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생 애 v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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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 초기미.켈.란.젤.로/생 애 vita 2020. 9. 26. 14:32
1490 년, 도메니크회의 수사 사보나롤라는 산 마르코 수도원에서 묵시록에 관한 설교를 시작했다. 당시 그는 37세였고 미켈란젤로 15세, 성령으로 들끓는 것 같은 자그마한 남자가 토해내는 열변을 눈 앞에서 보면서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낀다. 온통 피에 물든 신이 이탈리아를 분노의 칼로 찌르는 것 같은 설교였다. 피렌체는 전율하였다. 청중들은 미친 사람들처럼 울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면서 거리를 휩쓸고 다녔다. 가장 이상적인 시민이었던 사람들이 수도회에 입회하겠다고 했고 피코 델라 미란돌라, 폴리치아노와 같은 학자들까지도 이성을 잃는다. 피렌체를 비유한 소돔과 고모라, 로렌조 일 마니피코를 암시하는 부유하고 두려움이 없는 자들의 죄악에 대한 설교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미켈란젤로도 두려움에서 헤어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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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도제생활미.켈.란.젤.로/생 애 vita 2020. 9. 24. 20:15
1475년 3월 6일생인 미켈란젤로는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잃었다. 피렌체 시민으로 당시에는 카프레제Caprese 행정관이었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유모에게 맡겨 기르게 했는데, 교외(세티냐노Settignano)에 살고 있던 유모의 남편은 석수장이었다. 끌과 망치를 가지고 노는 것이 가장 즐거웠다고 자신의 글에서 밝히고 있는 미켈란젤로는 13세가 되자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예술가의 길을 택해 당시 거장 화가 중의 한 명이었던 도메니코 길란다이오의 도제 생활을 하게 된다. 1400년대 말의 피렌체는 길에서 베로키오, 보티첼리, 젊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로쪼 같은 예술가, 폴리지아노와 피코 델라 미란돌라와 같은 학자들을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도시였다. 수많은 예술계 거장들이 피렌체 시내에 공방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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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의 생애 - 로맹 롤랑미.켈.란.젤.로/생 애 vita 2020. 9. 23. 13:16
그는 피렌체의 시민이었다. 어두컴컴한 궁전과 뾰족한 첨탑, 몇 개의 완만한 구릉이 작은 떡갈나무와 물결처럼 굽이치는 올리브의 은빛 베일에 덮여 보랏빛 하늘에 아름답게 부각되는 도시 피렌체. 창백한 로렌조 데 메디치, 입이 크고 교활하게 생긴 마키아벨리가 보티첼리의 과 금발의 비너스와 얼굴을 마주쳤던 예리하고도 우아한 모습의 피렌체 - 시민들은 현명하면서도 협량 하며, 열광적이면서도 집념이 길어 신랄한 발언을 토해내곤 했다 그러나 의심이 많고 서로를 살피고 시기하고 멸망하게 하였던 이 도시 -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자유로운 정신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으며, 보티첼리가 마지막에는 스코틀랜드의 청교도와 같이 환상적 신비주의 가운데 사라졌고, 시뻘건 눈초리의 사보나롤라가 미술품을 불사르는 주위에서 수사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