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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피렌체에서
    미.켈.란.젤.로/생 애 vita 2020. 10. 21. 19:59

     

    피에타 작업을 끝마친 미켈란젤로는 아버지에게 꽤 많은 돈을 보낸다. 로마에서 그는 외롭고, 행복하지 않았다. 온 가족의 무거운 짐을 어깨 위에 짊어지고 있었다. 가족들은 항상 그에게 돈을 요구하였고, 그는 돈이 없을 때에도 자존심 때문에 거절하지 않고 보내주었다. 그의 건강은 이미 악화되었다. 조악한 식사와 과로, 냉기와 습기가 건강을 침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꽤 심각한 병에 걸리기까지 하였다. 부친은 '가난한 생활은 선하나, 궁핍은 악'이라고 편지로 꾸짖었으나 그는 자기의 건강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모든 고통을 참고 이겨 온 것은 모두 당신들 때문입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여러가지 걱정들도 모두 당신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1501년 봄, 그는 피렌체로 돌아왔다. 40년 전부터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조영국에서는 예언자의 조각상을 만들기 위하여 거대한 대리석 석재를 마련하여 아고스티노 디 두치오에게 위촉했다. 그러나 중단된 이후 어느 누구도 그 거대한 일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이 작업이 미켈란젤로에게 맡겨졌다.1

    처음부터 미켈란젤로에게 이 작업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막 피렌체 공화국의 수장이 된 피에로 소데리니는 원래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루도비코 일 모로의 사후 피렌체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소데리니는 두오모 성당 인물로 부터 미켈란젤로가 매일 와서 돌을 만져보고, 애정 어린 손길로 쓰다듬는다는 사실을 보고 받았다.

    미켈란젤로는 소데리니에게 면담을 신청하여 현재 대리석의 상태를 세세히 설명하고 자신의 특별한 구상을 소개했다. 이는 사실상 피렌체에서 가장 젊은 조각가가 가장 유명한 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 도전한 것이었는데, 이에 감명받은 소데리니는 2년의 완성 기간과 금화 400피오리니+월 6피오리니의 가격 조건으로 미켈란젤로와 계약한다. 

    계약은 1501년 8월16일에 체결되었고, 9월 13일에 미켈란젤로는 작업을 시작했다. 스케치로 구상하고, 밀랍으로 모델링했다고 하는데, 루브르 박물관에 스케치가 남아있다.

     

     

    Study for the statue of David; drawing by Michelangelo. The Louvre, Paris

     

    이 스케치에는

    Davicte cholla Fromba e io collarcho, Michelagniolo 라고 쓰여 있다.

    (다비드는 새총을, 나는 끌을 들고, 미켈란젤로)

     

    어린 미켈란젤로가 어떤 마음으로 거대한 골리앗과 같은 세상을 대해 왔는지에 대한 자전적인 고백이었다. 

     

     

     

     

     

     

    1. 미켈란젤로의 생애 / 로맹 롤랑

    내용 발췌> 미켈란젤로 / 브루노 나르디니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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