가 아니면 바지를 볼록하게 하거나 혹은 다른 방식으로 옷을 입는 것이 고작이었다. 사색가들, 예를 들면 마키아벨리(Macchiavelli 1469~1527)같은 사람들은 밀라노나 나폴리 같은 나라가 공화정을 하기에는 너무 부패했다 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폭력의 그늘에 두 줄로 늘어선 가문 간의 원한에 지나지 않는, 이미 오래 전에 낡아버린 저 두 당파들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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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통치자 가문들 - 페라라의 에스테 가문이.탈.리.아 역사/중세역사 medioevo 2020. 2. 3. 09:11
페라라, 모데나, 레지오를 지배한 에스테 Este 가문의 통치는 특이하게도 폭정과 인기의 중간에 위치한다. 궁정 안에서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다. 어떤 영주 부인은 의붓아들과 간통을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목이 잘렸다(1425). 정식 결혼이나 서자로 태어난 왕자들은 궁정에서 도망치고 외국가지 뒤쫓아온 암살자들의 위협을 받았다. 외부의 음모도 끊이지 않았다. 어떤 서자의 서자는 유일하게 적법한 상속자(에르콜레 1세)에게서 통치권을 빼앗으려 했다. 후에 에르콜레 1세Ercole I d'Este(1431 ~ 1505)는 아내가 그녀의 오빠인 나폴리왕 페란테의 사주를 받고 자기를 독살하려 했다는 말을 듣고 아내에게 독을 먹였다고 전해진다(1493). 통치중인 공장 알폰소 1세와 추기경 이폴리토에 맞서 두 병의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