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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가적인 삶의 꿈
    이.탈.리.아 역사/중세역사 medioevo 2020. 4. 21. 09:26

     

    삶의 기사도적 개념은 아름다움과 미덕과 유용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였다. 코민Commines이 하듯이 순전히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그 유명한 기사도는 전부 불필요하고 거짓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즉 하나의 외적 과시일 뿐이며 우스꽝스러운 시대 착오에 불과하다. 사실 인간을 행동으로 몰아가고 각 신분들과 공동체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진정한 모티프들은 기사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기사도적 이상이 갖는 사회적 유용성이 극히 약한 것으로 되었다면 그 윤리적 가치는 훨씬 더 약하게 보였다. 순전한 정신적 멸망과 비교해볼 때 이 고결한 삶은 모두 한낱 죄와 허영일 뿐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 이 이상은 순전히 미학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더이상 만족할 만한 것이 못 되었다. 사회적 형식들의 아름다움조차도 모든 면에서 거부되기에 이르렀다. 기사도적 삶은 여전히 가끔은 부르조아들에게 갈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 것 같지만, 그러나 귀족 계급 자체에서부터 이미 권태와 불만족이 나오고 있었다. 그만큼 궁정적 삶의 고상한 유희는 너무도 잡다하고 거짓되고 또 너무도 가득 채워져 있었다. 따라서 고통스럽게 다듬어진 이 인위적인 것들로부터 빠져나와 단순함과 안정과 휴식을 발견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 기사도적 이상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길이 제시되었다. 하나는 적극적이고 실제적인 삶으로 이르는 길, 곧 근대적 추구 정신이 그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거부에로 이르는 길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 두번째 길은 피타고라스의 Y처럼 다시 또 둘로 갈라져 있었고, 정신적 생활에의 길이라는 주된 길과 사교계와 쾌락에의 길이라는 부수적인 길로 이어져 있었다. 

    삶의 아름다움에로 향한 갈망은 그토록 컸다. 그래서 궁정적이고 무훈적인 삶의 용인할 수 없는 공허함을 잘 알고 있는 그곳에서조차, 또 다른 출구가 더욱 우아하고 보다 가벼운 아름다운 꿈을 향해 열려 있는 듯 보였다. 목동의 삶과 관련된 옛 환상, 곧 자연스럽고 행복한 삶에의 약속이 테오크리투스 시대처럼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 큰 해방은 별 고투 없이 신분과 명예에 대한 증오어린 질투심으로 들끓는 경쟁심과는 멀리 떨어진, 억압적인 부와 사치, 잔인하고 위험스러운 전쟁과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의 단순한 도피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여졌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에의 찬가는 중세 문학이 고대로부터 물려받은 하나의 테마이다. 하지만 이 테마가 전원시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전원시 속에는 교구 생활과의 긍정적 대비가 그려지고, 궁정 생활과 귀족적 허식에 대한 부정, 즉 연구나 고독한 은둔, 그리고 일 속에 칩거함으로써 귀족적 이상을 거부하는 소박한 평온함에 대한 찬양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그 두 모티프는 끊임없이 교차된다...

    16세기에도 여전히 그 낡은 테마는 그 매력을 온전히 지니고 있었다. 안락함과 휴식과 독립, 이러한 것들은 궁정 생활보다는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노동하며 살아가는 삶을 더 좋아하게 만드는 자신들이다. 그러나 그것에만 그친다면 이 이상은 부정적인 것으로 머무른다. 왜냐하면 결정적으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노동과 소박함이 주는 기쁨보다는 자연스러운 사랑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전원시는 가장 온전한 의미에 있어서는 문학 장르 이상의 무엇이다: 그것은 삶을 개혁하려는 욕구이다. 그것은 단순히 목동들과 그들의 순진한 희락을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꿈에서나마 그것을 모방코자 하는 욕구이다. 목동 생활의 이상은 궁정의 사랑과 알레고리의 무미건조성, 그리고 세속적인 현실의 구속으로부터 정신을 해방시킬 치료제가 된다. 자연의 순진무구한 즐거움들 속에서 단순하고 쉬운 사랑을 하는 것, 그것이 로뱅과 마리옹, 공티에와 엘렌의 삶인 듯 했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었고, 가장 부러운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그토록 경멸받던 시골뜨기가 정반대로 하나의 이상이 되었다. 그러나 조락기의 중세는 여전히 너무도 뿌리깊게 귀족적이며 환상 앞에 그토록 맹목적이어서 자연스러운 삶에의 열망이 그것을 건전한 사실주의로 이끌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이상은 실제로는 궁정적인 풍속들의 정교한 장식물에 그치고 만다. 15세기 귀족 계급은 즐겨 목동과 목녀 놀이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지 유희에 불과하다. 3세기 후 마리 앙토아네트가 트리아농에서 암소들을 돌보고 버터를 휘저을 때, 전원적 이상은 이미 중농주의자들의 진지성을 띤다. 자연과 노동은 아직 잠들어 있긴 하나, 이미 그 시대의 위대한 신들이다. 한 세기가 더 지나면, 목가적 이상은 진지한 사회적 열망이 될 것이다. 

     

     

    출처> 중세의 가을 / 호이징가 

    이미지 출처> 야후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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