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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켈란젤로 의 생애 - 로맹 롤랑
    미.켈.란.젤.로/생 애 vita 2020. 9. 23. 13:16

     

     

    The Deposition (Michelangelo),from 1545 until 1555

     

     

    그는 피렌체의 시민이었다. 어두컴컴한 궁전과 뾰족한 첨탑, 몇 개의 완만한 구릉이 작은 떡갈나무와 물결처럼 굽이치는 올리브의 은빛 베일에 덮여 보랏빛 하늘에 아름답게 부각되는 도시 피렌체.

    창백한 로렌조 데 메디치, 입이 크고 교활하게 생긴 마키아벨리가 보티첼리의 <봄>과 금발의 비너스와 얼굴을 마주쳤던 예리하고도 우아한 모습의 피렌체 - 시민들은 현명하면서도 협량 하며, 열광적이면서도 집념이 길어 신랄한 발언을 토해내곤 했다 그러나 의심이 많고 서로를 살피고 시기하고 멸망하게 하였던 이 도시 -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자유로운 정신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으며, 보티첼리가 마지막에는 스코틀랜드의 청교도와 같이 환상적 신비주의 가운데 사라졌고, 시뻘건 눈초리의 사보나롤라가 미술품을 불사르는 주위에서 수사들을 춤추게 하고 3년 후에는 그 예언자를 처형하기 위한 화형대를 만들었던 이 도시.

    미켈란젤로는 바로 이 도시, 이 시대에 살았고, 그 시민들의 편견과 정열과 흥분의 모든 것을 그도 함께 지니고 태어났다.

    그는 확실히 동향인에게 친절하지는 못하였다. 그 하늘 아래 가슴을 활짝 펴고 살아 온 이 천재는 동향인들의 저속한 기교와 조작된 재치와 평범한 사실주의와 병적인 감상주의를 경멸하였다. 그는 동향인들을 거칠게 대했으나 한편 사랑하기도 했다. 그는 고향에 대하여 다 빈치와 같이 그저 미소로만 대하는 무관심은 아니었다. 고향을 떠나면 향수에 괴로와하는 것이었다. 그는 일생 동안 고국에 살기 위하여 허무한 노력을 그치지 않았다. 그는 전쟁의 비극적인 시기를 피렌체와 함께 지냈다. 그는 '내가 살아서는 이루지 못했으므로 죽어서라도 그곳에 돌아가고 싶다"라고 말하였다.

    옛 선조로부터 피렌체인인 그는 자기의 혈통이나 가문을 자랑으로 삼았다. 그는 자신의 천재 그것보다도 이것들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리고 타인이 자기를 예술가로 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나는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아니다...나는 어디까지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이다'

    그는 계급적 편견이 매우 심하였다. 그러기에 그는 정신적으로는 귀족이나 다름이 없었다. '예술은 귀족들이나 하는 것이지 서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까지 말하였다.

    그의 가문에 대한 생각은 종교적이고 보수적이며 거의 미개인과 같았다. 그는 가문을 위해서 모든 희생을 바치고, 또한 타인에게도 이와 같이 요구하였다. 그 자신도 말한 바와 같이,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노예로 팔려 간들' 개의치 아니하였을 것이다. 애정은 이 경우에 있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형제들을 경멸하였다. 상속자인 조카도 경멸하였다. 그러나 그 조카도 형제도 일가로서 존중한 것이다. 그의 편지를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을 언제나 찾아볼 수 있다.  

    '우리들의 일가....우리들의 일가 족속들....우리들의 일족을 지킬 것....우리의 일족이 끊기지 않기를..."

    이렇게 일족이라는 집념은 모든 미신과 광신을 가지게끔 하였으며, 그러한 것들이 그의 체질을 형성하게 된 토양이었다. 그러나 이 토양에서 모든 것을 정화시킬 수 있는 불길, 즉 천재가 탄생한 것이다. 

    천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 천재를 믿지 않는 사람은 미켈란젤로를 보면 알 것이다. 그는 열광적인 천분에 포로가 된 사람이었다. 그 천분이 그에게 밀어닥쳐 그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이에 대하여 그의 의지와 육체는 너무나 무력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미켈란젤로의 정신과 육체 속에 파고든 무서운 생명력이었다. 

    그는 멈출 줄 모르는 흥분 속에 살았다. 이 넘칠것만 같이 밀려오는 힘에 그는 한시도 쉴 사이 없이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편지에도 이렇게 썼다.

    '나는 과거의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일을 뼈가 부서지도록 해야만 한다. 밤이나 낮이나 일 이외의 것은 생각지도 못한다.'

    그의 활동욕은 일을 산적해 놓고도 도저히 감당해 낼 수도 없는 일을 맡아 놓기까지 하는 병적인 것이 되었다. 그는 산을 모조리 조각하고 싶다고도 생각하였다. 그뿐 아니라 어떤 기념물을 세우게 되면, 그는 석재를 고르고 운반하기 위하여 채석장에서 몇 년을 지내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가 기사도 되고, 인부도 되고 석공도 되고 싶은 심정으로 살았다. 그는 모든 것을 자기가 도맡아 혼자서 교회도 궁전도 세우려고 하였다. 침식의 시간조차 잊어버리는, 마치 죄수의 생활과 마찬가지였다. 그의 편지에는 항상 비참한 이야기가 쓰여 있다. 

    '식사를 할 시간이 없습니다...먹을 틈도 나지 않고 지난 12년 동안 나는 피로에 지쳐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나는 여러 가지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나는 빈곤과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나는 비참합니다'

    그의 비참은 공상이었다. 미켈란젤로는 부유하였다. 대단한 부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부가 그에게 왜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 것일까? 그는 마치 연자방아에 매달린 말처럼 일에만 매달려 있었다. 그가 어째서 그렇게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일과 싸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는 것, 그에게 있어서는 그 싸움이 필요하였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많은 점에서 그와 성격이 비슷한 부친까지도 그를 비난하였다. 

    '네가 너무 절박하게 사는 것을 보고, 네 형제들은 마치 빈민 생활과 같다고 전해오고 있다. 절약도 좋다. 그러나 빈곤은 좋지 못하다. 궁핍한 생활은 너의 영혼과 몸을 망친다...무리를 피하고 적절한 생활을 하도록 해라. 식사도 제때 하고, 너무 과로하지 않도록 하기 바란다.'

    그러나 어떤 충고도 소용이 없었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몸을 보살피는 데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의 식사란 빵 몇 조각과 포도주를 드는 정도이며, 자는 것도 불과 몇 시간뿐이었다. 그는 항시 옷을 입고 장화를 신은 채로 잠을 잤다. 

    그의 편지를 보면 여러 번 중병을 앓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몇 번이나 열병에 걸려, 죽을 뻔도 하였다. 눈도 이도 머리도 심장도 아팠다. 특히 신경통으로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는 42세에 이미 노쇠를 느꼈다. 48세에는 하루 일하면 나흘을 쉬어야 할 정도라고 편지에 쓰고 있다. 그는 완고하여 의사에게 진료 받기를 거부했다. 격심한 일과 무리로 인해 그는 육신보다도 정신상의 타격을 입었다. 비관주의가 그를 습격한 것이다. 

    벅찬 작업과 겹친 피로와 충분한 휴식도 취하지 않은 결과, 그는 여러가지 망상에 사로잡혀 의혹에 떨기 시작하였다. 그는 적을 의심하고 친구를 의심하고 양친을, 형제를, 양자를 의심하게 되었다. 모두가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고 의심했다. 

    모든 것이 그를 불안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가족들까지도 이렇게 터무니 없는 상태를 조롱하였다. 그는 자신도 말했듯이 '우울의 상태라기보다는 광기의 상태'로 지냈다.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취미처럼 되었고, 여기에서 이상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고통의 씨앗이 되었다. - 사랑도, 행복까지도. 그는 즐거움보다도 괴로움을 이기고 싸우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이 세상에서 그가 보고 느낀 것은 모두가 고뇌 뿐이었다. 

    천 개의 기쁨도 하나의 괴로움에 미치지 못한다! Mille piaceri non valgono un tormento!  <미켈란젤로 시집>

    '그의 격렬한 정력은 그를 완전히 인간사회에서 격리시켜 놓았다' 라고 콘디비는 말하고 있다. 

    그는 항상 고독하였다. - 그는 모든 일에 증오하였고 그도 증오를 받았다 그는 모든 일에 사랑을 베풀었으나 남에게 사랑을 받지는 못하였다. 그는 칭찬을 받았으나, 그것을 두려워하였다. 궁극에는 그가 종교적인 존경을 받기까지 했다. 그는 그 세기에 군림하였다. 그제서야 겨우 안도감을 느꼈다. 

     

     

    그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고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보았다. 그렇다고 그가 양면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가난한 자에게도 위안이 있었으나 그는 순간의 위안도 가져보지 못했다. 그리고, 여성의 애정도 그에게는 단절되어 있었다. 단 한 번, 비토리아 콜론나와의 우정이 캄캄한 하늘에 반짝였다. 주위 모두가 어두운 암흑 속에서 광기의 욕망과 몽상이 그이 사념에 타올라 유성처럼 스쳐갔다. 베토벤도 이러한 암흑은 모르고 지냈다. 그는 그릇된 세상을 슬퍼하였으나 그 자신은 원래 쾌활하였고 환희를 노래하였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자신 속에 비애를 안고 있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그를 두렵게 생각하고 그를 멀리하였다. 

    그는 스스로가 자기의 주위를 공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에게는 고독이 최악의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최악이란 자신과 더불어 살 수가 없다는 것, 자기를 지배할 수 없다는 것,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이었다. 그의 천재는 자기 스스로를 거역하는 그의 영 - 천분과 결부되어 있었다. 

     

     

    자신의 천분이 그를 집요하게 따라 다니면서 그의 웅대한 계획 수행을 가로막은 숙명이었다고 말하였다. 그 숙명이란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이다. 그는 이렇게 자기 생애의 모든 비극을 설명하고 있으나 이것을 알아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불행을 해명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그의 의지와 성격의 결여인 것이다. 

    그는 예술에 있어서나 정치에 있어서나 모든 행동에 있어서나 모든 사색에 있어 결단이 부족하였다. 두 개의 제작, 두 가지의 기획, 두 가지의 수단 가운데서 그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율리우스 2세의 기념비, 로렌조 성당, 메디치가의 묘비 등이 이를 여실히 증명하여 준다. 그는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결국은 완성을 보지 못하였다. 그는 하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주저했다. 무엇을 결정하였는가 하면 어느새 이것을 의심한다. 따라서 만년에는 어느 하나도 완성을 보지 못했다. 모든 것이 싫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그에게 일이 강제된 것이라고 말한다. 계획이 달라진 이유도 그의 보호자들에게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만일 모든 일에 결단을 내렸다면 그의 보호자들이 강제할 리는 만무하였다. 그가 감히 거절을 못 한 것이었다. 

    그는 고민하였다. 그는 마음이 너무 약했다. 소심, 도의심 때문에 여러가지 관습에 약했다. 그가 좀 더 강한 성격이었다면 거절할 수도 있었을 것을 생각하며 불안해했다. 그는 지나친 책임감 때문에 대수롭지 않은 일까지도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현장 감독 같은 충분히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는 일까지도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기에 그는 계약을 끝맺지도 못하고 잊지도 못하였다. 

     

     

     

    그는 무슨 일이든 망설이고 마음이 약하였다. 율리우스 2세가 '겁나는 사람'이라고 부른 데 반하여, 바사리는 '용의주도한' - 지나치게 주의 깊은 사람이라고 평하였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 교황까지도 겁을 먹게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모든 사람을 두려워한 것이다.  

    그는 왕후들을 '그 바보 자식들'이라고 불렀다. 그는 교황으로부터 피하려고 생각하면서 언제까지라도 머물러 복종했다. 그는 보호자들로부터의 횡포한 편지를 감수하고 거기에 머리 숙여 답장까지 썼다. 때로 반항하고 당당하게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으나 언제나 양보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는 죽을 각오로 투쟁하지도 못하면서 몸부림치는 것이었다.

    그는 돌연 발작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온 이탈리아를 헤매고 돌아다녔다. 1494년에는 어떤 환상에 놀라 피렌체에서 도망쳤다...그는 공포에 싸였다. 그리고 그 공포를 죽기보다 부끄러워했다. 그는 자신을 경멸했다. 자기혐오에 빠져 병까지 들었다. 그는 죽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죽을 수 없었다. 그에게는 일하려는 강한 욕망이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그의 고뇌를 더욱 깊게 하였다. 그는 일했다. 아니 일을 해야만 했다. 

    그는 움직이지 않고서는 배겨날 수가 없었다. 그가 일하였던 것일까? 아니, 그는 일을 강제당한 것이다. 마치 단테가 그린 지옥 속에 빠져 들어가는 사람처럼, 미칠 듯이 모순되는 정열의 질풍 속으로 휘말린 것이다. 

     

    Ohime, ohime, pur reiterando

    V'o lmio passato tempo e non ritrovo

    In tutto un giorno che sia stato mio!

    나는 왜 이다지도 불행할까. 불행한 것일까

    지나간 모든 내 과거에서 

    단 하루도 행복했던 날은 없었기에

    <미켈란젤로 시집>

     

    De, fate,c'a me stesso piu non torni

    아아 내가 다시는 나 자신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여 주소서

    <미켈란젤로 시집>

     

    나는 이 비통한 외침을 카피톨리노 미술관에서 - 우리들을 불안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그 비통한 표정을 볼때, 지금도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는 중간 키에 어깨가 벌어진 단단한 체격이다. 그러나 일 때문에 몸매가 좀 이상하다. 걸을 때는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등이 굽고, 배가 불쑥 나왔다. 프란체스코 데 홀란다의 초상화를 보면, 어깨에는 로마 풍의 외투를 걸치고, 머리에는 검은 캡에 주름잡힌 큰 모자를 쓰고 있다. 머리는 둥근 편이고 네모진 이마에 주름이 많다. 머리카락은 검고 숱이 적은 편에 헝클어진 고수머리이다. 조그만 눈이 슬프게 보이지만 그래도 예리한 눈빛이 때로는 갈색으로 또는 파랗게 변하기도 한다...

    그의 용모 전체는 비애와 불안에 젖어 있고 그야말로 불안에 떨고 의혹에 괴로와하였던 타소 시대의 용모였다. 

     

     

    그에게 동정이 인색하여서는 안된다. 그가 생애를 통하여 항상 바라 오면서도 거절당한 그 애정을 보내야 한다. 그는 인간에게 주어진 최대의 불행을 많이도 맛보았다. 그는 조국이 굴복하는 것을 보았다. 이탈리아가 수세기 동안 외국에 넘겨지는 것을 보았다. 자유가 사멸하는 것을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 둘 죽어가고, 예술의 빛들이 차례 차례 꺼져 가는 것을 보았다. 

    그가 저물어 가는 밤에, 최후의 한 사람으로 혼자 남았다. 

     

    그리고 죽음에 다가서서 돌이켜 보았을 때, 자기가 했어야 할 일, 또한 한다면 기어이 할 수도 있었던 일을 모두 다 했다고 위안을 느낄 수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생애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는 아무 기쁨도 없었던 자신의 생애가 허무했다. 

    그는 90년이라는 전 생애를 통해 하루도 쉬지 않고 스스로 채찍질하며 그 놀랄 만한 일들을 해냈으나 그가 생각한 위대한 계획은 하나도 완수하지 못했다. 그의 위대한 작품은 단 한가지도 완성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칼하게도 오히려, 이 조각가가 원치 않았던 회화에 있어서는 훌륭하게 완성을 본 것이다...

    '환희의 노래'는 울려퍼지지 못하였다. 숨을 돌리는 최후의 순간까지 '고뇌와 죽음의 노래'만이 새어나왔다. 그는 완패한 것이다...

     

    이것이 이 세상의 승리자의 한 사람이었다. 그의 천재를 이어받은 우리는, 우리 선조들의 공적을 이어받을 때와 마찬가지의 태도를 가지게 된다. 대개 사람들은 이미 흘린 피의 가치를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 앞에 이 귀한 피의 가치를 보여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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