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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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의 생애 - 로맹 롤랑미.켈.란.젤.로/생 애 vita 2020. 9. 23. 13:16
그는 피렌체의 시민이었다. 어두컴컴한 궁전과 뾰족한 첨탑, 몇 개의 완만한 구릉이 작은 떡갈나무와 물결처럼 굽이치는 올리브의 은빛 베일에 덮여 보랏빛 하늘에 아름답게 부각되는 도시 피렌체. 창백한 로렌조 데 메디치, 입이 크고 교활하게 생긴 마키아벨리가 보티첼리의 과 금발의 비너스와 얼굴을 마주쳤던 예리하고도 우아한 모습의 피렌체 - 시민들은 현명하면서도 협량 하며, 열광적이면서도 집념이 길어 신랄한 발언을 토해내곤 했다 그러나 의심이 많고 서로를 살피고 시기하고 멸망하게 하였던 이 도시 -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자유로운 정신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으며, 보티첼리가 마지막에는 스코틀랜드의 청교도와 같이 환상적 신비주의 가운데 사라졌고, 시뻘건 눈초리의 사보나롤라가 미술품을 불사르는 주위에서 수사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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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이.탈.리.아 역사/16c - 19c 2020. 9. 2. 22:19
비토리아 콜론나와 그녀의 친구들은 인문주의적 교양을 갖추고 특히 종교적 문제에 관심을 가진 모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미켈란젤로 역시 1538년 이후로 그녀의 친구가 되었다. 포르투갈 출신의 화가 프란체스코 데 홀란다는 한 친구에게서 이들 친우들의 종교적 열정에 대해 전해 듣고 그의 [회화에 관한 대화]에서 이를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그는 몬테 카발로에 있는 산 실베스트로 성당에서 당시 유명했던 한 신학자가 사도 바울의 편지에 관해 이야기하던 집회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아마 콜론나를 중심으로 이러한 모임에서 그의 정신적 부활과 후기 작품에서 보이는 정신주의적 양식을 낳은 결정적인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그가 겪은 이러한 종교적 발전은 르네상스에서 반종교개혁운동으로 이행하는 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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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전설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4. 29. 09:38
이처럼 회화를 중세적, 수공업적 관점보다 높이 평가하는 태도는 이미 인문주의 최초의 선구자들에게서 나타난다. 단테는 그의 연옥편 제 11장에서 치마부에와 지오토 두 거장을 위한 불멸의 기념비를 세웠고, 이들 화가들을 구이도 구이니첼리, 구이도 카발칸티 같은 시인들과 비교하고 있다. 페트라르카도 그의 소네트에서 화가 시모네 마르티니를 높이 칭찬하고 있으며, 필리포 빌라니도 피렌체를 찬미하는 글에서 도시의 이름있는 명사를 열거하면서 몇몇 화가들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소설, 그중에서도 특히 보카치오와 사케티의 소설에는 미술가에 대한 일화가 많이 들어 있다. 비록 얘기 속에서 예술 자체는 별다른 역할을 못하고 있지만, 이러한 소설에서 특기할 점은 예술가들을 이름없는 평범한 장인들의 존재와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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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예술시장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4. 19. 00:34
초기 르네상스이 미술가들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소시민적인 상공인들과 동렬에 서있었다. 그들의 형편은 비록 찬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불안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귀족같은 삶을 누릴 수는 없었으나 그렇다고 예술가 프로레타리아트라고 불릴만큼 비참한 삶을 영위하지도 않았다. 화가들은 그들의 세금신고서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빈약한 재산 상황에 대해 불평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 기록들이 신빙성있는 역사적 자료는 되지 못한다. 마사치오는 도제들에게 월급도 지불할 수 없을 정도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실제로 그는 죽을 당시에 매우 가난했고 빚에 쪼들린 것이 사실이다. 바사리의 말에 의하면 필리포 리피는 양말 한 켤레도 살 수 없었다고 하며, 파올로 우첼로는 노령에 이르러 가진 재산도 없고 일도 할 수 없으며 병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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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아틀리에 활동이.탈.리.아 역사/르네상스 rinascimento 2020. 4. 9. 12:24
도제들의 수련과정은 아직도 중세의 전통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온갖 궂은일, 예컨대 색채의 조합, 화필의 수선과 정리, 그림의 초벌칠 등을 하는 데에서 시작하여 그후는 화고의 여러 구도들을 화면에 옮기는 일, 착의의 여러 부분과 중요하지 않은 인체의 부분들을 그리는 일을 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장인의 스케치나 지시를 바탕으로 화면 전체를 그려내는 일까지 하였다. 이런 식으로 해서 도제는 점차 어느정도 독자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조수가 되는데, 물론 이러한 조수는 일반적으로 제자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한 장인의 조수라고 해서 모두 다 그의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고, 또 모든 제자가 다 언제나 스승 옆에서 조수 노릇만 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조수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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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II세이.탈.리.아 역사/이탈리아가낳은인물 titani 2020. 2. 21. 22:23
호색하고 권력욕의 화신이었던 알렉산더 6세의 뒤를 이어 교황으로 선출된 율리우스 2세(Julius II 1443~1513)는 전쟁을 밥보다 좋아하는 정력적인 활동가로, 제 2의 르네상스적 교황이었다. 그래서 전사교황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전쟁 이외에 학문과 예술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는 어린 시절부터 삼촌인 교황을 보조하는 복사로 봉사하였고, 삼촌이 소속된 프란치스코회에서 교육을 받았다. 프란체스코 델라 로베레가 교황 식스토 4세로 선출되면서 조카인 줄리아노(율리우스)를 추기경에 서임함과 동시에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을 명의본당으로 하사하였다. 교황인 삼촌을 배경 삼아 줄리아노는 교회 안에 매우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으며, 여덟 개 이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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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스승 - 도메니코 길란다이오 Domenico Ghirlandaio이.탈.리.아 문화/미 술 belle arti 2010. 6. 5. 01:30
Domenico Ghirlandaio ( 1449 – Firenze, 11/01/1494 Firenze ) 보티첼리, 필리포 리피와 동시대인으로 르네상스의 위대한 마에스트로 중의 한 사람이다. 특히 초상화에 뛰어났으며 동시대 피렌체의 유명인들을 그려 불멸성을 부여했다. 미켈란젤로가 길란다이오의 공방에서 도제생활을 한 것은 짧은 기간이었으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프레스코 벽화 작업에 이름이 기록되어있다. 길란다이오의 자화상 Ospedale degli Innocenti 의 벽화 '동방박사의 참배', 1488 VISITATION, 1486-1490 프레스코화, Firenze Santa Maria Novella 최후의 만찬 1486 Birth of St John the Baptist (detail) 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