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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쇠퇴하는 상징 체계
    이.탈.리.아 역사/중세역사 medioevo 2020. 6. 3. 18:40

     

    그 시대의 종교적 감동은 앞에서 보았듯이 풍부하고 채색된 표현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었다. 정신은 신비에 하나의 감지할 수 있는 형식을 부여함으로써 신비를 포착한다고 믿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물질적인 표징들하에 경배하고자 하는 욕구는 끊임없이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냈다. 14세기에는 예수를 향한 넘치는 사랑의 눈에 보이는 대상들, 즉 십자가와 어린 양만으로는 부족하게 된다. 그리하여 예수 이름에 대한 경배가 더하여지며, 그것은 십자가에 대한 경배를 압도할 정도로 성행한다. 

     

    Palm Sunday as represented by Giotto in the Arena Chapel, Padua

     

    그리스도를 눈에 보이는 형상하에 경배하려는 갈망은 곧 성체 현시대라는 합법적인 충족을 발견했다. 그것은 신성한 면병에 대한 숭배를 열어놓았다. 그러나 그것은 곧 신의 사랑을 상징하는 방사상 빛살무늬의 태양형태를 취했다. 여기서도 교회는 우선은 반대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성체 침례 주간에밖에는 성체 현시대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쇠퇴 일로의 중세적 사고는 이미지들의 범람 속에 와해될 지경이었고, 이미지들의 범람은 거대한 상징 체계 속에 각 형상들이 제위치를 차지하도록 모든 것을 포괄하지 않는 한 무질서한 환각에 불과했을 것이다...중세는 즉각적인 기능과 현상성에만 의미가 국한된다면 모든 것이 부조리할 것이나 반대로 본질에 의해서는 모든 것이 초월을 향한다는 것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이 개념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며 종교적 사고 밖에서조차 흔히 볼 수 있다. 보통의 사물들이 평범한 의미보다 훨씬 깊고 내밀한 또 하나의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 기분은 때로는 병적인 염려의 형태를 띠어서 모든 사물이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풀어야 할 징조 혹은 수수께끼들로 가득찬 듯이 보이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때로는 훨씬 더 자주 우리가 세계의 그 비밀한 의미에 관계하고 있다고 설득하면서 우리를 평정과 확신으로 가득채운다. 따라서 이 기분이 한 원칙 즉 모든 것이 거기서 유래하는 한 가지 원칙에 결부될수록 일순간의 명석한 직관은 더욱 더 영구적인 확신으로 되는 경향이 있다...모든 것을 하나님 안에서 보고 모든 것을 신과 관련지을 때, 우리는 하찮은 것들 속에서 보다 높은 의미화들을 읽게 된다. 거기에 바로 상징주의가 성장하는 심리적 바탕이 있다. "신에게 있어 의미없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신성의 형상 둘레에는 상징적 형상들을 부과하는 체계가 뭉쳐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상징적 형상들은 신에게 관련되며 신 안에서 각자 자기 의미를 갖는다. 우주는 거대한 하나의 상징들의 총체처럼 전개되며 관념들의 교회로 세워진다. 그것은 세계에 대한 가장 풍부한 리드믹한 개념이며 영원한 조화의 대위법적 표현이다. 중세 시대에는 상징적 태도가 인과적 태도나 발생론적 태도보다 훨씬 더 강조되었다. 세계를 하나의 진화로 보는 방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중세의 사고는 사물을 그 기원에서 보고 이해하려는 데도 무척 애를 썼다. 하지만 중세의 사고는 이를 위해 연역적인 방법밖에는 사용하지 않았으며, 실험과 관찰은 전혀, 그리고 분석은 거의 알지 못했다. 하나의 사물이 어떻게 다른 한 사물에서 유래했는가를 납득하기 위해 중세적 사고는 생식과 분기라는 순진한 이미지들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중세적 사고는 발생 관계를 계보나 나무의 형상하에 상상하였다...이 같은 돌에 새긴 듯한 간결한 방법 때문에 중세의 진화론적 사고는 도식적이고 독단적이고 빈약할 수밖에 없었다. 인과적 관점에서 볼 때 상징주의는 일종의 사고의 단락처럼 나타난다. 사고는 두 사물간의 관계를 인과적 관계의 숨은 우회로를 따라 추구하는 대신에, 이리저리 건너뛰면서 그것을 원인 - 결과의 밀접한 관계로서가 아니라 의미화와 궁극성의 관계로서 돌연히 발견해낸다. 이런 식의 관계는 두 사물이 공히 하나의 일반적 의미에 결부시킬 수 있는 하나의 본질적 특성을 갖게 되면서부터 부과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실험심리학적 용어를 사용한다면 어떤 하나의 동질성에 기초한 모든 연합은 하나의 본질적이고 신비적인 연결 개념을 즉각 결정지을 수 있다. 거기서 멈춘다면 그것은 매우 빈약한 정신 기능일 것이다. 게다가 인류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더없이 원시적이다. 원시적인 사고 속에서는 경계선들이 모호하다. 따라서 이 사고는 일정한 한 사물의 개념 속에 어떤 한 관계나 동질성으로 묶여진 모든 개념들을 합병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상징주의에 아주 근접한다. 하지만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약간 벗어나서 상징주의를 보다 호의적인 조명하에 살펴보는 것이 가능하다. 그 상징주의가, 중세 시대에 실재론realism 이라고 불렀던, 그리고 덜 정확하긴 하지만 우리는 플라톤적 이상주의라고 부르게 될 세계에 대한 개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곧 독단성과 미완성의 외관을 벗게 될 것이다...

    모두가 문명 전부에 내재한다. 왜냐면 중요한 것은 신학자들의 논쟁이 아니라 사고와 상상적 표현들을 지배하는 관념들이니까. 이같은 관념들은 극도로 실재론적인데 그것은 신학이 오래 전부터 신플라톤 학파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실재론이 모든 철학과는 별개로 본래부터 원시적 사고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원시적 정신에게는 명명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하나의 실체이며 하늘에 투영되는 한 형상을 띤다. 이 형상은 대체로 인간적인 형태가 될 것이다. 스콜라적인 의미에서는 모든 실재론은 신인동성동형론에 이르게 된다. 관념에다 하나의 실재 존재를 부여한 뒤에는 정신은 그것이 살아 있는 관념이기를 원하게 되며, 또 의인화에 의해서만 그 일은 가능하게 된다. 알레고리가 태어나는 것은 바로 이렇게해서이다. 알레고리는 상징주의와 같은 것이 아니다. 상징주의가 두 관념 사이에 신비적 관계를 인증한다면 알레고리는 이 관계의 개념에 눈에 보이는 형태를 부여한다. 상징주의는 정신의 매우 깊은 한 기능이다. 알레고리는 피상적이다. 알레고리는 상징적 사고가 표현되도록 돕지만 한 형상을 살아 있는 관념으로 대체하면서 상징주의를 위협한다. 상징의 힘은 알레고리 속에서 고갈되어 버린다. 알레고리는 중세의 사고 속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현학적인 분위기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알레고리에 의해 자기를 표현하려는 욕구는 확실히 매우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전체적으로 볼 때 방금 묘사한 세 가지 사고 양식, 실재론, 상징주의, 의인화는 중세 시대의 사고에 하나의 빛줄기를 던져주었다. 심리학은 상징주의를 관념들의 조합으로 다루면서 상징주의를 간단히 정의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문명사는 그것을 보다 큰 존경심으로 다루어야 한다. 세계에 대한 상징적인 해석은 비할 데 없는 윤리적, 미학적 가치를 지녔다. 그것은 모든 자연과 전역사를 포괄하면서 현대 과학이 상정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엄밀한 통일성을 지닌 세계의 이미지를 부여하였다...상징적 사고는 사물들간에 무한수의 관계들을 허용한다. 각각의 사물은 서로 다른 특수성에 의해 여러 가지 관념들을 가리킬 수 있으며, 하나의 특수성은 또한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화를 가질 수 있다. 가장 높은 개념들은 무수한 상징들을 갖는다. 어떤 사물도 숭고함을 나타내고 그것을 찬미하지 않을만큼 비천한 것은 없다...한 사물은 다른 것을 받쳐주고 한단계씩 높여져 꼭대기에 이른다. 게다가 신적 위엄에 대한 의식은 정신의 모든 개념들 속에 하나의 드높은 미학적, 윤리적인 가치를 부여하며 투입된다...

    모든 정신적인 범주들 사이에 조화가 지배한다.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의 예표이다. 세속의 역사는 그 두 성경을 반영한다... 상징주의는 중세 시대에 그 자체로는 비천할 수 밖에 없는 현실세계를 보다 높이 평가하고 현세의 일들을 고결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개인적 고통은 신의 고통의 그림자일 뿐이며 미덕은 선이란 관념의 부분적 실현에 불과하다. 이처럼 상징주의는 개인의 미덕과 고통을 개별적 범주에서 떼어내어 보편적 범주로 높이면서 중세에 그토록 강조되던 종교적 개인주의 즉 개인 구원 추구에 하나의 구원적 평형을 이루었다. 상징주의는 결국 그것 없이는 너무 엄격하고 명백했을 꽉 짜여진 도그마들의 대본에 붙혀진 하나의 음악과도 같았다. 상징주의는 예술에 모든 종교적 개념들의 풍성함을 열어주었고 예술로 하여금 우렁차고 다채로우면서도 모호하고 떠도는 듯한 언어 속에 영혼의 가장 깊은 체제와 깊은 열망들을 드러낼 수 있게 해주었다. 

    조락기의 중세는 마지막 만개 상태에 있는 그 사고를 보여준다. 세계는 확장되어 보편적인 형상화 속에 펼쳐지며 상징들은 석화된 꽃과 같다.  게다가 상징주의는 늘 어느 시대에나 순전히 기계적이 되고 습관으로 전락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시적 고양의 산물만이 아니고, 그것이 거기에 기생식물처럼 매달려 있는 사고의 산물이기도 하다. 

    상징주의는 그의 시녀 알레고리와 더불어 하나의 정신적 유희가 되었다. 의미로 가득찼던 풍성했던 것이 다 사라졌다. 상징적 정신상태는 인과적 사고가 발전하는 것을 방해했다. 왜냐하면 인과적이고 발생적인 관계는 상징 관계 옆에서 하찮은 것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두 개의 광원과 두 개의 칼에 대한 신성한 상징주의는 교황권에 대한 역사적이고 법적인 비판의 길을 오랫동안 차단했다. 왜냐하면 이 두 개의 상징은, 충격적인 비유의 도움으로가 아니고 교황권과 황제권의 신비적 기반을 드러냄으로써, 직접적으로 성 베드로의 우위를 세웠기 때문이다. 단테는 그의 <군주론>에서 역사적 비판으로의 길이 열리기 전에, 우선 그것의 적용 가능성과 싸우면서 그 상징을 약화시켜야 할 판이다. 사람들이 상징주의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독단적이고 불필요한 알레고리들을 혐오하게 되면서 그것들을 사고의 굴레로 거부하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루터는 스콜라 신학의 거성들을 향한 독설로 그것들을 비난한다. "이 우의적인 연구들은 할일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 여러분은 내가 아무 피조물이나 알레고리의 유희를 하지 못하리라 생각하는가? 알레고리를 못 할 만큼 재치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상징주의는 직관에 의해 예감되고, 음악이 우리에게 밝혀주는 것과 유사한 관계들의 불완전한 표현이었다. 사람들은 하나의 수수께낑 직면해 있다고 의식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울 속에서 형상들을 분별하려고 애썼고, 이 형상들은 다른 이미지들을 수단으로 해서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상징주의는 창조라는 거울에 마주 세울 수 있는 제 2의 거울과도 같았다. 모든 개념은 조형적이거나 회화적이 되었다. 세계의 표현은 달빛 아래 선성당의 고요함에 도달했고 거기서 사고는 잠들 수 있었다. 

     

     

    출처> 중세의 가을 / 호이징가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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