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공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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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이탈리아 정복 ll - 주변국들과의 전쟁이.탈.리.아 역사/고대역사 storia antica 2010. 8. 1. 23:01
아이퀴인과 볼스키인 아이퀴인과 볼스키인은 기원전 5세기 내내 로마의 가장 고질적인 원수였다. 아이퀴인이 로마 남동쪽 투스쿨룸 근처에 솟아있는 알기두스 산이라는 전략적 고지를 점령한 뒤로 로마인들은 그들을 몰아내기가 어려웠다. 파스티에 따르면 기원전 458년에 로마 군대가 알기두스 산 밑의 계곡에서 아이퀴인의 함정에 걸렸는데, 다섯명의 기병이 포위선을 뚫고 로마에 그 소식을 전하지 않았더라면 로마 군은 몰살당할 뻔했다고 한다. 전승에 의하면 너무나 중대한 위기였기 때문에 원로원이 보낸 사절이 농사에 전념하고 있던 킨킨나투스Cincinnatus를 만나러 갔다. 원로원의 요청을 받고있는 Cincinnatus Juan-Antonio Ribera-y-Fernandez Museo del Prado in Mad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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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이탈리아 정복 (기원전 509-264) l이.탈.리.아 역사/고대역사 storia antica 2010. 7. 30. 14:17
로마 계급간의 투쟁은 이탈리아 반도에 살고있던 다른 종족들과의 끊임없는 전쟁과 병행하여 발생했다. 수적으로는 소수에 불과한 귀족들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평민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했고, 따라서 마지 못해서 평민 지도자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주변 종족들과의 전쟁 리비우스의 로마사 제2권부터 제5권 중간 까지 기원전 5세기의 전쟁들로 가득 차 있다. 그의 기록은 비록 거창하게 미화되기는 했으나 약탈을 위한 침공이거나. 얼마 되지 않는 토지 소유권을 놓고 접경에서 벌인 소규모 접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주변 종족들인 라틴인, 사비니인, 헤르키니인, 아이퀴인, 볼스키인, 에트루리아인 사이에서 발생했다. 로마인들과 이탈리아의 다른 종족들은 기본적으로 자급자족적인 농민이자 목축업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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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국가제도의 실체이.탈.리.아 역사/고대역사 storia antica 2010. 7. 27. 11:48
로마 공화정의 국제는 이론적 원칙을 가지고 단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수세기를 지나며 관습과 선례와 구체적인 법률이 조화를 이루며 발전했다. 많은 학자들은 기원전 287년 호르텐시우스 법이 통과된 시점을 로마에 참된 민주적 정체가 출현한 시점으로 보고 있다. 기원전 2세기 그리스 사가 폴리비오스같은 다른 학자들은 그 법을 가리켜 혼합된 정체,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훌륭한 정체가 고루 섞인 혼합정체라고 불렀다(정무관에 의해 대표되는 군주정, 원로원에 의해 대표되는 귀족정, 호민관들과 민회에 의해 대표되는 민주정). 이 이론에 따르면 각 계층은 서로 균형을 유지했고, 그로써 어느 한 계층이 나머지 두 계층을 누르고 더 강해질 수 없었던 셈이 된다. 두 견해 모두 옳지 않다. 공화정은 강력한 과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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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공화정의 대두이.탈.리.아 역사/고대역사 storia antica 2010. 6. 28. 12:06
공화정은 기원전 500년경(전승에 의하면 기원전 509년)부터 아우구스투스의 원수정이 시작된 시점인 기원전 27년 까지였다. 공화정res publica라는 용어는 반드시 민주적이지만은 않지만 본질상 왕이나 황제 치하에 존재하는 정치체제와는 다른 정치형태를 뜻한다. 로마의 뛰어난 정치가이며 웅변가였던 키케로 공화정 초기사 전승의 구조 전체가 기초를 두어야 하는 곳은 파스티Fasti의 견고함이다. Fasti (파스티: 고대 국가들의 역년歷年은 연대기적 순서로 계산되지 않고, 일년 임기의 고위 정무관의 이름으로 계산된었다. 이러한 체계는 사업과 법률적, 행정적 목적상 목록을 쉽게 만들어 놓지 않을 경우 엄청난 기억력에 의존해야 했다. 로마 공화정기 4-5세기 동안에는 관리와 사제와 일반 개인에게 그러한 목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